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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보연 May 31. 2024

살다

살아간다

은찬이를 떠나보내던 날.
나는 맘껏 슬퍼할 수 없었다.
내 뒤편에서 내 손을 꼭 잡고 있는 둘째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 손으로는 은찬이를 어루만지면서도 다른 손으로는 둘째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있어야 했다.
은찬이를 살리겠다는 삶의 의미가 사라지던 그날 나를 살린 것은 둘째 아이였다.
병원생활하느라 7년이나 제대로 돌보지 못한 둘째가 건강한 마음을 가진 어른이 될 때까지 잘 키워보겠다는 다짐으로 하루하루를 살았다.

그 하루하루가 쌓여 어느덧 3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5학년이었던 둘째도 벌써 그 무섭다는 '중2'가 되었다.
6학년 어느 날엔가... 꼭 잡은 내손을 쓰윽 빼내며 "엄마, 나는 오빠가 아니라고요. 손 안 잡아줘도 돼요" 하며 나를 서운하게 하더니 한 발 한 발 내 품을 벗어나고 있다.
두세 살 즈음 "내가 할 거야. 내가 신을 거야. 내가 누를 거야" 하던 그때와 달라진 것은 쑥 자란 몸뿐인 것 같은데
또다시 그때처럼 뭐든 "제가 알아서 할게요." 한다.
서운했다가... 화도 났다가... 문득 깨닫는다.
잘 자라고 있는 거구나...
아이는 건강하게 단단하게 잘 자라고 있는 거였다.
이제는 나 없이도 잘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잘한 거네?!

그리고... 이제야 나를 돌아본다.
두 녀석 키우느라 나는 뭘 좋아하고 뭘 잘하는 지도 잊어버린 나란 사람.
마지못해 살지 말고 내 호흡으로 숨을 쉬어야지.

10학번으로 입학하여 우여곡절 끝에 14년 만에 졸업을 한다.
그 마지막 과목으로 다음 주부터 실습을 나가며... 아가들 보며 힐링할 생각에 벌써 살짝 설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설렘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죄책감이 느껴졌었다.
하지만 이제 그러지 않으려 노력한다.

나는 은찬이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다.
'은찬이는 다 이해할 거야' 하는 믿음.
옛날일들을 떠올리면 미안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은찬이는 어차피 "엄마 괜찮아요" 할 거라는 믿음이 있다.
그래서 내가 사는 하루하루를 미안해하지 않으려 한다.
허투루 보낸 하루하루 역시 미안해하지 않으려 한다.
은찬이는 다 이해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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