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롯한 나의 시간에 감격하며
올해 초 하던 일을 정리한 뒤 미친 듯이 강의니 모임이니 참석하고 다니느라 평일에도 늘 바빴다. 누가 뭐라는 것도 아닌데 '돈 버는 일도 아닌데 왜 이러고 다니나' 하는 마음의 짐 같은 것도 함께 짊어지고 다녔다. 나 스스로 경제적 능력 없음을 나에게 죄인양 덮어 씌웠다. 직업란을 적어야 할 때면 일을 하고 있을 때조차 '주부'라고 적던 내가 나의 주부 노동에는 전혀 가치를 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집에 있는 것을 불편해한 것일까. 뭐라도 나가서 해야만 할 것 같았다. 이제껏 살면서 해보지 못한 것들, 내가 써보지 못한 내 능력들을 써보겠다는 핑계로 이것저것 배우기도 하고 모임에도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평화롭다. 얼마 만에 맛보는 고요인지. 오늘은 집에서 혼자 조용한 시간을 만끽하고 있다. 요 몇 주 연말 행사 준비로 더욱 바쁘게 매일 나다니다 보니 어깨의 통증이 심해졌다. 두세 달 전부터 은근히 아프긴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혹은 우스갯소리로 오십이 다 되어가니 오십견이 먼저 왔다고 했다. 며칠 전부터 팔 힘이 스르르 빠지기도 하고 무거운 것을 들 때도 떨어뜨릴까 봐 겁이 날 정도로 통증이 왔다. 결국 미루고 미루던 병원 진료를 받았고 늘 그렇듯이 물리치료와 약 처방. 별게 뭐 있겠어하면서 별 기대 없이 약을 받아왔지만 이번에는 좀 더 잘 챙겨 먹고 나아봐야지, 마음을 다졌다. 그래서 이번 주는 모든 외출 활동 금지. 내가 스스로에게 내린 처방이다. 그럼에도 아침이면 챙겨서 나가야 하나 망설이느라 한 시간에도 몇 번씩 생각을 고쳐먹지만 '오늘은 쉬자'라고 마음먹고 나면 한결 편안해진다. 오늘 외출도 할까 말까 백번 망설이다 나를 위해 쉬기로 결정. 팔이 아프니 그동안 미뤄 둔 집안일을 사부작사부작하고 나서 겨우 앉아 커피 한 잔을 앞에 놓았다. 따뜻한 날씨 덕에 공기까지 제대로 환기하고 나니 이렇게 개운하다. 그리고 고요. 이런 맛이다. 내가 좋아하는 기분. 혼자 조용히 앉아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시간. 새벽까지 작업하느라 잠을 몇 시간 못 잔 내가, 예전 같으면 다시 누워 잠을 청하고 있을 내가, 한낮의 고요를 맛본다. 오랜만이라 반갑고 꿀같이 달콤하다.
스스로도 놀랄 만큼 바쁘게 살았다. 사십 년 넘게 살면서 만들어진 나의 생활방식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행보였다. 왜 그렇게 바쁘게 살았니? 묻는다면 뭐라고 해야 할까. 눈에 보이는 경제 활동을 하지 못하는 나에 대해 내 가치를 내가 인정하지 못해서, 누군가에게라도 인정받고 싶어서 동동거린 것은 아니었을까? 올해 초 여기저기 공언하고 다녔었다.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고. 그런데 반대로 이전보다 너무 많은 것들을 했다. 그야말로 미친 듯이 돌아다녔다고나 할까. 이제 그 말을 지키기에 올해는 늦었다. 벌려놓은 일은 마무리해야 하니까. 그래도 그런 시간들 덕분에 이 잠깐의 여유가 더욱 소중하다.
내년은 그 유명한 '아직은 마흔아홉'이다. 후년에는 만으로 아직은 마흔아홉이라고 말할 것 같지만. 내년에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겠다 욕심부리지 말고 한 가지에 미쳐보고 싶다. 올해는 더 늦기 전에 해 본다고 욕심껏 다녔는데, 내년에는 선택과 집중을 해보고 싶다. 열정이 쉽게 식는 나에게 한 가지에 몰입하는 즐거움을 선사하고 싶다. 그러면 내년 말쯤엔 한 가지는 잘하는 내가 되지 않을까. 이제부터 무엇을 선택할지 고민을 해 봐야겠다.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오롯한 고요함에 감격하여 나에게 해보는 인터뷰. 나를 돌아보고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 즐거웠다. 이것도 나에겐 소중한 하나의 도전일 것이다. 종종 이런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