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작년 여름 이식방에 있을 때부터 은찬이를 많이 봐주셨던 강 교수님이 앞으로 아이를 봐주기로 하셨다. 회진 때가 아닌 시간에도 아이들 침대에 걸터앉아 한참씩 이야기 나누기도 하고, 복도에서 마주칠 때면 항상 한참을 인사하며 아이가 좋아하는 공부 얘기를 물어봐주셔서 아이가 유난히 따르던 교수님이었다.
강 교수님께 치료받기 시작한 지 한 달여 동안은 치료가 순탄하게 진행되었다. 폐숙주도 몰라보게 좋아졌고 고용량 함암을 두어 번 하며 잘 견디고 있었다. 8월에는 첨단 재생 바이오 법이 시행되면서 이제 국내에서도 car-t치료를 할 수 있게 되었다. car-t를 개발 중인 여러 국내 제약회사에서 임상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이미 외국에서 시판되고 있던 킴리아도 곧 국내 허가가 될 거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임상이든, 킴리아든 허가될 때 까지만 버티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의학적으로 얘기하기로는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의 경우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면 6개월을 견디기 어렵다고 하는데 은찬이는 세 번째 재발 한 이후 이미 8개월이나 견뎌낸 상황이다 보니 마음이 급했다.
늘 그랬듯 평화로운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또 아이의 눈에 또 문제가 생겼다. 눈이 뿌옇게 보이고 머리가 아프다고 했는데 진통제도 듣지 않았다. 처음 겪는 일은 아니었기에 또 재발인가 보다 생각하며 덤덤하게 병원으로 향했다. 다른 때처럼 곧 눈이 좋아져 퇴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른 때와 좀 달랐다. 시간이 지나도 좋아지지 않았다. 눈이 계속 안 보이는 것은 그동안의 고통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제 발로 걷지 못해 화장실조차 엄마 없이 못 가던 녀석이었는데 보는 것조차 안되니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바보가 되어버렸다. 눈 풀고 멍하니 앉아있다가 밥 나오면 어떤 게 밥인지 반찬 인지도 모르면서 고개를 파묻고 먹었다. 좋아하던 공부도, 독서도, 보드게임도 아무것도 할 수 없어져버리니 뭘 해야 할지 몰라 하루 종일 심심해하다가 하루가 갔다. 엄마랑 얘기하는 시간과 밥 먹는 시간이 유일한 재미라는 아이와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안 보이는 눈으로 태블릿을 잡고 엄마의 지시대로 게임 컨트롤 키를 누르며 게임을 해봤다. 보이지도 않으면서 뭐가 재밌다고 깔깔대는 아이...
"근데 보이지도 않는데 재밌어?"
물으니
"그냥 엄마랑 뭘 한다는 게 재밌어요."
말하며 씨익 웃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화가 치밀었다.
'아니, 이 예쁜 아이를 도대체 왜 자꾸...!!!'
ct와 mri를 찍었고 뇌 뒤쪽의 병변을 확인했다. 이게 단순 백혈세포인지 종양인지, 백혈세포라면 원래의 것인지 다른 쪽으로 변이가 된 것인지를 찾아야 치료방향을 잡을 수 있다고 해서 뇌조직검사를 하기로 했다. 평소 치료에 대해 아이에게 잘 설명하고 이해시켜주는 편이었는데, 아이의 몸이 만신창이가 된 지금, 치료를 위해 무엇을 더 해야 한다는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이제 죄스러울 지경이었다. 게다가 뇌수술이라니... 울고불고해도 모자랄 판에 아이는 덤덤했다.
"수술방에 혼자 들어가야 하는데 무섭지 않겠어?"
물으니
"무섭지만 해야 하는 거잖아요. 괜찮아요."
기특하게 대답했다.
의젓하다. 어른스럽다.
은찬이를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듣는 말들이었다. 가까이에서 그 마음속 깊은 내면을 보고 있자면 항상 기특하고 대견한 것을 넘어서서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아이는 스스로 걷는 것도 안 되는 데다가 잘 보이지도 않고 그 때문에 쓰는 이뇨제 성분의 약 때문에 소변조절조차 잘 되지 않았다.
폐 ct를 찍으러 가는 길. 병실에서 10분도 안 걸리는 거리였는데 도착하자마자 소변이 너무 급하다고 하여 급히 화장실에 데려가다가 반은 실수를 해버렸다.
그 순간... 별것 아닌 상황에서 그간 쌓였던 것들이 북받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 그 와중에도 침착하게
"엄마, 휠체어에만 앉혀주면 내가 처리하고 있을게요. 화장실 뒷정리하고 와요."
하는 아이를 보며... 대기실 한가득 있는 사람들 앞에서 한참을 소리 없이 울었다.
그 후로도
"엄마, 방금 쉬했으니 한동안은 안 마려울 거예요. 힘들면 지금 자요."
하며 엄마를 챙기고 내가 낮잠이라도 자면 그사이 안 보이는 눈으로 태블릿으로 영어공부를 한참 해놓고는 내가 일어나기를 기다렸다가 헤헤 웃으며
"엄마, 써머리만 좀 읽어주세요."
하기도 하고, 심지어 눈감고 앉아 영재원 과제물을 구상하고는 답만 대신 적어달라고 부르기도 했다. 어떤 날은
"엄마, 내가 눈이 잘 안보이니까 가수도 하고 싶어 져요."
하며 작은 키보드로 눈을 감고 피아노 연주를 했다. 저 정도 상황이 되면 어른들도 다 포기하고 싶어질 건데 저 녀석은 어찌 저리 굳건한지 존경스럽다고 밖에 달리 표현할 수가 없었다.
