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이 걸을 때마다 엉덩이가 춤을 춘다. 군살 하나 없이 매끈한 엉덩이가 탄력 있게 율동하는 모습에 나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건강한 젊음에 대한 욕망일까. 지나간 시간에 대한 미련일까. 야심한 시각 맥없이 tv 채널을 올리다가 케이블 채널에서 하는 란제리쇼에서 멈춘다.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속옷을 입고 여성 모델들이 끊임없이 걸어 나왔다 들어간다. 어떤 속옷보다도 내 눈을 잡아 끈 것은 모델의 걸음마다 살아있는 엉덩이의 탄력이었다.
나도 모델을 꿈꾸었더라면 어땠을까. 불쑥 내 속에서 올라온 생각. 나는 당황했다. 평생에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여겨왔는데 왜 이제 와서? 요즘 부쩍 내 삶 안에서 생각도 할 수 없었던 것들이 궁금했다. 왜 나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까. 누가 하지 말라고 한 것도 아닌데.
란제리쇼라는 것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오래전 그룹 지오디가 데뷔 시절에 했던 인터뷰였다. 아직 인기를 얻기 전이어서 궁핍한 합숙생활을 한다고 했다. 밤이면 돈도 없고 먹을 것도 없고 심심하니 케이블 tv에서 하는 란제리쇼를 본다고 했다. 지금 같으면 정말 본대도 절대 말하지 않을 테지만 막 데뷔해서 너무 순진했던 모양이다. 걸러야 할 말을 걸러내지 못했다.
나는 그 인터뷰를 보며 란제리쇼? 그게 뭐지? 했던 것 같다. 케이블 채널이 지금만큼 활성화된 때도 아니었고 늦은 밤까지 tv를 보지 않아서, 혹은 관심조차 없었기에 그런 프로그램의 존재를 몰랐다. 다만 tv에서 그런 쇼를 한다니 아무리 한밤이라지만 아이들이 보면 어쩌려고 저러나 걱정했던 것도 같다. 어느 날 tv에서 처음 보았을 땐 별게 다 있다고 생각했고 바로 채널을 돌려 버렸다. 그런데 오늘따라 런웨이를 걷는 모델들의 경쾌한 걸음걸이가 너무 예뻤다.
아이들의 뽀얗고 매끈한 얼굴이 예쁘다는 것을 사십 대가 되어서야 알았다. 그것이 바로 젊음이라는 것을. 예전에 화장하는 고등학생에게 너희들은 화장 안 해도 예쁠 나이라고 꼰대 같은 말을 하곤 했는데 요즘은 초등학생도 화장을 한다. 그러니 그런 말은 이제 시대에 뒤떨어진 말처럼 들린다. 나도 실은 젊음과 탄력을 가졌을 땐 그것이 좋은 줄을 1도 몰랐다. 그것들이 사라지고서야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선지 이젠 얼굴뿐 아니라 탄력 있는 몸매를 보면 그렇게 부럽고 예쁘다.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지, 탄식할 뿐이다.
몸매를 가꾸기 위해 어떤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그들이 가진 젊음을 부러워만 하는 것이다. 노력한다고 젊음이 가졌던 탄력이 다시 돌아오지는 않겠지만서도. 미안하지만 나이 들어서까지 탄력을 유지한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자기 나이 또래보다 건강하다는 것이지 이십 대의 탄력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나도 이십 대 때는 한 몸매 했는데. 한밤 란제리쇼를 보다가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이 솟았다. 그때는 왜 그걸 몰랐을까. 내가 가진 것들을 맘껏 누리고 살아도 좋았을 텐데. 내가 가진 것보다 좋아 보이는 남의 것만을 바라보며 생을 낭비했다. 모델이 몸매만 좋다고 되는 건 아닌 줄 알지만 왜 한 번도 해 볼 생각은 하지 않았을까. 나라면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같은 자만심이 아니라 아무것도 도전하지 않은 생에 대한 후회일 것이다.
물론 나는 몸을 움직이는 것이라면 모두 싫었다. 체육 시간이 있는 날은 학교에 가기 싫었다. 학창 시절 고입과 대입 시험에서 누구나 다 받고 들어가는 체력장 이십 점을 나는 다 받지 못했다. 타고나길 근력 없이 태어났는데 못하는 걸 잘하려고 하니 더 싫었다. 공부할 시간도 모자랐던 시절에 운동은 언감생심이었다. 당시에 체육 전공이 아닌 여학생이 운동할 곳이 있기나 했는지도 모르겠다. 있었다 해도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운동에 투자하기는 어려웠으리라. 그럴 정도였으니 몸을 움직여야 하는 어떤 일이 내게 보이기나 했겠는가. 아마 그런 직업이 있다는 것도 몰랐을 것이다. 사회적 통념상 눈에 보이는 출세의 길에 그런 직업은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으리라. 그런데 이제 와 뜬금없이 그들이 대단해 보이고 부럽다니.
그저 공부해서 우선 대학에 가는 것만이 목표인 경주마 같은 시절이었다. 뭐든 대학 가서 하라고, 하고 싶은 건 그때 생각해도 된다고 등을 떠밀렸을 것이다. 나는 무엇이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인식하지 못했다. 해보지 않은 것이 모델만은 아닐 테다. 연극도, 노래도, 그림도, 디자인도, 악기 연주도. 나는 하고 싶은 게 많았을지도 모른다. 다만 꿈을 나중으로 미루고 미루다가 잊어버렸을지도. 이제는 찾으려 해도 너무 멀리 와버려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렸다.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남들처럼 공부해서 남들처럼 대학에 갔을 뿐. 남들처럼 회사에 들어갔고 결혼을 했다. 남이 가는 길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라도 해봤더라면 어땠을까.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을 찾아 남들이 다 가는 길을 따르지 않았더라면. 남들 다 가는 길이라도 하고 싶었던 것을 찾아서 갔더라면. 꼭 유명한 누구가 되지는 못했더라도, 무엇이든 한 번 해보는 것만으로 행복했을지 모른다.
지나버린 것들,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들을 떠올리면 무엇이든 할 수 있던 수많은 기회들을 눈감고 지나쳐버린 내가 나이 마흔을 훌쩍 넘기도록 '누구'도 되지 못했다는 사실이 뼈저리게 다가온다. 내가 가고자 했던 길이 무엇이었는지도 잊어버리고 남들이 가는 길을 그저 따라가던 나는 '아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