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찬이 대신...
"하고 싶은 말씀 하세요."
하고 마이크를 돌렸다. 사전에 전혀 얘기된 바가 없던 상황이기에 당황스러웠지만 은찬이가 이런 일을 겪었으며 지금은 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고 있는 아이들이 있으니 국민건강보험적용이 될 수 있게 해달라고 이야기했고, 다른 분들도 순서대로 발언을 했다. 우리의 발언이 끝나자 다른 당 의원이 눈썹을 치켜세우고는 이런 식으로 시간을 넘겨서 쓰면 곤란하다며 불같이 화를 냈다.
새끼가 죽고, 가족이 잘못되는 일을 겪었다는 우리의 말을 듣기는 한 걸까?
이해할 수 없었다.
한차례 더 질문을 받았고 답변을 했다. 국내에서 신약이 허가를 받고 사용되어지는 과정이 매우 답답하고 보수적이라는 이야기를 했지만 그에 대해 관계부처에서는 '이 일은 전문가들이 할 일이고 전문가들이 알아서 하고 있는 일'이라고 답했다. 그 과정 중에 결국 내 새끼가 죽었는데 그 전문가들이 자기 일을 잘하고 있다는 얘긴가 내 귀를 의심했다.
그 후로도 쭉 청원을 진행했고 1인 시위나 인터뷰를 이어나갔다. 청원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극적인 사건이나 어느 범죄좌의 신상을 공개해달라는 청원 같은 것은 금세 20만 명을 넘겼지만 은찬이의 일은 그저 안타까운 일일뿐 분노하고 화내는 이들이 많지 않았다.
'내 일일 수도 있는 일'과 '내 일이 아닐 것 같은 일'에 대한 보통사람들의 온도차를 극명하게 느끼며 많이 아팠다. 온라인상으로 수없이 글을 퍼 나르며 동의를 구하고 인권위 앞에서, 국회에서 마이크를 들고 서봤지만 메이저 언론에 보도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은찬이가 살아있을 때도 수없이 많은 기자들에게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었지만 아무도 기사화해주지 않았었다.
자극적이지 않아서... 그렇게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우리도 10년 전까지 우리가 이런 상황에 놓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내 아이가 백혈병이라는 큰 병에 걸린걸로도 모자라 내 곁을 떠나게 될 거라고는, 살릴 수 있었던 약을 눈앞에 두고도 아이가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줄은, 내가 자식 잃은 부모가 될 거라고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다. 남들도 다 그렇게 생각하기에 우리 일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기는 하지만 그것뿐, 아무도 행동으로 나서 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도 그들 중 한 명이었으니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더 그 고통을 아는 나까지 힘들어하고 있는 사람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내가 뭐라고... 내 아이가 못쓰고 간 약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걱정 없이 쓰게 하고 싶다는 오기가 생겼다.
그렇다고 내가 개인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블로그에 주기적으로 관련 글을 올리고 간혹 인터뷰하는 것뿐이었다. 성과는 지지부진했다. 그렇지만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어서 소리 없는 외침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해를 넘겨 2022년 1월 13일, 약평위 심의를 앞두고 심의장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했고 그날 약평위 심의 통과 소식을 들었다. 좋은 소식이긴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약가협상과 건정심 심의가 남아있는데 이 과정이 두 달 이상 걸린다고 했다. 화가 났다.
이 약이 필요한 사람들은 6개월을 견디기 힘든데, 그 과정은 1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이미 해외 여러 나라에서 안정적으로 쓰이는 약인데 국내 도입이 늦었다면 더 빨리 서둘러야 할 일 아닌가? 어째서 그 과정은 여전히 느리고 모든 약의 심의과정과 속도가 같은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속도를 내게 하기 위해 무언가 더 힘을 보태고 싶었지만 할 수 있는 일은 국회의원들을 만나 호소하거나 기고글을 쓰거나 인터뷰를 하고 대선 때 각 캠프에 생명과 직결된 신약의 신속 등재제도를 만들어달라는 건의를 하는 것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제가 완치되는 날 환하게 웃으세요. 엄마를 생각하면 왜 눈물이 나지.
이 세상에 좋은 것 모두 드릴게요. 엄마 사랑해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2022년 3월 31일 약은 드디어 건정심 심의를 통과하여 4월 1일부로 건강보험 적용이 된다고 했다. 5억이었던 약을 이제 500만 원대로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그 정도면 되었다. 그 정도면 무리해서라도 마련하기 어려운 비용은 아니었고 어려운 가정은 사회복지적 지원을 받아 마련할 수 있으니 되었다 안도했다.
3월 31일, 환우회 사람들 몇 명과 자리를 마련했다. 사실 이날이 오면 마음 한켠이 많이 아플 줄 알았는데 그저 기뻐 함께 웃을 수 있었다. 아이를 보낸 지 9개월이 다 되어가지만 나는 여전히 은찬이 엄마로 불리며 은찬이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게다가 딸은 내가 나오는 뉴스를 찾아보며
"엄마, 엄마는 어려운 사람들이 약을 쓸 수 있도록 하는 운동을 하니까 인권운동가지요?"
하며 자랑스러워했고 신약의 보험적용을 누구보다 기뻐했다. 여러 사람들이 이 일에 내 도움이 컸다고 말하지만 나는 사실 잘 모르겠다. 정말 나의 노력으로 조금 당겨지기는 한 거지, 나와 환우들이 그렇게 소리쳤지만 원래의 속도대로 진행된 건지...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6667358&plink=ORI&cooper=NAVER
http://www.bosa.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64136
http://www.kukinews.com/newsView/kuk20211006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