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로 돌아간 천사
자녀를 떠나보내고 나면 가정이 무너지기 쉽다. 아이를 잃은 고통에 각자 허우적대며 서로를 할퀴는 동안 남아있는 아이 역시 방치되기 십상이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우리의 행복이었던 은찬이가 우리의 불행이 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싶었지만 그게 잘 되지 않았다.
남아있는 둘째에게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오빠의 투병으로 오랫동안 엄마의 손길을 못 받은 아이는 도무지 내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었다. 둘째 아이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면 나와 너무나 잘 통하던 은찬이가 생각나서 눈물이 쏟아졌다. 왜 내 단짝 친구였던 하나뿐인 아들을 데려갔는지 원망스러워 매일 울었다. 둘째는 둘째대로 힘들어했다. 엄마보다도 더 의지하던 든든한 오빠가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힘들 텐데 엄마와 맞추는 것도 쉽지 않으니...
서로 어려운 시간을 보내던 중 어느 날 딸이 말했다.
"엄마, 엄마는 죽고 싶다는 생각한 적 없어요?"
"왜?"
물으니
"오빠 보고 싶을 때... 죽으면 오빠 볼 수 있으니까..."
하는 아이...
너무나 다른 우리지만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엄마도 그럴 때 있지... 오빠 보고 싶을 때... 그런데 오빠는 천사라서 자살을 하거나 나쁘게 살면 못 만나니까 착하게 열심히 살아야 만날 수 있는 거 알지?"
최대한 덤덤하게 얘기해준다. 모녀지간에 오가기에 살벌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우리 상황에서는 이게 가장 건강한 거고 최선이라 믿는다.
은찬이가 떠나고 블로그에 처음 올렸던 글 제목이 '천사는 하늘로 돌아갔습니다.'였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은찬이는 평범한 신랑과 나 사이에서 나올 수 없는 아이일뿐더러 주변 어디에서도 들은 적이 없는 훌륭한 아이여서 아무래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천사 한번 키워보라고 맡긴 모양이라고 우리끼리 얘기했었다.
아이의 짐을 정리하며... 깨끗하게 정돈되어있는 책상이며 짐들이 13살 남자아이의 방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돈은 또 얼마나 알뜰하게 모아놨는지... 통장에 모아둔 돈까지 자그마치 300만 원이나 있었다. 장학금이며 용돈 한 푼 허투루 쓰지 않던 아이가 생각나 목이 메었다.
다 나으면 완치 기념 기부를 해야겠다고 했던 아이의 말이 생각나 재단에 기부를 하고 아이 이름이 쓰여진 상장을 받았다. 은찬이가 직접 받았으면 얼마나 좋아했을까...
은찬이가 떠난 지 10개월이 지난 지금도 은찬이와 함께 했었고 은찬이가 없는 지금의 현실이 모두 꿈만 같다.
멀쩡하게 길을 걷다가도
'어? 왜 은찬이만 없지?'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어 무너지곤 한다. 악몽 같은 현실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 가족은 은찬이의 삶이 헛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하루하루 그 의미를 찾으며 살아가고 있다.
신랑은 신랑대로 직장에서 최선을 다해 일하고, 나 역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해내려 노력 중이다. 은찬이 대신 의사가 될 수는 없지만 은찬이 대신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열심히 해보려 한다. 그렇게도 살고 싶어 했던 은찬이 대신 사는 삶인데 한순간도 헛되이 보내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살아간다.
은찬이는 없지만 때때로 은찬이를 기억하는 분들이 연락을 주시거나 선물을 보내주신다.
"은찬이 같은 아이를 맡아 볼 수 있었던것은 의사로서 최고의 선물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는 담당선생님의 메시지와 몇년동안 은찬이 주려고 가지고 계셨다며 보내주셨던 2018년 날짜의 악보를 받아보며
'은찬이는 여전히 사랑받는 아이이구나.'
미소와 눈물을 함께 하게 된다.
오빠를 따라 어릴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우던 둘째는 오빠의 유품인 바이올린 소리를 내주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전공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오빠 바이올린을 잡으면 오빠가 도와준다는 생각이 든다며 연주 전에 항상
'오빠, 도와줘.'
하고 연주를 시작한다는 둘째는 영재원 오디션에 합격하던 날 오빠가 도와줬나 보라며 뛸 듯이 기뻐했다. 워낙 뛰어났던 오빠 덕에 항상 이인자였는데 어느덧 오빠도 배우지 못한 곡까지 연주해내고 있는 둘째는 오빠 이상으로 훌륭한 연주를 해낼 거라 믿는다.
은찬이가 있던 시끌벅적하고 즐거웠던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은찬이의 몫까지 나누어 짊어지고 넷인 듯 열심히 사는 셋이 되어보려고 한다. 나중에 은찬이 만나면
"은찬아, 엄마 너 없이 이렇게 씩씩하게 잘 살다왔어. 잘했지?"
하고 자랑해야지.
은찬아.
우리 다시 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