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딸의 기말고사가 시작되었다. 어제는 국어와 수학. 끼고 앉아 쪽집게 과외를 해주었더니 국어는 보람 있게 백점을 맞아왔다. 그런데 벼락치기가 안 되는 수학은 어찌할 수 없어 급하게 몇 문제만 찍어 시키고 아슬아슬한 점수를 받아왔다. 시험지를 보자마자 "야~ 수학을 이런 점수받아온 걸 알면 오빠가 얼마나 어이없어 하겠냐? 내 동생 수학점수가 이게 말이되냐고" 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은찬이가 있었다면 동생이 이런 점수를 받아오게 놔두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진심 들었다.
은찬이가 있다면 지금 우리의 삶은 많이 달랐겠지? 너무나 평범하고 평화로운 하루하루를 보낼 때면 문득문득 '여기에 은찬이만 딱 있으면 참 좋겠네' 생각한다.
은찬이를 보낸 지도 3년이 지났다.
은찬이를 보낸 후 한동안.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은찬이가 남은 가족 걱정이 되어 멀리 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아이의 걱정 덩어리가 남아있는 듯한... 엄마만이 아는 그런 느낌 같은 것이 있었다. 그래서 나 혼자 어두운 곳에 있다거나 할 때면 혹시나 아이가 모습을 나타낼까 봐 눈을 꼭 감으며 말했다. "괜찮아. 엄마는 괜찮으니까 우리 걱정하지 말고 좋은 곳으로 가. 거기에서 기다려줘."
그 묵직한 느낌은 꽤 오래 계속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가벼워졌다. 이 녀석 드디어 맘을 내려놓고 좋은 곳에 갔구나.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지난 6월 10일은 아이의 세 번째 기일이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는 일과를 보내고 오후에는 레슨도 다녀왔다. 그 사이 우리의 루틴으로 신랑에게 은찬이가 좋아하는 홍화루 '크림새우'를 사다 놓으라고 얘기해 두었는데 때마침 홍화루 휴일이라 다른 곳에서 배달을 시켰더니 영 맛이 없다. 뭐 그래도 괜찮다. 은찬이는 다 이해할 테니... 작은 쟁반에 음식을 차려 아들방에 가져다 두고 은찬이 얘기를 하다가 눈물 찔끔하는 걸로 조촐한 하늘생일 파티를 마쳤다.
조금 다른 얘기로... 은찬이를 보낸 후 사후통신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은찬이가 '나는 잘 지내요'하는 의미로 나에게 보여주는 것들 말이다. 한날은 지니가 산책 중에 나를 외진 곳으로 마구 끌고 가서 따라가 보니 은찬이가 좋아하던 카드가 떨어져 있던 적도 있었고, 뜬금없는 계절에 목련눈이 맺혔던 적도 있었다. 친한 이모 꿈에 나와 소식을 전한 적도 있고, 둘째와 가만히 앉아있다가 둘이 동시에 은찬이 특유의 살냄새를 맡고 놀란적도 있다. 그저 은찬이가 보고 싶어 말도 안 되는 것에 의미를 두는 걸 수도 있지만 그런 작은 것들로 은찬이가 가끔 우리 곁에 와주는구나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전엔 본적 없다가 3년 전부터 내 주변에 유난히 나타나는 황토색 무당벌레가 있다.
이 무당벌레를 보면 왠지 그냥 은찬이가 보낸 것만 같다. 우리 집에 구멍이 있는 것도 아닌데 어디서 자꾸 들어오는 건지 요 녀석이 자꾸 집안에 있어 창문을 열어 여러 번 날려주었다. 은찬이의 장난인가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