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재발

새로운 병원으로

by 이보연

재발 치료 스케줄도 반이상 지나고 있었다. 1년 넘는 지긋지긋한 항암치료를 마치고 방사선 치료에 들어갔다. 방사선 치료는 장기적인 후유증이 많아 요즘은 백혈병에 잘 쓰지 않는 추세지만 아이는 중추신경계 재발이다 보니 꼭 해야 한다고 했다. 머리와 척수까지 12일 동안 쉼 없이 진행해야 하는 스케줄이었다. 피부가 까매지고 머리가 빠지는 비교적 가벼운 문제부터 시작해서 장기적으로는 자잘한 뇌손상을 피할 수 없고 성장 저하나 호르몬 이상도 생길 수 있다고 했다. 그런 말들을 듣고도 동의서에 싸인을 할 수밖에 없다. 다만 의사가 되고 싶다는 아이이니 뇌손상이라도 적게 되기를 그것만 바랄 뿐이었다.

몸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머리에 틀을 맞추어 쓰고 차디찬 방사선실에 홀로 들어가 한참을 누워있다가 나오는 것을 12번 반복했지만 아이는 싫은 소리 한번 안 하고 모든 치료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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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선 치료를 마치고도 1년 가까운 유지치료가 기다리고 있었는데 긴 항암치료를 해온 아이의 컨디션이 도무지 유지되지 않았다. 걸핏하면 anc가 0을 찍어 그라신(백혈구 촉진제)을 맞으러 일주일 내내 병원에 가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스테로이드제를 먹으면 근육이 다 빠져 며칠씩 걷지 못하는 것을 반복하다 보니 걸음걸이조차 절뚝절뚝 이상해졌다.


몸을 움직이는 것이 힘들어질수록 아이는 공부를 더 열심히 했고 완치 후의 삶을 계획했다. 학교를 2년째 못 가고 있지만 그 어떤 4학년보다 열심히 살았다. 차근차근 공부해온 한자시험을 봤고 하루도 빠짐없이 서너 시간씩 공부한 영어로 상을 받았다. 수능 영어도 거뜬히 풀고 원어민과도 겁 없이 대화할 만큼 잘하기도 했다. 치료가 끝나면 자전거를 타고 눈썰매장에 갈 소박한 계획도 세웠다.


그러던 며칠 후부터...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진통제를 먹여봤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아이 앞에서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머리가 아픈 것은 안 좋은 징조였다. 다음날 외래진료를 보며

"교수님 희수 머리가 아프대서 진통제를 먹였는데도 안 들어요. 어떻게 해요?"

말하며 엄마에게 하소연하는 아이처럼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교수님 표정도 급격히 어두워지시며 빠르게 병상을 잡아 각종 검사를 하게 하셨고 다음날 오전에 한 척수검사에서 또다시 악성 세포가 보임을 확인했다. 항암치료만으로 잘 안되었을 때 남은 방법은 골수이식 뿐이었다.


'동생'

참 못됐게도 그 순간 둘째가 있다는 게 그렇게 다행일 수가 없었다. 때마침 학교를 마친 둘째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내일 반장선거가 있거든요. 거기 나가기로 했는데 공약을 뭘로 하는 게 좋을까요?"

잔뜩 들뜬 목소리로 묻는 3학년 딸에게

"미안한데 너 내일 학교에 못가. 오빠가 다시 아파서 니가 피검사하러 병원에 와야 해."

정말 이렇게 못되게 말했다. 2학기 반장선거에서는 엄마가 무슨 수를 써서든 꼭 반장 되게 도와줄거고 그동안 우리 집 반장하라는 예쁜 말로 포장했지만 그 속은 못된 엄마였다.


두 번째여도 슬프고 아픈 건 마찬가지였다. 거기에 두려움까지 더해졌다. 아이 손을 잡고 병원 복도를 돌며...

"희수야. 아직 희수 몸속에 백혈병 세포가 남아있어서 골수이식을 해야 할 것 같아. 이식한 형아들 동생들 많이 봤지? 지금까지 치료한 게 억울하긴 하지만 이식하면 다 나을 수 있을 거야. 그때까지 조금만 더 참아보자~"

화도 내고 억울해도 하며 한참 얘기하며 내가 계속 울자 아이는

"엄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세번째니까 이번에는 잘 되겠지요."

하며 오히려 나를 위로했다. 도대체 어디에 이런 11살이 있을지... 그 통달한듯한 어른스러움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늦은 시간인데 교수님께 연락이 왔다. 만약에 동생과 유전자가 안 맞거나 일치자가 없으면 반일치 이식(유전자가 반만 맞는 부모의 조혈모세포를 이식하는 것)이라도 해야 하는데 이 병원에서는 어려우니 일찌감치 서울의 큰 병원으로 옮기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지만 강경한 말투는 강요에 가까웠다. 내가 잠시 주저하자

"뭐라도 해봐야 할 것 아니에요!"

하며 마치 가족처럼 소리치셨다.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이미 서울의 병원과 교수님까지 알아보고 연락을 취해두셔서 우리는 몇 시간 만에 모든 준비를 마치고 서울로 향하는 구급차에 오를 수 있었다. 가뜩이나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구급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없는 길을 만들어 급하게 서울로 향하는 통에 더더욱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모세의 기적을 만들며 수원에서 서울의 병원까지 25분 만에 도착했다.


낯선 병원의 응급실로 아이의 침대를 밀고 들어가며... 그 낯선 공기에 순간 위축되었다. 병원에서 몇 발짝만 나가면 우리 집이었던 그곳과는 다르게 먼 곳에 뚝 떨어져 나온 그 느낌을 말로는 다 표현할 수가 없다. 4년간 정들었던 병원 식구들이 없는 이곳에서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치료들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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