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리를 폈다. 첫 장에 "2019, 1년만 나를 사랑하기"라고 적어 넣었다. 마음 변하기 전에 용기 내어 크게 썼지만 그 방법은 몰랐다.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으므로.
하지만 다이어리에 적힌 그 말의 효력이었을까. 올해는 정말로 나를 사랑한 것 같다.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던 내 다이어리에는 어느 날 정신 차려 보니 일주일 스케줄이 빡빡하게 채워져 있었다.
1년만 나를 사랑하기로 결심했다
올 초 서점에서 만난 책 제목. 내 눈을 잡아 끈 책 <1년만 나를 사랑하기로 결심했다>를 집어 들고 휘리릭 넘겨 보았다. 바로 읽고 싶지는 않았다. 당시 비슷한 내용의 책을 여러 권 읽고 있었고 그때 내가 읽던 책들 대부분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 보내는 글이었다. 다만 <1년만 나를 사랑하기로 결심했다>라는 제목은 쉽게 잊히지 않았다. 제목만으로 내게 충분한 값이 되었다.
육아로 지쳐 있든 일에 치여 있든 '해야 하는 것'에 파묻혀 나를 잊고 사는 사람에게 '일 년'이라는 시한부는 굉장한 용기를 준다. 이제껏 살면서도 나를 사랑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해봐, 저렇게 해봐, 하는 안내 책들은 읽을 땐 좋아 보여도 막상 실천하려면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더도 말고 딱 일 년이라고 한다면 한 번 해봐도 좋겠다는 용기가 솟는 것이다.
하고 싶은 거 다해!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는 내 생의 순간 같은 것이 있었을까. 내 것이라고는 별로 가져본 적 없어서인지 스스로 그런 욕망을 가둬 버리고 '나는 물적 욕망이 없는 사람이야'라 생각하고 살아왔다. 욕구가 없으므로 하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별로 없었다.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앞 뒤 안 가리고 닥치는 대로 하고 싶었던 것들을 요일별로 짜 넣고 보니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집안일도 잘한다면 좋겠지만 그런 체력은 되지 않는다는 게 함정이었다. 남편이 뭐라 하는 것도 아닌데 지레 나에게 죄책감을 얹었다. 게다가 넉넉한 살림도 아닌데 경제적 도움이 전혀 되지 않는 일들 뿐이니. 그게 나를 가장 불편하게 했다. 하지만 일 년만 나를 사랑할 거니까, 내년엔 어찌 될지 모르니까 올해는 그런 부담을 모두 던져버리기로 했다.
의외였던 것은 내가 강의를 듣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기타를 치러 갈 때, 요가를 하러 갈 때도 남편이 나를 데려다준다는 것이었다. 물론 가능할 때만. 남편이 눈치 주지 않는데 혼자서 눈치를 보던 나는 더욱 미안해져서 그러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도 남편은 그만두지 않았고 나는 급기야 의심이 생겼다. 이 사람이 내가 돈 번다고 무슨 일을 또 벌리면 돈이 더 들어갈까 봐 차라리 그냥 놀라고 도와주는 건가? 한동안 그런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남편은 그냥 이렇게 말했다.
"당신 하고 싶은 거 다해!"
그 말을 한 것을 바로 후회하게 해 줄 수도 있었다. 하고 싶은 거 다하려면 카드가 닳도록 긁어대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그럴 배짱이 없다는 걸 남편도 아는 것이다. 시원하게 질러도 내가 그러지 못하리란 것을. 그래도 고마웠다. 다른 집 남편처럼 나가서 돈 벌어오라고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리고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하고 싶었던 것에 집중할 수 있었다.
안 써본 내 능력 써보기!
색연필 일러스트, 기타 연주, 요가까지. 인문학 강의처럼 가만히 듣는 것 외에 내가 직접 활동할 수 있는 것을 해 보기로 했다. 평생 그림과는 상관없이 살아왔고 학창 시절에는 미술 시간과 체육 시간이 제일 싫었으니 나로선 엄청난 도전이었다. 죽기 전에, 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그동안 못한다고 믿었던 내 몸의 기능을 한 번 써보고 싶었다. 해봐도 여전히 못하면 정말 그렇구나, 하고 인정하자고.
첫 번째는 그림 그리기였다. 처음엔 보태니컬 아트를 하고 싶었지만 가까운 곳에 배울 수 있는 곳이 없었다. 뚜벅이인 나로서는 접근성도 매우 중요했고 지인의 추천으로 색연필 일러스트를 배우기 시작했다.
색연필 일러스트 취미반이라 간단히 컬러링북 생각만 하고 갔는데 그림 그리는 기초부터 가르쳐 주셨다. 화실에서 배우듯이 꼼꼼하게는 아니지만 학교 다닐 때 배우지 못한 기본을 처음으로 배웠고, 재미있었다.
