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고민에 빠진다. 내가 꼭 참석해야 할, 내게 중요한 모임이 아닌 곳에 초대받을 때마다 나는 고민하게 된다. 이번 주에만 연말 모임이 세 번째. 가야 할까, 말아야 할까. 꼭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닌 것 같아 불편하다면 안 가는 것이 맞는데 또 초대를 거절하기 어려워 억지로 가기도 한다. 그런 마음으로 다녀와서 좋을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때가 더 많다. 누구의 문제일까, 아니 무엇의 문제일까. 이렇게 적고 보니 답은 정해져 있다. 그런데도 나는 오늘의 모임에 나가기 위해 주섬주섬 채비를 한다.
작년 이맘때였다. 처음엔 오후 강연만 참석할 생각이었다. 지인이 전화를 걸어와오전에 자신의 공연도 보라고 했다.특별히 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남의 부탁에 거절 못하는 나는 고민하다가 가기로 마음먹었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라도 있는 양초대를 받으면 그냥 빈손으로 가기 뭐해서 강박처럼 뭐라도 사들고 간다. 아침 시간에 늦을까 봐 꽃까지 전날 사다 놓았다. 예정된 시간이 지나도 시작하지 않았고그들만의 세상에 이방인인 나는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했다.오라고 해서 내키지는 않지만의리를 지킨답시고 왔는데 입구부터 방명록에 전화번호를 쓰란다. 그런 쪽으로 예민한 나는 그런 것들을 내켜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적고 자리를 잡았는데잠시 후 또 다른 곳에 적으라는 종이가 왔다.아까 적었다고 하니 그거와는 다른 거라는 퉁명스러운 답이 돌아왔다. 내가 왜 여기 와서 적고 싶지 않은 내 이름과 전번을 적어야 하나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밥 얻어먹으러 온 것도 아닌데 사진 찍혀도 잔말 마라는 곳에 사인을 해야 하다니 참을 수가 없다.
아침에 아이에게, 어젯밤 잠을 설쳐서 모임에 가고 싶지 않다고 했더니"그럼 가지 마세요!" 한다. '약속했는데 어떻게 그래?'라고 생각했지만지금 이 순간 나는아이의 말이 옳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만의 잔치에 나를 왜 불렀을까. 슬슬 짜증이 나려는데 나를 본 지인은 자기 공연 영상을 찍어달란다.아, 그게 목적이었구나, 나를 부른 것은.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로 안다고,내가 사진을 잘 찍는다면서당연하다는 듯 부탁하는 말에 화가 났다. 아침 일찍 오라기에 순서가 이른 줄 알고 설거지도 못하고 달려왔는데 순서는 마지막.무슨 정성으로 꽃까지 사들고 달려온 나에게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 설거지나 하고 올걸, 아니 그냥 아프다고 오지 말걸. 꾹 참고 앉아있다가 나는 결국 자리를 떴다. 그러나 바로 집으로 돌아가지도 못했다. 싫으면서도 매몰차게 거절하지 못한 내게 화가 났고 남의 부탁에 휘둘리는 내게 진절머리가 났다.
더욱 화가 난 것은 자신의 필요에 의해 나를 불렀는데 내 딴에는 의리를 지킨답시고 만사 제치고 달려왔다는 것이다. 그에게 내 존재 가치를 무시 당한 기분이었다.
늘 이게 아닌데 망설이면서도 부탁을 들어주는 건 그 사람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해서 일까, 그 사람을 맘 속 깊이 동정하고 있어서 일까, 행여 그 사람을 잃을까 두려워서 일까.
언제까지 다른 사람들 걱정에 내 삶을 낭비할 것인가. 누구보다 이기적으로, 그들의 이방인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이제 와서 찬찬히 들여다보니나의 욕망 같은 건 애초에 없었다. 남들 기준에 좋다는 걸 따라 수도 없이 변화하며 끌려다녔다. 남들의 시선에 속으로는 애면글면 하면서도 겉으로만 쿨한 척 관심 없는 척 살아왔다.
일 년의 시간이 지나고 나는 또 비슷한 기로에 있다. 내가 속한 모임의 단체 연말 행사. 그들은 같이 가자고 하지만 딱히 내가 있어야만 하는 자리는 아니다. 나는 이번에도 사람들의 섬 속에서 홀로 떠 있는 노 잃은 배처럼 이리저리 휩쓸리며 둥둥 떠다닐 것이다. 가야 할까, 말아야 할까. 누구를 위해 가는 것은 아니라고 애써 나를 속여 보지만 내가 좋아서 가는 것이라 단호하게 말하지도 못한다. 다시 외출할 가방을 챙기며 나에게 묻는다.
언제까지 바보 같은 나에게 화만 내고 살 것인가?
거절하는 방법을 배울 수는 있을 것인가?
매년 말이면 사람들에 지쳐 내년엔 아는 사람들로부터 도망치리라 마음먹곤 한다. 내년에는 그 결심을 실행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