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신약, 애증의 신약

은찬이 대신...

by 이보연

처음에는 아이가 아프지 않다는 사실만으로도 위로가 되었고 연명치료를 하지 않은 게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여러 가지 후회가 몰려왔다. 만져볼 수라도 있게 중환자실에 의식 없이라도 누워있었으면 좋겠다는 못된 생각까지 들었다. 치료과정 중에 내가 잘못한 것은 없었나 수없이 되돌려보며 후회할 거리를 찾았고, 신약을 쓰지 못하게 된 과정들이 수없이 원망스러웠다. 결국 이럴 것을 왜 그 어린아이에게 수없는 고통을 겪게 했을까 신마저 원망스러웠다. 자식을 잃은 아픔은 참척의 고통과도 같다고 하더니 그 이상이었다. 살아가는 것이, 아이 없이 그저 살아내는 것 자체가 형벌과도 같아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웠다.


아이가 떠난 지 3개월이 지났을 즈음 블로그를 통해 백혈병환우회 대표님께 연락이 왔다. 킴리아의 국민건강보험 적용과 관련하여 목소리를 내려고 하는데 도움이 필요하다고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비싼 약값에만 관심을 둘뿐 어려운 사람은 이 약을 쓸 수 없다는 사실에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고 있는 상황에 화가 나 있던 참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뭐든 돕겠다고 했다.


그즈음 한 국회의원실에서도 연락이 왔다. 국회 국정감사 때 참고인으로 출석해 은찬이에 관한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다. 정치적인 일이 아니라면 그 역시 하기로 했다.


아이를 보낸 지 몇 개월 되지 않은 시점이어서 아이일을 떠올리는 것조차 사실 힘든 일이어서 할 이야기를 준비할 때면 며칠씩 말이 없어졌고, 발언을 마치고 나면 며칠을 끙끙 앓곤 했지만 앞으로 은찬이처럼, 우리 가족처럼 슬픈 일을 겪는 사람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으로 견뎠다. 우리 훌륭한 은찬이라면, 은찬이가 치료를 무사히 받고 살아있었다면 아마도 어려운 가정을 위해 신약의 보험적용을 해달라는 운동을 직접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 일을 내가 대신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제일 처음 한 일이 인권위에 생명과 직결된 신약의 건보 적용이 빠르게 진행되지 않아 인권이 침해되었다는 진정서를 제출하며 기자회견을 하는 일이었다. 남 앞에 나서는 것을 싫어하는 나에게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지만 '아들 대신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발언을 하려고 인권위 앞에 마이크를 들고 서서 고개를 들었는데 멀리 서울타워가 보였다. 서울타워에 가자고 노래를 부르던 아들은 몇 년 만에 간 서울타워에서 고작 불 들어오는 볼펜 하나 사고는 좋아서 몇 달을 만지작거리며 아끼고 또 아끼곤 했다. 다음에 또 가자고 했었는데... 울컥 눈물이 나려는 것을 참았다.


"저는 킴리아 치료를 기다리다가 치료를 받지 못한 채 하늘나라로 떠난 차은찬 아이의 엄마입니다."


발언은 항상 그렇게 시작했다. 뒤로 한참 더 주절주절 말하곤 했지만 사실 이 한마디면 모든 게 다 표현되었다. 마이크를 들고 소중한 우리 아들의 이야기를 하는 동안 수많은 인파들은 힐긋 쳐다보며 바쁜 걸음을 옮길 뿐 그 내용에 관심을 두는 이는 거의 없었다. 그래도 영상이 남을 테니, 뉴스가 나올 테니... 아이를 살릴 방법이 있는데 그 치료를 받지도 못하고 아이를 떠나보낸 부모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려주기를 바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국회 국정감사에도 출석했다. 잘은 모르지만 국정감사 때는 국회의원마다 증인, 참고인의 발언까지 포함하여 발언시간이 정해져 있는 모양인데 한 국회의원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나와 몇몇 참고인에게

"하고 싶은 말씀 하세요."

하고 마이크를 돌렸다. 사전에 전혀 얘기된 바가 없던 상황이기에 당황스러웠지만 은찬이가 이런 일을 겪었으며 지금은 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고 있는 아이들이 있으니 국민건강보험적용이 될 수 있게 해달라고 이야기했고, 다른 분들도 순서대로 발언을 했다. 우리의 발언이 끝나자 다른 당 의원이 눈썹을 치켜세우고는 이런 식으로 시간을 넘겨서 쓰면 곤란하다며 불같이 화를 냈다.

새끼가 죽고, 가족이 잘못되는 일을 겪었다는 우리의 말을 듣기는 한 걸까?

이해할 수 없었다.


한차례 더 질문을 받았고 답변을 했다. 국내에서 신약이 허가를 받고 사용되어지는 과정이 매우 답답하고 보수적이라는 이야기를 했지만 그에 대해 관계부처에서는 '이 일은 전문가들이 할 일이고 전문가들이 알아서 하고 있는 일'이라고 답했다. 그 과정 중에 결국 내 새끼가 죽었는데 그 전문가들이 자기 일을 잘하고 있다는 얘긴가 내 귀를 의심했다.


