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이유
흡수하듯 읽기에서 거부하며 읽기로
내가 책을 읽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몇 개월간 꾸준히 벼리던 책 읽는 습관은 한순간 무뎌졌습니다. 하던 대로 꾸역꾸역 읽어봐도 더 이상 소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책 읽기에도 일정의 소화량이 있는 것일까요. 일 년 중에 두 번, 늦여름 그리고 겨울이 한참인 시절에 그랬습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겨울 시즌에 찾아온 책 읽으며 멍 때리기. 단지 눈으로 글자를 훑고 있는 나를 발견했습니다. 책을 읽을 때 나는 읽어 들인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가 하면 읽은 내용에 대해 왜 그런지 궁금증을 품으며 읽어나가기도 합니다. 그것이 꼭 올바른 독서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글자 그대로를 벗어나 행간을 읽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 뿌듯함마저 인다는 것은 그쪽이 조금은 상위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던 날카로운 시선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렸습니다. 분량의 책을 읽는데 급급하여 지금 내가 읽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기는커녕 스크린처럼 각막 위를 흘러가는 문자만 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읽는 대로 흡수하듯 받아들이는 것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로 지나치는 것. 전처럼 그냥 받아들이면 훨씬 쉬울 텐데. 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것일까요. 나와는 상관없는 정보라고 판단한 것일 수도 있고 지나치게 방대한 정보라는 생각에 처음부터 거부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요.
얕게라도 기억해 둔다면 정보로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모른다는 아쉬움이 마음 한쪽에 피어납니다. 이것이 내가 책을 읽는 이유일 수도 있겠다는 데 생각이 미쳤습니다. 그동안 내용을 소화시키고 곰 삭일 시간이 부족하다는 판단으로 지레 흘려버렸던 것은 없었는지 되돌아봅니다.
특별히 소화가 되지 않는 책. 정보로서 저장하길 거부하는 책. 그것이 쓰레기 책이라서가 아니고 꼭 읽어야 하는 책이라면? 거기서 나는 또 그럼에도 왜 단 한 장도 이해할 수 없나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왜 나는 거부하고 있는지. 이 책의 텍스트들을, 글이 담고 있는 것을. 어떤 특별한 형식의 책을 내가 싫어하는 것인지도 고민해 봅니다. 어려운 책이라면 원문보다 해설 책이 쉬울 것이란 생각에 늘 먼저 해설 책을 읽어보곤 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설 책이 다 쉽지는 않았지요. 이 책은 말하자면 해설 책처럼 원문을 보기 쉽게 풀어 인용과 설명으로 채웠는데, 나는 그게 맘에 들지 않았나 봅니다. 저자는 어쩌면 길고 어려운 원문을 사람들이 쉽게 다가가도록 하고 싶었던 것인지 모르는데 말이죠. 그렇다고 읽은 내용까지 거부할 필요는 없는데. 길고 방대한 원문을 읽어볼 생각은 없으니 더더욱 그렇지요. 읽긴 읽었으되 무엇을 읽었는지 모르겠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이전처럼 그냥 그렇게 넘어갈 수도 있는데 왜 나는 이 책을 거부하는가에 멈춘 생각이 더 이상 책을 넘길 수 없게 만듭니다. 흡수하듯 읽기에서 거부하며 읽기로. 그것이 이 책을 읽는 이유인 것만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