머리를 째고 뇌조직을 떼어내어 검사를 했다. 조직검사 결과 예상은 했지만 6년 전 처음 진단받았던 똑같은 마커의 백혈병 세포가 보인단다. 변이 되었거나 2 차성 암이거나 여튼 다른 거라면 안 써본 다른 약을 써볼 여지가 있는 거였는데 그때 그놈이 계속이라는 것은 6년 동안 많은 것을 해본 우리에게 남은 옵션이 별로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 사이 신약이 몇 가지 나오기는 했지만 우리 아이의 경우 한 가지밖에 맞지 않았다. 게다가 그 신약도 골수 재발에 매우 좋은 약이긴 하나 뇌에는 어떤 반응이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뇌전이에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은 방사선 치료인데 은찬이의 경우 이미 여러 차례 많은 용량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용량 초과로 더는 쓸 수가 없어서 car-t가 안 되는 상황에서는 신약과 감마나이프를 해보는 수밖에 없어 지체 없이 진행해야 했다.
병원에 있던 2주 남짓한 시간 동안 백혈세포들이 더 커져 시력이란 게 거의 없어져버렸는데 약 들어가고 이틀인가 후에 조금 빛도 인식하고 내 움직임 따라 얼굴이 돌아간다거나 제스추어를 살짝 따라 하는 정도로 미미하지만 좋아졌다. 급박한 와중에 감마나이프 시술을 최대한 빨리 잡아준 게 두달 후인 11월 말이라는 얘기를 듣고 울고 싶었는데 신경외과 교수님께 매달린 게 통한 건지
"온우주가 널 돕고 있어~"
라던 강 교수님 말처럼 하늘이 도우신 건지 취소 환자가 생기면서 당장 다음 주에 할 수 있게 되었다. 불과 몇 주 전까지 하늘을 얼마나 원망하고 하나님을 미워했는데 그 와중에 또 '감사합니다.' 소리가 나왔다.
감마나이프도 쉬운 것이 아니었다. 가뜩이나 마약성 진통제로도 조절이 안될 만큼 극심한 두통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그 머리에 공구로 틀을 박다시피 하고 5일 연속해서 감마나이프 시술을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아이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고통 속에 결국 섬망이 와서 헛소리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1주일 내내 머리에 틀을 쓰고 고통스러워하는 아이를 보고 있는 것은 나에게조차 굉장한 고통이었다.
사실 그간 뇌전이가 되고 살아서 돌아간 아이를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만약 방법이 없다면 아이를 그만 괴롭히고 집에 데려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방법이 아직 남아있는데... 그때까지는 미안하지만 어떻게든 버티게 해야만 했다. 아이에게 미안해서 매일 울고 다녔다. 아이 눈이 보이지 않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이에게 우는 모습을 들키지 않을 수 있어서...
마지막 방법인 그 치료들조차 쉽지 않았다. 아이는 이틀 만에 부르르 떨며 경기를 했다. 원인을 찾기 위해 들어가던 약들을 모두 끊고 바로 CT를 찍었고 한참 후 교수님이 어두운 표정으로 오셨다. 뇌가 약간 부었고 종양도 확실치는 않지만 조금 더 커진 모양새란다. 그렇지만 예정대로 감마나이프도 5일 채우고 블린사이토도 계속했으면 한다고 하셨다. 순간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아이가 떠올라
"상태가 저런데도 계속할 수 있어요?"
물으니
"안 하면, 그냥 통증만 조절해주는 것밖에 해줄 게 없습니다."
하는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니에요. 해야죠."
다행히 뇌부종이 와 의식이 없어진다거나 하는 심각한 부작용은 일어나지 않았고 눈도 조금이나마 좋아져서 형태 정도는 볼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아이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너무나 힘들었다.여러 통증으로 24시간 마약성 진통제를 써야 했고 약기운으로 겨우 버텼다.
"내가 나중에 어른이 되고 의사가 되도 엄마 아빠랑 평생 같이 살게 해 줄 거죠?"
자신감이 넘치던 아이의 레퍼토리는
"내가 눈도 안 보이고 커서 돈도 못 벌게 되도 엄마 아빠랑 평생 같이 살게 해 줄 거예요?"
로 바뀌었다.
그럼에도 기적은 또다시 일어났다. 은찬이는 머릿속의 암세포가 드라마틱하게 줄어들면서 68일 만에 꿈에 그리던 집에 갈 수 있었다.
"아 얼마 만에 내 침대에서 자는 거야~"
하며 이불을 폭 덮고 잘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행복해하던 은찬이는 때때로 입퇴원을 반복하긴 했지만 의사 선생님조차
"이 정도면 성경에 나올법한 일이에요!"
할 만큼 놀라운 회복력을 보여주며 해를 넘겨서 까지도 컨디션을 유지하고 잘 견뎠다. 진통제도 모두 끊었고 귀로 들으며 공부까지 조금씩 할 수 있을 정도로 좋아졌다.
하지만 반복되는 항암치료는 몸에 무리를 주고 있었다. 보통 많아야 20~30회 정도 진행하는 척수항암은 80회를 넘긴 지 오래였고 고용량 항암치료조차 여러 번 하다 보니 회복이 더뎌지기 시작했다. 쓸 수 있는 약이 점점 줄어들었다. 아이에게 버틸 방법이 별로 없다는 얘기였다.
한시가 급한데 어떠한 일도 빨리 진행되지 않았다. 급한 마음에 신랑은 걸핏하면 제약회사나 식약처 등에 연락을 해보았지만 진전이 없었다. 임상시험들은 여러 번 반려가 되었고 2021년 초면 허가가 될 거라던 킴리아의 소식도 들리지 않았다. 청원도 진행해보고, 여러 언론사에도 제보해봤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아이는 죽어가는데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상황에 미칠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