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좋아하시나 봐요?"
"아뇨, 안 좋아해요."
"아닌데, 좋아하는데."
평소에 이런 말을 들었다면 나는 화가 났을 것이다. '지가 뭔데 나에 대해 아는 척이야, 언제 봤다고.' 하는 마음이 대뜸 들었을 터다. 이번에는 달랐다. 정말 내가 글쓰기를 좋아하나? 칭찬은 아닌데도 칭찬처럼 들려서 기분이 좋은 걸 보니 나는 글쓰기를 '좋아하고 싶었'나보다.
글을 잘 쓰고 싶은 심정은 알겠다. 그런데 잘 쓴다는 칭찬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 같다는 말에도 이렇게 기분이 좋아지다니. 내가 정말 글쓰기를 좋아할까? 어릴 적 너무나 싫어했던 글쓰기를 이제는 좋아만 한대도 설레는 기분이라니.
아빠는 신문기자였다. 아빠의 기사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아빠처럼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은 늘 품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학교에서 글짓기 숙제가 있으면 언제나 아빠에게 원고지를 검사받았다. 아빠는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는데 그 때문에 숙제를 검사했던 것인지 아니면 내가 이만큼 썼다고 자랑하고 싶어서 아빠에게 자진해서 검사를 부탁했던 것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한 번도 칭찬받지 못했다는 서운함과 늘 지적당하고 고쳐야 했던 기억만이 남아있다. 그렇게 애쓰던 어느 날 나는 아무리 해도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된 걸까. 나는 글을 못 쓴다고 생각했고 아예 글쓰기를 싫어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방학 숙제인 그림일기나 일기 쓰기는 개학 전날 아무렇게나 날씨와 장 수를 채워서 내기 바빴다. 사춘기 때 잠깐 썼던 일기는 자물쇠까지 잠가 두었지만 나이차 많은 동생이 열어서 보고는 엄마에게 일러바치곤 해서 그것조차 쓰는 것을 포기했더랬다. 그리고 학생 때 다니던 교회에서 매년 내는 문집에 글을 써서 냈던 생각도 어렴풋이 난다. 중학생 때였나 내가 쓴 글이 실린 문집을 고등학생 때 보고서 어찌나 부끄럽던지. 다시는 그런 곳에 글을 쓰지 않겠다고 맘먹고 글쓰기와 등지고 산지 이십여 년 만에 글쓰기를 다시 시작했다.
글을 쓰려고 쓴 것은 아니었고 블로그를 하려다 보니 어떤 글이라도 써야만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짧은 글조차 쓰기 어려워하던 사람들에 비하면 나는 조금은 수월하게 글을 쓰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것이 나에게 이만큼의 용기가 되어 지금은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다. 아직도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글을 쓰다가도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일쑤인 초보인 데다, 써 놓은 글을 다시 읽어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지만 그래도, 글쓰기를 싫어한다고 생각하던 내게 언감생심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도 듣고 싶었던 아빠의 칭찬을 받지 못한 채 글쓰기를 싫어한다고 믿고 살았는데 누군가의 글쓰기 좋아하는 것 같다는 말만으로도 이렇게나 기분이 좋다니, 그동안 그런 목마름조차 잊고 살았던가 보다. 아니면 글쓰기를 좋아하는 것은 옳고 싫어하는 것은 그르다는 내 안의 기준 같은 것들이 있었을까. 뭔가 인정받은 것 같은 기분 좋음이 마음속에 피어올랐다.
작년에 새로 시작한 여러 가지 시도 중에 인문학 강의를 듣고 에세이를 쓰기 시작한 일이 있다. 처음엔 숙제니까 어쩔 수 없이,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듯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 쓰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으니까 쓴 것이라는 말이, 전혀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것을 강의가 끝날 무렵에야 깨닫게 되었다. 내 안에 쓰고 싶다는, 잘 쓰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지만 나와 글쓰기를 격리시켜 모른 척하다 보니 좋아한다는 사실도 잊고 살았던 것이다. 내가 먼저 인정하지 않았지만 내 속에 좋아하는 마음을 일깨워 주신 분께 다시 한번 감사하다. 아직 잘 쓰지는 못하지만 좋아하는 걸 알게 되었다고, 내 마음속에 있던 것을 꺼내어 줘서 고맙다고.
나는 누군가 내게 칭찬의 말을 하는 것을 못 견뎌한다. 하지만 요즘은 누가 내게 글 잘 쓴다고 하면 내심 기분이 좋아진다. 내가 보기엔 아직 걸음마하는 정도라고 생각하면서도 누가 그렇게 말해주면 벌써 뭐가 된 것처럼 기쁜 것이다. 아직 멀었다고 나를 다그치고 이게 뭐냐고 나무라면서도 그래도 쓰는 게 좋다는 걸, 부정하려 해도 매일 쓰는 나를 발견하면 그게 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고 믿게 해 주는 것 같아서, 고맙고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