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발의 시작은 두통이었다. 대부분의 재발 증상은 항암을 시작하면 좋아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병원을 옮기고 항암만 시작하면 금방 좋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조치가 빠르지 않았다. 척수에만 재발인 것과 골수까지 재발인 것은 치료과정이 다르기 때문에 골수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며칠 기다렸다가 항암치료를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그 며칠... 아이의 두통은 점점 심해졌다. 웬만한 아픔은 거뜬히 참아내던 아이였는데 마약성 진통제를 써도 효과가 두 시간을 가지 못했다. 다음 약을 쓸 수 있을 때까지 몇 시간을 기다리며 울다 못해 온몸을 경기하듯 흔들어댔다. 머리를 눌러주면 조금 덜 아프다고 해서 종일 아이 옆에 누워 한 손으로 머리를 꾹 눌러주었다. 그렇게 하면 살짝 잠들었다가도 손을 떼면 또 몸서리치며 아파해서 거의 모든 시간 머리를 누르고 있기를 3일쯤 했나 보다. 골수검사 결과가 대략적으로 나오고 골수 재발은 아닌 걸로 보면서 겨우 항암치료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치료 방향이 정해지면서 아이 아빠도 호출되었다. 우리 또래의 젊은 여자 교수님은 첫인상부터 꽤나 믿음직스러웠다.
"희망이 있는 건가요?"
묻는 아이 아빠에게
"그럼요! 항암만으로는 어렵겠지만 이식을 한다면 분명 희망이 있습니다."
확신을 가지고 대답해 주었다. 소아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에서 재발을 하는 사례조차 많지 않은 데다가 그중에서도 척수 재발은 더더욱 흔하지 않아 이제 통계, 확률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우리도 잘 알고 있었기에 교수님을 믿고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식 전 항암 스케줄을 시작했다. 백혈병에 쓰이는 약은 거기서 거기인지라 대부분 써봤던 약인데 '홀록산'이라는 써보지 않은 약이 포함되어 있었다. 전에 있던 병원에서 이 약을 쓰고 항문이 헐다 못해 엉덩이까지 벗겨져 힘들어하던 아이를 봤기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중추신경계로 들어갈 수 있는 항암제가 많지 않다보니 결국엔 쓸 수밖에 없었다. 그 독한약이 꽤 많은 용량으로 5일이나 들어갔다. 며칠 만에 anc는 0이 되었고 그때부터 열이 나기 시작했다. 입안은 온통 헐어 마취약을 섞어 가글을 해도 음식을 먹을 수 없을 만큼 아파했고 항문에서는 저절로 피가 흐를 정도였는데 설사까지 시작되어 고통스럽게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기운 없이 화장실만 들락날락 거리던 날... 힘들어하긴 했지만 화장실에 갈 때까지 큰 문제가 있지는 않았는데 일을 마치고 뒷정리 중 갑자기 얼굴이 노랗게 변하며 털썩 주저앉아 말까지 어눌해졌다.
꼬부라진 발음으로 힘겹게
"엄마 너무 힘들어요. 눈이 안 보여~"
하더니 실신. 응급호출 버튼을 누르고 간호사 선생님과 의사 선생님들이 달려왔고 급히 처치실로 옮겨 바이탈 체크를 하는데 혈압이 너무 낮아 재지지도 않는다.
몇 가지 체크를 하더니 패혈증인 것 같으니 빨리 중환자실로 옮겨야 한다고 했다. 급히 혈압을 올리는 약과 이름 모를 여러 가지 약들이 들어갔고 어디서 나타났는지 순식간에 10명 가까운 의료진들이 달라붙어 어떤 이는 정신을 잃은 아이의 이름을 불러 깨우고 어떤 이는 분주하게 컴퓨터 앞을 오가며 처방을 하고 어떤 이는 급히 어딘가에 전화를 하고... 정신없이 돌아가는 눈앞 상황과 다르게 그런 광경 앞에 서있는 나만이 멍하니 가만히 서있는데 마치 엊그제 본 미드 속 장면인 듯 느껴졌다.
