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작가가 되어

직업란에 없는 직업을 찾아

by 세번째 삶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알림이 왔다. 지난 8월 말부터 브런치 작가 되기를 목표로 하는 강의를 들었다. 그동안 블로그에 적은 글은 산적해 있지만 그걸로 글쓰기를 한다고 말하기는 어쭙잖아 보여서 나도 정말 브런치 작가가 될 수 있을까 싶은 마음에 수강 신청했다. 안되면 말지, 또는 안되면 다시 하면 되지, 라는 심정으로 강의를 듣기 시작했고 매주 과제로 쓰는 글이 벅차기는 해도 재미가 있었다. 난생처음 듣는 글쓰기 강의가 신선하기도 했고.

강의가 끝날 무렵 신청해야 하는 줄 알고 작가 신청을 안 하고 있었는데 강사 선생님께서 각자 서둘러 신청을 하라고 독려하셨다. 작가가 되어도 정기적으로 부지런히 글을 쓸 각오가 되자 않아 망설이던 차였다. 준비가 되면 하려고 했다는 내 말에 강사 선생님은 아무리 기다려도 준비는 안된다고 말씀하신다. 물론 그렇다. 작가 신청하려고 가입하고 작가의 서랍에 글을 넣은 지 일 년이 되어가니까. 아무리 기다려도 준비는 된 것 같지 않았다. 이전에 작가의 서랍에 넣어둔 글은 두고 이번에 브런치 강의를 들으며 썼던 글로 용기 내어 작가 신청을 했다.

겉으론 쿨한 척 안되면 말고, 했지만 살짝 마음을 졸이고 있기도 했는데 알림을 받으니 대단한 시험에라도 합격한 듯 기분이 좋았다. 당장 누구에게 알리고 자랑이라도 하고 싶은데 딱히 생각나는 사람이 있지는 않았다. 아직은 내 부끄러운 글을 누구에게 추천한다는 게 여간 낯 뜨거운 일이 아닌 것이다.

아무튼 작가의 프로필을 만들어 글을 발행하라는 공지대로 프로필을 수정하러 들어갔다. 먼저 내 관심사는 어렵지 않게 세 개 골랐다. 물론 다양한 관심사가 있지만 지금 더 관심이 가는 것들을 고르는 것이니까. 그런데 직업을 선택하는 데서 내 고민은 시작되었다. 스마트 폰 화면의 스크롤 세 번을 올릴 만큼의 직업이 나와있는데 내 직업으로 표시할 적당한 것이 없었다.

늘 그랬다. 직업란을 골라야 할 때면 망설이곤 한다. 비교적 간단하고 크게 상관없는 곳이라면 간단히 주부,라고 적었다. 직업이라 하면 뭔가 전문적으로 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 내가 지금 하는 일은 어디에 속하는가 생각할 때면 늘 모호하고 애매했다. 나는 경계가 없는 일을 하고 있는 걸까. 결혼하고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그래도 명확한 일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 그 후로 짬짬이 일을 다시 하기도 했지만 다시 시작된 경력단절 후엔 직업을 뭐라 확실하게 말할 수 없었다. 돌이켜 보면 돈 안 되는 일만 줄곧 한 것 같은데 그걸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그런 일은 직업이라고 하면 안 되나.








작가 선정 알림을 받았을 때 나는 지방의 소도시를 여행 중이었다. 잠시 지친 몸과 마음을 쉬게 하려고 혼자만의 시간을 내어 그곳의 도서관을 찾았다. 마침 여행을 함께 하던 일행의 공과 사 경계 없는 행동에 화가 나 있던 참이었다. 나는 왜 경계가 없는 것을 그렇게 못 참는 걸까, 나를 들여다보던 찰나였다. 그러다 직업란을 고르려니 내가 바로 경계 없는 직업을, 굳이 직업이랄 수도 없는 일들을 이제껏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리학에서는 내게서 참을 수 없는 것으로 남에게도 화가 난다고 했다. 늘 선명하게 정의 내리지 못하는 내 정체성이 바로 나를 화나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직도 하고 싶은 것이 뭔지, 잘하는 게 뭔지 찾고 있는 나에게 '지망생'이라는 말이 제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작가 지망생이라기엔 너무 거창하고,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학생은 어딘가 어색하고. 어느 모임에서 뭐하는 사람으로 불리고 싶으냐는 질문을 받고서 나는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당황해서 방황한다고, 그냥 뭐든 공부하는 게 좋다고 했더니 그럼 '공부하는 사람'으로 불리면 어떠냐고 했었다. 그래도 사회적 통념상 뭔가 이뤘어야만 할 나이인 내가 학생이라고 하면 누가 어디에선가 큰 소리로 웃을 것만 같았다.

내 직업은 무엇일까, 나는 지금 여행지에서 무엇 때문에 화가 나 있을까, 생각하다 창밖을 보니 가을이었다. 옷을 바꿔 입는 나무들이 보인다. 지금 가을이 짙은 여기에서, 누렇게 물들어 가는 나무를 보며 내 직업은 '생각하는 사람'이면 좋겠다 싶었다. 씻고 찾아봐도 직업란에는 없지만.



2019. 11.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