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염’이라고 씌어 있었다.
과자 한 봉지 가져오라는 숙제
엄마가 찾아내어 뻥튀기 담아준 봉지
과자 한 봉지 살 돈 없는 시절
‘식탁염이 뭐지?’
선생님 질문에 식은땀이 솟는다.
가난이 뭔지 몰라도 부끄러움은 알았다.
부모님 가게에선 쌀과 연탄을 팔았다.
연탄 배달 도우라는 말에
형은 도망가 버리고
아버지와 둘이 연탄 배달을 했다.
양 손에 집게를 들고
한 번에 네 장씩, 몇 백번 계단을 오르내렸다.
아직도 동네에선 오성상회 둘째 아들이라 불린다.
밖에서 놀다 친구들을 몰고 온 형이
라면을 끓여오라고 때리면
부엌에서 라면을 주먹으로 내리쳐
가루를 만들어 끓였다.
형은 숟가락 가져오라 소리쳤다.
이십 대에 흰 머리 나고
백발의 부모님 아래
어찌 보면 내력 같지만
형의 새까만 머리카락 볼 때면 억울한 마음이 든다.
부러 그런 게 아닌 줄 알지만
왜 안 좋은 건 나만 물려줬느냐며 아직도 서운하다.
아버지는
약속시간 한 시간 전에 도착해야 하는 성미였고
무슨 일이든 바로 해치워야 했고
가족을 위해 어떤 일이든 도맡아 했고
일하지 않는 것을 못 견뎠다.
그런 아버지가 자랑스러웠다.
그러나
형이 밖에서 싸움하고 말썽부려도
큰 소리 한번 내지 않는 아버지를
때려서라도 가르치지 않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들에게 표현할 줄 몰라
아는 체도 안하고
살갑게 대하지도 못했노라고
손주만 예뻐하는 당신 모습
미안하다고
고백하는 아버지를
이제는 이해하려고 한다.
아버지를 닮고 싶기도 하고
닮고 싶지 않기도 했던
오성상회 둘째 아들은
이제 두 아들의 아버지가 되었다.
등굣길 서두르지 않는다고
아이들을 다그치다가도
건강만 하면 된다고, 자신을 타이른다.
아버지처럼 후회하지 않으려고,
자신과 꼭 닮은 두 아이에게
미안함을 남기지 않으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