그 와중에 정신이 좀 돌아오자 억지로 눈을 뜨며
"선생님~ 제가 이러다가도 한잠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 지더라고요~"
침착하게 설명하려 애쓰는 아이의 노력이 눈물겨웠다. 아이는 곧바로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나는 그사이에 각종 싸인을 하며 아이 아빠에게 울며 전화했다. 아이와 떨어져 소식을 기다리는 몇 시간 동안 의료진들은 당장 내일 백혈구 공여자를 구해서 수혈을 해야 한다며 설명했다. 가만히 기다려도 피가 마르는 시간인데 공여자를 구하려고 여기저기 연락을 하느라 정신줄을 놓을 수 조차 없어 미칠 지경이었다.
게다가 o형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정신없이 여기저기 연락해본 끝에 몇 명을 찾았다. 백혈구 수혈이라는 것이 병원에 여러 번 와서 백혈구 촉진제도 맞아야 하고 긴 시간 채혈해야 하는 복잡한 일인데 친한 친구는 물론이고 일면 일식 없던 친구의 친구의 신랑, 친구의 동생, 심지어 병원 근처 아파트 분들까지 도와주겠다고 연락을 주셔서 너무 놀랍고 감사했다.
아이가 무사히 중환자실에서 안정을 찾았음을 확인하고 중환자실 앞에서 주저앉다시피 하여 차에 실려 아이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패혈증의 원인균은 금방 나왔다. 누구나 장 속에 가지고 있는 '대장균'이 장이나 항문에 상처가 생기면서 면역력이 전혀 없는 아이의 몸속에 들어가게 된 것. 그걸로 염증 수치가 무섭게 치솟았다가 아빠 친구가 수혈해준 백혈구를 맞고 금세 안정을 찾아갔다. 중환자실이 처음인 것도, 패혈증이 처음인 것도 아니었지만 이렇게 오래 떨어져 본적은 처음이었다. 아들도 나도 분리불안에 시달렸다. 면회시간이면 아이는 중환자실 선생님들이 아프게 채혈한 것등을 귀엽게 이르기 바빴고 면회시간이 왜이리 짧은거냐며 내손을 잡고 놓을 줄 몰랐고, 그런 아이를 두고 나오면 나도 뭘 해야할지 모르는 상태로 다음 면회시간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최소 4~5일은 걸릴 거라고 했는데 아이는 이번에도 무서운 속도로 회복하며 3일 만에 일반병실로 돌아왔다. 일반병실로 돌아와 한동안 중환자실에서의 충격으로 힘들어하는가 싶더니 몇 시간 만에 벌떡 일어나 앉더니 밥을 먹고 기운 내 평소처럼 책을 찾고 병동 산책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 오늘 anc는요? 간수치는요? 피 맞을 건 없고요? cmv수치는 얼마나 떨어졌대요?"
하며 자기 수치 체크하고,
"교수님~ 이러 이런 증상이 있는데 대체 원인이 뭘까요?"
라며 의사들을 압박하는 이 아이는 서울의 큰 병원에서도 신기해했다.
"교수님, 스테로이드를 이렇게 많이 먹으면 제가 못 걷게 되거든요. 그러니까 용량을 좀 조정해주시면 안 될까요?"
하며 강경한 교수님께 며칠을 졸라 결국 75%만 쓰기로 허락을 받아내는 아이...
의료진들이나 다른 보호자들은 이런 희수를 신기하고 기특해했지만 나는 가끔은 이 녀석이 좀 덜 똘똘했으면 싶을 때가 있었다. 총 들고 팽이 들고 뛰어다니고 스마트폰 하는 걸로 엄마랑 실랑이하는 여느 병원 아이들처럼 그냥 아무것도 몰랐으면 싶을 때가 있었다.
처음 아이가 백혈병 진단을 받았을 때는 '백혈병을 극복한'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훌륭한 사람이 되려나보다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흔치 않게 두 번이나 더 재발을 하고 골수이식까지 앞두니
'대체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이 많은 재능과 고난을 한꺼번에 주신 걸까?'
하는 의문마저 들었다. 수많은 고난을 극복하고도 슈바이처 이상으로 희생적이고 훌륭한 의사가 되려나보다 생각했다. 수십 년 후 위인전에 실릴 아이인가 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