그래도 꿈꾼다

그 안에서 작은 행복

by 이보연

재발 스케줄은 표준치료와는 차원이 달랐다. 같은 항암제라도 표준치료 때의 몇 백배를 때려 넣곤 했다. 히멀건하게 희석해서 찔끔 들어가던 MTX도 원액 같은 샛노란 상태로 다섯 병씩 밤새 들어갔다. 아이들은 회복력이 좋아서 어른보다도 훨씬 고용량으로 치료를 한다고 하던데 정말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 않을 만큼 독하게 약이 들어갔고 그럼에도 신기하게 회복해냈다. 항암제가 들어가고 며칠은 열이 나거나 토하며 드러누웠다가도 금방 괜찮아지곤 했는데 그런 독한 항암을 종류를 바꿔가며 쉴 틈 없이 1년여 반복하다 보니 횟수가 거듭될수록 회복기간이 길어졌다.

그래도 아이는 잘 버텼다. 열이 펄펄 끓어 드러누워 끙끙 앓다가도 해열제로 잠시 열이 잡히면 벌떡 일어나서 공부를 했다. 심한 구토로 밥을 먹기 힘들 때도 밥을 먹어야 힘이 난다며 어떻게든 한수저라도 입에 넣고 꾸역꾸역 삼키곤 했다.


센 항암치료를 이어가다 보니 어떤 때는 3주씩 면역 수치가 0일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1인실에 역격리 되곤 했는데 아이는 헬기가 자주 오르내리는 1인실 창밖을 바라보는 것을 참 좋아해 이때를 은근 기다리곤 했다. 병원의 창문까지 날려버릴 듯 프로펠러를 휘저으며 헬기가 착륙하면 기다리고 있던 의료진들이 바람을 가르며 헬기로 돌진했다. 그 가운데 단연 눈에 띄는 이국종 교수님을 보는 것이 아이에게는 연예인을 보는것마냥 즐거운 일이었다. 그곳에서 아이는 앞뒤 가리지 않고 헬기로 뛰어드는 이국종 교수님 같은 의사 선생님이 되겠다는 꿈을 굳혔다. 오은영 선생님의 부모님이 어릴 적 몸이 약해 병원에 자주 갔던 오은영 선생님께

"의사 선생님들을 자주 만나는 걸 보니 나중에 의사 선생님이 되려나보다."

하셨다던데 나 역시

'의사 선생님들을 이렇게도 많이 만나는 희수는 분명 정말 훌륭한 의사 선생님이 될 거야.'

생각했었다.

의사 선생님들 조차도 싫어한다는 '공부'가 희수에게는 삶의 의미이자 원동력이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꼭 의사 선생님이 되겠다는 의지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살아갔다.


공부 말고 긴 치료를 버티는 또 다른 원동력은 '여행'이었다. 3주짜리 긴 입원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우리는 가방을 다시 싸고 강원도로 향했다. 항상 강원도, 정선 근처에 숙소를 잡고 주변을 도는 비슷한 여행이었지만 아이는 가족과 함께하는 그 여행을 무엇보다 좋아했다. 청소용품까지 싸가지고 가서 온 숙소를 내 집처럼 닦아내고 우리 이부자리까지 깔아야 맘이 놓이는 여행이었지만 그마저도 즐거움이었다.

낮에는 관광지와 시골 시장 구경을 하고 저녁이면 아이가 좋아하는 고기를 구워 먹으며 밤을 기다렸다. 주말 밤이면 강원랜드에서 터뜨리는 불꽃놀이를 숙소 창문에 매달려 구경하는 것이 우리 여행의 주된 목적이었다. 팡팡 터지는 불꽃을 보며 둘째 아이가 꺅꺅 소리를 지르는 동안 감정표현이 적은 희수는 미소를 잔뜩 머금고는 "히히, 우와." 하는 것이 전부였지만 그 기억으로 긴긴 항암 기간을 버텨냈다.


20180512_211501.jpg


희수는 그 힘든 와중에도 바이올린을 놓지 않았다. 그동안 모아두었던 돈으로 좋은 바이올린을 사더니 그렇게 아낄 수가 없었다. 레슨을 받을 수 있을 때는 선생님을 만났지만 1시간 레슨조차 힘들어지자 혼자 새로운 곡을 조금씩 연습하기 시작했다. 조금씩 기운을 쪼개 연습하면서도 차르다시나 비오티 바이올린 협주곡 같은 어려운 곡들을 멋들어지게 연주해냈다.

치료 중에도 틈이 나면 콩쿨준비를 해서 슬쩍 나가곤 했는데 없는 머리에 모자를 덮어쓰고 대회에 참가하고 당당히 상을 받았고, 소아암 환아들의 꿈을 들어주는 재단을 통해 이작 펄만이라는 바이올린 대가를 만나기도 했다.


다니던 병원에서는 매년 완치 파티를 열어 완치자들을 축하해 주었는데 아이는 매년 바이올린을 들고 축하무대에 섰다. 치료를 같이 시작한 친구들이 다 치료를 마치고 완치메달을 받는 동안 홀로 여전히 치료를 받고 있으면서도 내년에는 꼭 메달 받을 거라며 기쁜 마음으로 친구들을 축하해 주었다.

축하무대에 선지도 4년째였던 2018년에는 교수님께서 희수를 위해 특별한 분을 초대해 주셨다. 아이가 이국종 교수님을 좋아한다는 것을 안 담당교수님이 이국종 교수님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꼭 만나게 해 주겠다 약속을 하셨었는데, 워낙 바쁜 분이라 오래 걸렸다면서도 결국 약속을 지켜주셨다. 아이는 궁금했던 것 질문도 하고, 사인도 받고, 기념촬영까지 하면서도 담당교수님을 더 신경 쓰더니 며칠 후 진료 때

'저는 박준은 교수님처럼 아픈 아이들을 돌보는 소아 혈액종양내과 의사가 될 거예요.'

편지를 건넸다.

20181227_184137.jpg



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oid=001&aid=0009679017&sid1=001


이전 13화고난의 연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