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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번째 삶 Nov 30. 2019

삶은 어디에나 있다

골목을 걷다가


    벽화가 그려진 마을을 둘러보았다. 예전 부산 감천마을에 들렀을 때가 떠올랐다. 그곳에 사는 분들의 소음에 대한 고충에 공감했다. 잠시 지나가는 나도 이렇게 어수선한데 그곳에 사는 분들은 어떠랴. 그때의 기억으로 마을 분들의 일상에 혹시나 방해가 될까 봐 조용히 마을을 걸었다. 워낙 조용한 동네였고 가을 스산한 바람이 불 때라서인지 인적은 드물었다. 골목 안에서 빗자루질하시던 아주머니의 인사.
- 안녕하세요
- 안녕하세요


    집 앞 작은 공간에 몇 포기의 배추가 있었다. 아직 김장 전인지 수확하지 않고 예쁘게 묶어 놓았다.

    "예쁘게도 묶었네."
    카메라를 들이대며 중얼거렸다. 혼잣말을 들으셨을까. 웃으면서 반갑게 인사해 주시는데 마음까지 환해졌다. 내가 내는 소리에 일상이 방해될까 봐 발걸음도 조심스럽던 나는 짐이 한결 가벼워진 기분이었다.

    동네 어귀에 줄이 묶인 개는 배가 고팠는지 먹이가 들어 있는 솥단지에 머리를 파묻고 있었다. 길가에 지나가는 객을 짖지도 않고 한가로이 바라보는 개도 있다. 몸집에 비해 너무 짧은 목줄이었다. 어느 골목에는 묶인 줄이 한없이 긴 개도 있었다. 그 길고 좁다란 골목은  그 개의 '구역'인 모양이다. 하나같이 줄에 묶여 있는 녀석들을 바라보며 삶은 어디에나 있다는 걸 깨닫는다. 줄에 묶인 너희들에게도 삶은 있다. 그 안에서 만족하든 못하든. 누가 돌아볼 때만 움직이는 인형이 아니다. 이 당연한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살아 있는 것들을 무서워하던 내가 고양이를 키우면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조금 덜 무서워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전혀 안무서운 것은 아니지만 다가오는 녀석의 선량한 눈빛을 확인하면 조금 안심이 되었다.


    나는 그냥 나무에 가려던 것이었다. 나무에 무언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어 그게 뭔지 궁금해서였다. 강아지는 넓은 운동장 같은 공터에 누워 온 몸으로 일광욕 중이었다. 그러다 내가 자기 방향, 아니 정확히는 녀석의 근처 나무 방향으로 걸어가자 일어나 내 곁으로 어슬렁어슬렁 다가왔다. 살짝 무서워져서 녀석의 눈을 피하며
    "오지 마~ 나 너 무서워~"
    하고 말해보지만 녀석은 벌써 내 발치다. 내 발밑을 킁킁 대며 꼬리를 살랑거린다. 예전의 나라면 질색하며 쌩하고 도망갔을 테지만 조용히 부드럽게 녀석을 타이르면서도 도망은 가지 않았다. 그래도 내가 자기에게 눈길을 주지 않자
다시 제 자리에 누워서 햇살을 받는다.

    감을 깎아 주렁주렁 매달아 놓은 것이 보여 그쪽으로 걸어갔다. 처음 보는 풍경이라 신기해하며 이리 보고 저리 보고. 사진 몇 장을 찍고 보니 어느새 녀석이 발 옆에 와 알짱거린다.
    "너 언제 왔어?"
    하고 내가 받아주는 것 같자 다른 녀석 한 마리도 가까이 온다. 그러더니 두 녀석이 동시에 내 다리에 앞발을 올리며 놀아달란다. 허..... 난 아직 너희들이 무섭단 말이다;;

내 난감한 마음을 알까 싶어 주춤주춤 뒷걸음으로 자리를 떴다. 어느 정도 거리를 확보하고 나서 바지를 확인했다. 양쪽에 녀석들의 선명한 발바닥 자국. 처음 고양이가 우리 집에 왔을 때 너무 부드러워서 꽉 쥐면 안 될 것 같던
아기 고양이의 발바닥처럼, 차마 놀아주지 못한 녀석의 발바닥이 내 가슴속으로 들어왔다. 

    오늘 처음 본 사람인데 이렇게 놀자고 반가워해주니 참 고맙다. 그 환대를 살갑게 받아주지 못해서 미안했다. 여행길에 잠시 만났던, 그곳의 강아지들에게도 이런 말랑말랑한 기분이 들다니. 그들의 삶은 거기에 있었다. 스쳐 지나가는 인연에게도 반갑게 인사 건네는 삶. 이제는 어른 개가 되었을  녀석들은 거기서 잘 살고 있겠지. 무작정 그들을 무서워하던 내가 한 예민한 고양이의 집사가 되어 물고 빨고 한다는 것을 알까. 그들 덕분에 다른 삶을 생각한다는 걸. 그래도 아직은 다른 동물들이 무섭다.



우리집 냥이 새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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