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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단백 Jul 31. 2023

01. 딩크와 임신 사이

그 어딘가 방황하는 내 마음

유명 여초 커뮤니티의 인기글 란을 보면 게시글에 별 내용이 없어도 댓글은 항상 뜨거운 감자인 주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딩크와 유자녀의 삶에 대한 글.


게시글은 이제 노산이 되기 전 결정해야 하는데 아기를 낳을지  딩크로 살지 고민된다는 글부터 아기가 있으면 어떤 게 좋으냐는 단순한 질문, 자유롭게  FLEX 하는 행복을 모르다니 당신은 불쌍해요. 식의 유자녀 상대방을 돌려 까는(?) 글들까지 아주 다양하다.

이런 글은 대부분 본문보다 댓글에서 치열하게 논쟁이 일어나는데 마치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고 팽팽히 대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항상 다양한 의견을 눈팅하는 것을 좋아해서 재미있게 댓글을 읽어 내려가다가 무논리 키보드 워리어 몇 명이 승자 없는 싸움을 시작하면 머리가 어질어질해져서 휴대폰을 덮어버리곤 한다.


5년 전, 결혼을 앞두고 남편과 자녀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며 이런 글들을 얼마나 검색하고 읽어댔는지 모른다.

아마 나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이가 있는 삶이 지금보다 더 행복하면 낳고 안 행복하다면 안 낳는 그런 단순한 셈법을 적용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공식적 노산인 만 35세를 코앞에 둔 작년까지도 주변 동료와 친구들 대부분이 임신하거나 시험관 시술하면서 고생하는 걸 보고도 아직도 딩크로 살지 아이를 낳을지 고민하는 사람이었다.


아이를 낳는데 스스로를 납득시킬 이유가 필요했다.

변화에 대한 이유는 필요하지만 가만히 있는 것에는 이유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결혼을 안 한 사람에게 '왜 결혼 안 해요?' 하면 무례한 질문이고,

결혼한 사람에게 왜 결혼하기로 마음먹었어요?라고 하는 건 자연스럽다.


하물며 요즘세상에 각 집안 사정도 모르는 타인이 물어보는  '왜 아이가 없어요?'라는 질문은 충격적 이리만큼 무례하다.

그런데 눈치 없는 회사 꼰대들은 남의 집 가족계획에 관심 대폭발이다. 

엽산이라도 한통 사주고 물어보던가...


-결혼 언제 했지?

-애는 아직 없어?

-왜 아직 안 가졌어?

로 이어지는 레퍼토리는 이제 지겨울 정도이다.


신혼 때는 네네 하며 흘려들었는데 진지하게 아이를 고민하기 시작한 뒤로는 정말 무례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라 생각되고 질문을 받을수록 모나지는 내 마음속을 들여다 보며 스스로도 혼란이 왔다.


난 정말 아이를 갖고 싶은가? 


자녀가 있는 미지의 삶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자녀가 있는 지인들에게 아이를 가지기로 결정한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개개인의 가치관과 배우자의 생각, 경제능력, 현재 본인의 사회적인 성취까지 처해진 상황이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에 참고는 될지 몰라도 내가 딩크를 포기할지 말지 결정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생각보다 상당수의 부부가 아이를 원래부터 가지려고 했으니 자연스러운 순서로 임신을 한 것도 알게 되었다.

나처럼 심각하게 고민을 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는 것이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딩크로 사는 지인과 딩크를 유지하려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할 땐 결국 아이를 가질 때의 경제적, 환경적 장애물에 대해 이야기만 하게 되었다. 자녀가 있는 것의 기쁨이라던가 그런 걸 모르는 둘이서 토론을 해봤자 도돌이표일 뿐, 답이 안 나왔다.


 결국 임신과 출산의 단점은 너무나 뚜렷하고 숫자로 계산할 수 있지만 장점은 뿅 하고 생긴 아이라는 생명체와 관련된 무형의 가치라 요즘 같은 물질만능주의 시대에는 더 임신과 출산의 가치가 평가절하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지내던 와중, 회사가 합병이 되면서 여러 가지 변화가 생겼다. 많은 동료들이 회사를 떠나고, 매니저도 변경되고 일도 동기부여가 안되고 재미없었다. 11년간 달려온 회사생활에 잠시 쉼표를 찍기엔 지금이 적기일 텐데...라고 생각하다 보니 임신의 단점을 일단 나열해 보고 나 스스로 감당이 되는지부터 생각해 보기로 했다.

 



1. 경제적 문제


어린 시절 끊임없이 경쟁해서 최고는 아니어도 나름 만족할 만한 결실을 손에 쥐었고 커리어우먼으로 사는 삶이 좋다. 회사 생활하면서 승진도 하고 결혼도 하고, 이제 겨우 돈이 차곡차곡 모인다. 이제야 불확실성이 가득하던 삶에서 벗어나 안정되었는데 굳이 변화를 또 줘야 할까?  

