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탓도 아닌 내 삶

by 세번째 삶

내가 이렇게 살고 있는 건 내 탓일까? 누구의 탓일까?

그나마 이만큼 살고 있는 것이라면 내 덕일까? 누구의 덕일까?


누구의 '탓'을 하며 살아왔다. 세상에서 가장 편리한 방법이다. 내가 이렇게 된 건 부모님 때문이야. 잘못 사귄 친구 때문이야. 당신 때문이야. 너 때문이야.


나는 잘못이 하나도 없으므로 순수한 피해자다. 그렇다면 나는 왜 피해만 입고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던 걸까? 늘 누구 때문에 피해만 입었다면 왜 상황을 바꾸려 하지 않았던 걸까?


변하고 싶지만 변하기 싫다는 글을 읽었다.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았다. 나는 늘 변하고 싶었지만 변하기 싫어했다. 어렵고 귀찮으니까, 살던 대로 살았다. 가끔 그게 지겨워지면 무력감에 빠져 '나는 당신들 때문에 이렇게 무기력해졌어요'하는 신호를 온몸으로 내뿜는다. 누군가 알아주길 기대하면서. 그러다 누가 마음을 열고 다가오면 다시 나는 너 때문에 힘들어, 하고 변명을 시작한다.


영화 <내 여자 친구의 결혼식>에서 주인공 애니에게 친구 매건이 찾아와 말한다. '세상을 탓하느라 자기 삶을 외면하는 사람과는 친구 하고 싶지 않다'라고. 그때까지 매건은 애니에게는 별로 주목받지 못하던 친구다. 잘 나가는 친구들의 모습에 자신을 비교하면서 세상 탓만을 하는 애니에게 매건은 그저 배경 같은 친구였을 것이다. 그러나 애니에게 덤벼들어 매달려서는 자신을 때려눕혀 보라고, 자신이 '너를 괴롭히는 너의 삶'이라고 하는 순간 매건은 애니에게 구원 같은 친구가 되었을 것이다.






대학 시절 내게도 그런 친구가 있었다. J는 나와 고등학교 2년 간 같은 반이었고 같은 대학 같은 과에 들어간 친구다. J와 나는 생김새는 물론 성격도 완전히 반대였다. 내가 보기에 J의 집안은 언제나 웃음꽃이 피었다. 힘든 일이 있어도 늘 형제들과 즐거웠다. 반면 우리집에는 즐거움이나 웃음이 없었다. 형제끼리의 단란함 같은 것도 없었다. 각자도생 하기 바쁜 가정이었다. 같은 대학에 들어가며 J는 집에서 칭찬을 받았고 나는 집에서 핀잔을 들었다. 그렇다고 내가 J보다 우등생이었냐면 그 반대다. J는 공부도 열심히 노력해서 성취하는 편이었고 나는 어쩔 수 없어서 겨우겨우 견디며 끌려가는 편이었다.

나는 부모님의 섭섭한 소리를 매일 곱씹으며 대학교 생활을 했다. 반항하는 마음에 이방인처럼 학교에 다녔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J는 말했다. 그렇게 이 학교가 싫으면 그만두고 대입을 다시 준비하던가, 그게 아니면 전공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장학금이라도 받던가.


나는 어느 쪽도 싫었다. 내가 학교를 그만둔다고 해서 부모님이 반길리도 없었고 재수할 형편은 더더욱 아니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장학금을 탔다며 칭찬할 부모님도 아니었다. 교외 장학금이라도 타기 위해 평균 학점을 4. 0 이상으로 유지해야 했을 때도 타면 다행이었고 못 타면 온갖 무시와 험한 말을 들어야 했다.


그런 이유로 나는 모든 것을 부모님 탓으로 돌리며 억지로 학교에 다녔다. 옆에서 지켜보던 J는 그런 내 모습을 견디다 못해 나와 멀어졌고 다른 친구들과 어울렸다. 우리는 고등학교 시절 그리 친한 편은 아니었으나 같은 학교 같은 과에 진학했다는 이유로 꽤 오랜 시간 붙어 다녔다. J가 우리 관계에서 애쓴 것에 비하면 나는 모든 걸 남의 탓으로만 돌리는 나밖에 모르는 아이였다. 이제 와 보면 나를 위한 J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방황을 끝내지 못한 것조차 내 탓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각자의 길을 걷다가 문득문득 소식이 들려올 때에도 나는 생각했다. 나는 왜 이렇게 살까? 이렇게 밖에 못 살까? 그들과 나는 무엇이 달랐을까? 나는 뭐가 부족했을까? 여전히 누구의 탓을 할까 마음속으로 열심히 페이지를 넘겨 보지만 결국 되돌이표. 내가 좀 더 열심히 살았더라면 지금과 다르게 살고 있을까? 어느 쪽이든 더 열심히 했더라면?

J와 멀어진 이후에도 나의 삶을 대하는 방식은 달라지지 않았다. 무기력함 속에 방향을 잃었다. 사춘기 시절의 반항도 없던 내게 방황이 시작되었다. 갑자기 내게 맡겨진 '선택의 자유'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정신없이 흔들렸다. 내 삶이 온전히 내 것이라는 사실을 안 것은 마흔 무렵이었다. 지금의 내 모습을 앞으로 앞으로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거의 대부분 나의 선택대로 움직였다는 깨달음. 그때 그랬더라면, 그때 안 했더라면. 누구를 탓하고 싶어도 아무도 없었다. 왜 다른 삶을 선택하지 않았느냐고 물어도 결국 결정은 나의 몫이었다.


누구의 탓도 아니라는 것을 어렵게 깨달은 후 나는 다시 '나는 누구 덕에 이만큼 사는 걸까?'에 압도되었다. 그 말만큼 나를 곤두박질치게 하는 말이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한동안 그 말에 갇혀 살았다. 누군가 나를 구제해 주었다고 믿었다. 그랬을까? 나를 구한 건 그였을까? 나였을까? 두 말이 같은 말인 줄을 그때까지도 알지 못했다.




뒤늦은 방황을 하며 꽤 여러 번의 어려움을 겪는 동안 나는 조금 단단해졌다. 스스로를 끌어올리는 힘이 생겼다. 바닥으로 떨어져 나를 진흙탕에 뒹굴게 할 수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스스로를 구제할 힘이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회복 탄력성이 생겼다. 혼자 오래 침잠함으로써 다시 누구의 탓도 아닌 내 삶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나는 내가 원한대로 살고 있다. 가끔 더 잘 사는(굳이 그런 표현을 쓰자면) 사람들, 친구들을 보게 될 때면 속이 쓰린 적도 있지만 나를 이렇게 살게 한 것은 나였다. 그리고 나는 더 많이 갖지 못했어도, 내가 가진 것이 작아도, 거기서 행복을 찾을 줄 아는 사람이라고 믿는다. 누군가 정신승리 아니겠냐고 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