어릴 적 누군가 내게 너는 그림을 못 그린다 하기라도 했던 걸까. 몸서리치게 싫었던 그림 그리기가 생각보다 싫지 않았다. 해보지 않고 말았더라면 몰랐던 것을 알게 된 것만으로 충분히 좋았다.
봄에 시작하여 이번 겨울 학기까지 마치면 꼭 일 년이다. 일 년 배워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때문에 나는 아직도 하고 있다. 뭔가 빠르고 대단한 결과를 원했다면 나는 진작 그만두었을 것이다. 그냥 나를 알아보자고, 내가 할 수 있는지 해보자는 마음이 나를 지탱시켰다.
두 번째는 기타 연주. 기타는 고등학교 때 처음 배웠다. 고등학교 2학년 가을, 학교 축제에 공연을 하게 되어서 속성으로 배웠다. 동창 중에 락에 미쳐서 전자기타를 치던 친구가 있었는데 매일 저녁 몰려다니며 기타를 배웠고 몇 달간 연습해 공연했다. 그 후 고3이 되어 자연스레 그만두었다.
근 삼십 년 만에 그 기타를 다시 꺼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삼 년 전에 한 두 달씩 레슨을 받긴 했다. 일하면서 하느라 드문드문하다가 결국 그만두게 되었지만. 오랫동안 밴드를 유지시켜온 기타 동아리에 들어가면서 금방 그만두지는 말아야 한다고 나 스스로에게 다짐을 했다.
오랜만에 배우는 기타가 꽤 재미있었고 집에서 기분 내킬 때 기타 치며 노래 부르는 즐거움도 있었다. 물론 초짜의 솜씨라서 어려운 노래는 못 친다는 게 아쉽지만. 역시나 욕심내지 않으니까 즐거웠다. 이런 게 나를 사랑하는 거겠지. 무언가에 쫓기거나 손에 잡히는 결실을 위해 나를 압박하지 않는 것, 온전히 즐길 수 있음을 찾는 것.
세 번째는 요가다. 팔, 구 년 전쯤 요가를 했었다. 아이들이 어렸고 육아 때문에 일을 할 수 없어 집에 있을 때였다. 덕분에 오전에 짬을 낼 수 있었고 진도는 느리지만 그게 나에게 맞는 방식이었다. 건강이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내 몸이 알아차릴 정도였다. 하지만 다시 일을 시작하면서 그만둔 후 그동안 모아 둔 양식을 하나씩 꺼내 먹듯 내 체력의 창고는 급격히 비어갔다.
올해 다시 요가를 하러 갔다. 몸의 여기저기가 삐걱거렸는데 얼마나 쓰지 않았던지 어디가 아픈지도 몰랐다. 요가를 하면서 내가 어디가 아프고 어디가 불편한지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한동안 아픈 것을 참고 억지로 하다가 요가보다 치료가 우선인 것 같아 요가를 그만두었다. 이번에 아픈 것이 나으면 필라테스를 할 참이다. 지인들이 추천하니 한 번 도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써보지 않은 기능 써보기!
1년 동안 나를 사랑해 보았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어떤 걸까? 있는 그대로 봐주고 그가 원하는 것을 조용히 응원해 주는 것, 그게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나를 사랑한다기에 뭔가 거창한 것이 있을 줄 알았는데, 별것 없었다. 다이어리 앞에 적어 놓았을 뿐, 크게 신경 쓰지 않았고 애쓰지도 않았는데 마법의 주문처럼 나를 이끌어주었다.
이전과 달라진 것을 굳이 꼽자면 누가 하라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나의 선택으로 했다는 것. 주위 여건이나 환경 혹은 상황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것을 하지 않았다는 것. 그것이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이유였다. 남의 눈치 보지 않고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안다. 그런 시간이 내게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그 기회의 문을 지나치지 않고 열고 들어갔다는 것에 감사한다.
막연히 내가 원하는 것을 하자고 했다면 시작도 못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올해만이라도, 일 년 만이라도,라는 단서를 붙이니 마음이 편했다. 다음은 모르겠고 지금을 우선 누리자는 마음. 그것이 내게 더 큰 충만감을 주었다. 그 시간들이 행복했다.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어서. 앞으로 무엇을 하든 올해 이런 경험은 두고두고 내게 영양분이 되어 줄 것이다.
내일이면 또 새로운 해가 시작된다. 2020년이라는 것을 굳이 따지지 않는다면 언제나처럼 같은 해로 떠오를 것이다.
당장 내년에는 무엇을 해야 할지 정하지 못했다. 또 시간이 흐르는 대로, 내 삶이 이끄는 대로 흘러갈 것이다. 하지만 좀 더 편안할 것이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나를 놓아준 시간 덕분일 것이다.
언제나 팽팽하게 당겨진 시위처럼 예민했고 날이 서고 뾰족했던 시간들을 하루아침에 놓아버릴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러나 하나의 출구를 지나온 나는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나에 대해, 내 주변에 대해, 그 이면에 있는 것들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나이길 희망한다. 적어도 내가 나를 보는 시간이, 나를 도울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