나의 경우 주변에 육아를 도와줄 어른이 계시지 않고, 내가 체력이 약해서 워킹맘이 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그러면 사람을 쓰거나 퇴사를 각오하고 임신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남편의 소득만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겠지만 두 명 벌어 둘이 사는 삶에서 하나 벌어 셋이 사는 삶의 차이는 계산기를 두들기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거기다 애 한 명 키우는데 몇억이 든다며? 오 마이갓. 

신혼 때, 몇 년 뒤 집을 사면 더 안정적인 환경에서 아이를 키울 수 있을 거 같아 집 살 때 까진 고민 해보자~라고 하며 미루고, 영끌로 집을 마련하고는 빚 갚느라 어영부영하다 보니 하나 정도는 키울 수 있을 거 같은데 이제 노산 기준이라는 만 35살이 되어버렸다.   


2. 육체적 손상


이건 엄마의 희생을 전제로 하고 있다.

몸매가 예전 같지 않고 관절이 약해지고 이런 건 아이를 낳은 모든 엄마가 겪는 이벤트다 보니 내게 생각보다는 큰 단점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힘들겠지만 사람은 영원히 젊지 않으니까.

이미 지금도 상처가 나면 감쪽같이 낫던 시절은 지나가 버렸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내가 아이를 낳고 아가씨 시절 몸매가 되지 않는다고 해도 자연스러운 노화로 받아들일 것 같았다. 아기 천사를 만나려면 나도 어느 정도는 희생이 필요하지 않을까? 물론 나는 이렇게 각오하고 있는데 남편은 아이가 생겨도 아무렇지 않다는 건 약간 배가 아프다.


3. 자유의 박탈


집순이라 코로나 사회적 거리 두기가 너무 행복했고 재택 할 때 1주일간 한 번도 안 나가도 아주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해외여행은 좋아해서 그게 살짝 걱정이 된다. 출장과 여행으로 비행기를 자주 타다 보니 아이의 영유아시기에 해외도 못 다니면 답답할 것 같긴 하다.

하지만 가고 싶은 국가는 이미 거의 다 다녀왔고 이제 프랑스에서 미슐랭 스타 식당을 가도 , 대학시절 프랑스에 처음 갔을 때 동네 빵집에서 갓 구운  크로와상을 한 입 베어 먹을 때의 감동의 크기만큼 행복하지가 않고 회사 비용으로 5성급 호텔로 출장을 가도 스마트폰 없이 지도를 보며 여행하고 유스호스텔에서 자던 시절보다 즐겁지가 않다.

어릴 적 느낀 그 감정은 정말 그 때 아니면 못 느끼는 것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3년을 해외에 못 나가면서도 꽤나 소소한 행복으로 국내에서도 즐겁게 보냈기 때문인지 몇 년간은 여행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 그리고 친구들 90프로는 지금 육아 중이라 나는 애가 없지만 약속을 잡아 만날 친구는 슬프게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


4. 아이의 행복여부


우리의 아이는 태어나고 싶을까?

이상기후, 미세먼지, 전염병이 수시로 인간을 괴롭히는 이 세상. '낳음 당했다'는 말이 아이들 사이에 유행처럼 돈다고 인터넷에서 보았다.

남편에게 물어봤다. 과거로 돌아가서 태어날지 말지 결정할 수 있다면 태어나고 싶냐고. 남편은 지금 삶이 행복하고 다시 태어날 거라고 했다.

나는 글쎄... 기본적으로 염세주의적 사고방식에 절여져 있어서 그런지 생은 고통이라고 생각되고 딱히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았다. 성장과정에서 힘들었지만 태어났으니 인간구실은 하자며 노력하며 사는 상황이랄까. 그래도 철딱서니 없이 낳음 당했다는 말은 안 썼는데... 그래도 아이를 낳는다면 그 아이는 자기 의지로 태어난 것이 아니니 부모로서 최대한 행복하게 해 주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그 너머의 영역은 본인이 개척해 나가야 할 부분이니... 미래의 자식에게 물어보지 않고서야 답이 없는 문제인 것 같다.

어차피 모든 아이는 부모의 욕심으로 태어나는 것이니 부모는 낳은 뒤 최선을 다해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이 의무인 것이다.    





그렇게 다양하게 고민하며 결혼 후 4년을 보내고 만 34살에 내린 결론은, 나는 생각이 많고 두려움이 많은 거지 아이를 가지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내가 엄마에게 가졌던 감정을 생각해 보면 무엇보다 세상에 누군가의 하나뿐인 엄마가 되는 것은 정말 특별한 일인 것 같다. 평생 나와 사랑으로 연결된 가족이 늘어난다는 것도 기쁨일 듯하고. 금전적으로도 한 명 정도는 우리 부부가 사랑 듬뿍 줘가며 키워도 무리가 없을 거 같았다.


 그렇지만 아이가 안 생기더라도 자유롭고 오롯이 나만을 위해 내 시간을 쓸 수 있는 딩크의 삶도 나쁠 거 같지는 않았다.


그럼 일단 시도라도 해보자!




 이제 아이를 가지기로 노력하기로 마음먹었기에 우리 부부는 병원에 가서 산전검사부터 받아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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