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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번째 삶 Sep 14. 2021

시간은 그만 놓아주라는데

2년 만인가. 모처럼 남편과 휴일이 맞아 갑작스레 엄마 아빠의 산소를 찾았다. 예전에는 산소라고 불렀는데 가족 납골묘로 바뀐 뒤로 나는 매번 망설인다. 납골당? 가족공원? 추모공원? 어떤 이름도 적당해 보이지 않는다. 아니 맘에 들지 않는다. 돌아가신 분들을 모신 곳그리움을 갖고 찾아간다는 의미로는 '산소에 간다' 또는 '성묘를 간다'라고 해야 어울리고 그 표현이 아니면 그 뜻을 온전히 전달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보다 적당한 말은 모르겠다. 어려서부터 들어와서 익숙해진 탓일까. 이제는 '산소'라고 불릴 실체가 없어졌으니 뭐라고 해야 할지 당황스럽기만 하다. 아무튼 전날 밤 급하게 가기로 결정하고 집 앞 슈퍼에 가서 간단히 술과 포를 사 가지고 왔다. 남편은 커피와 파인애플도 사야 한다고 했다. 엄마 아빠가 좋아하던 믹스 커피와 가장 비슷한 라테 두 병을 사고  파인애플은 사지 않았다. 이제 엄마도 파인애플 말고 다른 맛있는 걸 먹을 수 있게 되지 않았을까. 고작 파인애플을 엄마에게 가져가 마음의 짐을 덜어보려는 내 마음을 그만 지우고 싶었다.


작년 초 코로나로 외출을 자제하라고 하기 전, 그러니까 재작년 봄쯤 다녀왔을 것이다. 그럼 2년이 넘은 건가. 그 뒤 한 번도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거기뿐 아니라 일을 제외하곤 어디도 외출을 할 엄두도 내지 않았으니까. 가족 납골묘의 관리는 오빠와 사촌 오빠가 맡은 일이라 통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았고 명절이라고 따로 챙기지도 않는다. 가끔 생각이 날 때, 봄쯤 엄마의 생신 무렵에 시간이 맞으면 한 번 찾을까.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에서 주인공 혜진은 돌아가신 엄마의 생일날 함께 여행했던 곳을 찾은 사정을 홍반장에게 얘기하며 사람이 죽고 나면 태어난 날은 잊히고 기일만 남겨지는 게 슬프다고 했다. 따로 제사나 추도식을 하지 않는 우리는 엄마의 생일 무렵인 사월 초파일쯤에 엄마가 계신 곳을 찾곤 했었고 올해로 찾지 못한 봄을 두 번 지나 추석을 앞두고서야 가게 되었다.





술잔에 술을 따라 커피와 함께 올려놓고 죽은 다음엔 소용없어 있을 때 잘해야지, 나에게 하는 말을 중얼거리면서 엄마의 이름이 적힌 곳으로 갔다. 졸, 이라고 쓰인 곳에는 벌써 8년이나 지난 날짜가 새겨져 있다.  나는 곧 납골묘 한쪽 끝에 자리한 어느 망자를 떠올렸다. 엄마에게 갔던 어느 해에 새로 새겨진 이름과 그 옆에 꽂혀 있던 사진을 본 생각이 나서였다. 사진 속의 아이는 아직 초등학생 같아 보였다. 아마도 이 아이의 아빠였을 망자는 나와 같은 나이였다. 나와는 일면식도 없는, 촌수도 알 수 없는 먼 친척일 그는 어떤 마음으로 떠났을까, 생각했던 기억이 났다. 그가 세상을 졸업한지는 벌써 6년이나 지나 있었다. 그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의 가족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과는 아주 다른 삶을 살고 있겠지. 좋은 쪽으로든 안 좋은 쪽으로든. 좋다거나 안 좋다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고 삶의 폭풍 속에 있는 동안은 그것이 어느 쪽인지 알기도 어려울 것이다. 부디 평안하기를, 어쩌면 갓 사회인이 되었을지 모르는, 아직 고등학생일지도 모르는 그 아이의 안녕을 마음속으로 빌어본다.




돌아오는 차 안. 남편이 갓 제대했다는 어느 젊은이의 얘기를 했다. 군에 있을 때 받은 월급을 모아 부은 적금을 군대 선후임에게 빌려줬다가 받지 못했고, 그로 인해 생때같은 이의 죽음이 둘이나 생겼다는. 세상은 넓고 나쁜 놈들은 많고, 생을 견뎌야 하는 사람들은 그에 비례하게 독해져야만 한다는 게 서글펐다.

삶의 작은 문턱조차 쉽사리 넘지 못했던 너에게 나는 무슨 말을 하고파서 였을까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흘러나오던 노래는 누구에게 위로를 줄 수 있을까. '먼산 언저리마다 너를 남기고 돌아서는 내게 시간은 그만 놓아주라는데...' 한동안 엄마에게 왔다 갈 때면 떠오르던 노래가 아주 오랜만에 길게 도돌이표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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