그 후로도 쭉 청원을 진행했고 1인 시위나 인터뷰를 이어나갔다. 청원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극적인 사건이나 어느 범죄좌의 신상을 공개해달라는 청원 같은 것은 금세 20만 명을 넘겼지만 은찬이의 일은 그저 안타까운 일일뿐 분노하고 화내는 이들이 많지 않았다.

'내 일일 수도 있는 일'과 '내 일이 아닐 것 같은 일'에 대한 보통사람들의 온도차를 극명하게 느끼며 많이 아팠다. 온라인상으로 수없이 글을 퍼 나르며 동의를 구하고 인권위 앞에서, 국회에서 마이크를 들고 서봤지만 메이저 언론에 보도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은찬이가 살아있을 때도 수없이 많은 기자들에게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었지만 아무도 기사화해주지 않았었다.

자극적이지 않아서... 그렇게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우리도 10년 전까지 우리가 이런 상황에 놓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내 아이가 백혈병이라는 큰 병에 걸린걸로도 모자라 내 곁을 떠나게 될 거라고는, 살릴 수 있었던 약을 눈앞에 두고도 아이가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줄은, 내가 자식 잃은 부모가 될 거라고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다. 남들도 다 그렇게 생각하기에 우리 일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기는 하지만 그것뿐, 아무도 행동으로 나서 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도 그들 중 한 명이었으니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더 그 고통을 아는 나까지 힘들어하고 있는 사람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내가 뭐라고... 내 아이가 못쓰고 간 약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걱정 없이 쓰게 하고 싶다는 오기가 생겼다.

그렇다고 내가 개인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블로그에 주기적으로 관련 글을 올리고 간혹 인터뷰하는 것뿐이었다. 성과는 지지부진했다. 그렇지만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어서 소리 없는 외침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해를 넘겨 2022년 1월 13일, 약평위 심의를 앞두고 심의장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했고 그날 약평위 심의 통과 소식을 들었다. 좋은 소식이긴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약가협상과 건정심 심의가 남아있는데 이 과정이 두 달 이상 걸린다고 했다. 화가 났다.

이 약이 필요한 사람들은 6개월을 견디기 힘든데, 그 과정은 1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이미 해외 여러 나라에서 안정적으로 쓰이는 약인데 국내 도입이 늦었다면 더 빨리 서둘러야 할 일 아닌가? 어째서 그 과정은 여전히 느리고 모든 약의 심의과정과 속도가 같은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속도를 내게 하기 위해 무언가 더 힘을 보태고 싶었지만 할 수 있는 일은 국회의원들을 만나 호소하거나 기고글을 쓰거나 인터뷰를 하고 대선 때 각 캠프에 생명과 직결된 신약의 신속 등재제도를 만들어달라는 건의를 하는 것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대선을 앞두고 메이저 언론사와 인터뷰를 했다. 그간 보아왔던 기자들과 다름없이 구미에 맞는 기사만 내보내겠지 큰 기대 없이 인터뷰를 했다. 그리고 3월 어느 날, 8시 뉴스에 아들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재작년 엄마 생일에 개사해서 불러주었던 노래...


"제가 완치되는 날 환하게 웃으세요. 엄마를 생각하면 왜 눈물이 나지.

이 세상에 좋은 것 모두 드릴게요. 엄마 사랑해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2022년 3월 31일 약은 드디어 건정심 심의를 통과하여 4월 1일부로 건강보험 적용이 된다고 했다. 5억이었던 약을 이제 500만 원대로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그 정도면 되었다. 그 정도면 무리해서라도 마련하기 어려운 비용은 아니었고 어려운 가정은 사회복지적 지원을 받아 마련할 수 있으니 되었다 안도했다.


3월 31일, 환우회 사람들 몇 명과 자리를 마련했다. 사실 이날이 오면 마음 한켠이 많이 아플 줄 알았는데 그저 기뻐 함께 웃을 수 있었다. 아이를 보낸 지 9개월이 다 되어가지만 나는 여전히 은찬이 엄마로 불리며 은찬이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게다가 딸은 내가 나오는 뉴스를 찾아보며

"엄마, 엄마는 어려운 사람들이 약을 쓸 수 있도록 하는 운동을 하니까 인권운동가지요?"

하며 자랑스러워했고 신약의 보험적용을 누구보다 기뻐했다. 여러 사람들이 이 일에 내 도움이 컸다고 말하지만 나는 사실 잘 모르겠다. 정말 나의 노력으로 조금 당겨지기는 한 거지, 나와 환우들이 그렇게 소리쳤지만 원래의 속도대로 진행된 건지...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809437&CMPT_CD=P0010&utm_source=naver&utm_medium=newsearch&utm_campaign=naver_news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6667358&plink=ORI&cooper=NAVER

http://www.bosa.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64136

http://www.kukinews.com/newsView/kuk20211006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