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의 숨이 끊어지는 것을 내 눈으로 확실하게 봤기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아이는 떠났고 우리는 여전히 살아남아 검은 상복을 입고 장례식장을 지키고 있었다. 조문객을 받지 않고 가족끼리 둘러앉아 울며 웃으며 은찬이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그것도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연락도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고 조문객들이 몰려왔다. 수많은 손님 중에 은찬이의 손님은 어릴 때부터 친했던 친구 몇 명과 동네 이모들, 병원 이모들, 피아노 선생님뿐이었고 나머지는 은찬이를 모르는 나와 신랑의 손님들이었다. 감사하지만 공허했다.
조문 온 어른들은 하나같이 남은 딸에게
"네가 엄마 잘 보살펴줘야 돼."
라고 당부를 했다. 그래서인지 철없던 딸은 나에게 딱 붙어 이런저런 말을 걸며 자기의 방식으로 나를 챙겨보려 했다.
"엄마, 오빠랑 똑같은 동생 낳아주세요. 오빠에게 못해준 것 다 해주려고요."
하며 덤덤하게 얘기하는 딸이 안쓰러웠다.
아이가 떠나면 모든 게 끝일 줄 알았는데 여전히 해야 할 일이 많았다. 가장 먼저 영정사진을 골라야 했다. 몇 년 전 콩쿨 제출용으로 찍어두었던 예쁜 사진을 고민 없이 꺼내며
'이 사진이 결국 이렇게 쓰이려고 이렇게도 예쁘게 나왔구나.'
허탈했다. 아이를 뉘울 관을 고르고 장식할 꽃과 손님 접대할 음식, 아이를 화장하고 나서 담을 유골함도 직접 골라야 했다. 마지막이니 뭐든 최고로 좋은 것으로 해주고 싶었지만 아이의 장례는 보통 그러지 않는단다. 화려하고 예쁜 관은 어른들 용이고 아이에게 맞는 것은 제일 작은 오동나무관뿐이었고 맞는 수의도 없어서 평소에 입던 옷을 갖고 오라고 했다. 최근 몇 개월간 병원복 아니면 트레이닝복만 입던 아이라 마땅한 옷이 없어 급히 온 집안을 뒤져서 즐겨 입던 파스텔톤 줄무늬 셔츠와 청바지, 하나뿐인 명품자켓을 챙기고 마지막으로 아산병원에 있을 때 간호사 선생님이 생일선물로 사주셨던 양말을 챙겼다.
발인 전날 입관식을 하기 위해 온 가족이 관 주변에 둘러섰다. 아이들은 염도 하지 않는다고 해 오히려 다행이었다. 헤어질 때의 모습처럼 가만히 누워있는 아이를 보고 어머님은
"이 어린애한테 어떻게 이래. 어떻게 애를 이렇게 만들어!!"
하고 오열하며 결국 쓰러지셨다.
3일장을 마치고 연화장으로 자리를 옮기는 길... 원래는 고인의 형제가 영정사진을 들어야 하지만 동생이 너무 어리니 시키지 말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둘째가 벌떡 일어났다.
"아니요. 제가 할게요. 오빠한테 해준 것도 없는데 이거라도 해야죠."
하며 어른들에게서 하얀 장갑을 빼앗듯 받아 들고는 12살 동생은 오빠의 사진을 끌어안고 한 발 한 발 덤덤하게 영구차로 걸음을 옮긴다. 영구차를 타고 연화장으로 이동하며
"은찬아, 이제 조금만 있으면 집에 갈 거야."
말하며 여태 그렇게도 많이 참았는데 뜨거운걸 한 번 더 견뎌야 집에 갈 수 있다는 사실에 또다시 가슴이 찢어질 듯 미안해졌다.
화장을 하고 분골을 해서 유골함에 담는 과정을 지켜보며 눈물이 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아이가 이제 아프지 않다는 사실 만으로 위로가 되었다. 그렇게 아이는 작은 유골함에 담겨 집으로 돌아왔다. 애초부터 납골당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새 집으로 이사할 거라고 얘기했을 때 은찬이가
"엄마, 내방도 만들어 줄 거지요?"
했었는데 그게 이런 의미인가 싶어 이사를 하고도 아이의 방을 그대로 두고 유골함도 아이방에 둘 셈으로 장식장을 주문했다. 신랑은 나중에 나 죽으면 은찬이와 같은 곳에 모셔주겠다며 농담 아닌 농담을 했다.
셋이 남은 집의 고요함을 떨쳐보려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나는 예능프로그램을 의식적으로 틀어놓고, 다들 아무렇지 않은 척 은찬이의 영정사진을 여기저기 들고 다니며 함께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 보내고 며칠 만에 딸은 학교에 갔고 신랑도 1주일 후부터 출근을 했다. 집에 오롯이 혼자 남게 되자 가족과 온종일 붙어있을 때는 애써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아이가 떠나자마자 주변 사람들은 내가 아이 따라간다고 나쁜 생각이라도 할까 봐 걱정을 했지만 그럴 생각은 없었다. 그런 선택을 하면 영영 아들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저
'왜 그렇게도 훌륭한 은찬이가 보잘것없는 나보다 먼저 떠났을까? 아들의 짧은 삶에 어떤 뜻이 있었던 것일까?'
그게 의문스러울 뿐이었다. 해답을 찾아보려 매주 도서관을 뒤졌고, 상담센터나 정신과까지 찾아가 봤지만 어디에서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