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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번째 삶 Dec 18. 2019

청국장 한 스푼 된장찌개

밥집 이야기

맘에 드는 밥집을 발견했다. 한끼 오천원, 매일 다른 메뉴 한 가지만 한다. 시장 뒷길에 있는데 걸어서 시장에 갈 때면 우리 집 방향과 반대라서 일부러 거기까지 가지 않아 몰랐고 남편과 차를 타고 시장에 갈 때는 지나가긴 하지만 차를 타고 빠른 속도로 지나쳐 못 봤다. 그 날은 남편과 저녁 산책을 나간 날이었다. 글쓰기 강좌에서 만난 선생님의 저녁마다 남편과 산책하니 좋더라는 글을 읽고 난 후였다. 우리도 반주 아닌 반주가 있는 술상 저녁 대신 밥 먹고 산책을 해 보자며 나섰다. 선생님의 말씀대로 어둑해진 저녁의 산책은 낮에 하는 것과는 전혀 달랐고 몰랐던 가게들에 눈이 휘둥그레져서 걷고 있었다. 시장을 지나 뒷길까지 갔는데 작은 밥집이 보였다. "메뉴는 한 가지, 고민할 필요 없어요!" 얼마나 반갑던지. 뭘 먹을까 고민에 지친 사람들을 위한 밥집이었다. 2인용 테이블이 열 개쯤 될까. 가게는 꽤 작아서 자세히 보지 않고 지나치면 모를 법했다. 이미 불은 꺼져 있었지만 밝은 날에 한 번 와 보자며 산책을 계속했다.




남편이 쉬는 날 점심은 남편과 둘이 가까운 곳에 가서 먹는다. 거의 먹던 곳에서 던 걸 먹기에 몇 종류 안 되는 단골 음식에 슬슬 질려가던 터다. 새로운 곳이 필요했다. 며칠 전 보았던 밥집 생각이 났다. 거기서 먹자고 했더니 남편이 메뉴를 보고 결정하잔다. 오늘 점심은 청국장 한 스푼 된장찌개. 메뉴가 괜찮다며 들어갔다. 메뉴가 한 가지니까 주문을 받을 필요도 없다. 두 사람이요, 하고 홀에 있는 아주머니가 자리에 앉는 우리를 보고 주방에 있는 아주머니에게 말한다. 내가 "깔끔하고 괜찮지?" 물었더니 남편은 아직도 "한번 먹어보고"라며 의심을 거두지 않는다.


작고 예쁜 사각 접시에 반찬 다섯 개를 쪼르륵 내려놓는다. 백반에 빠질 수 없는 배추김치, 빨갛게 무친 콩나물, 고춧가루 넣고 무친 매콤달콤 단무지, 들깻가루로 무친 말린 고사리 나물과 꽈리고추 간장조림. 집에서 반찬을 잘해 먹지 않아서 나는 반찬 많이 주는 밥집을 좋아한다. 이 다섯 가지 반찬 중에 콩나물 무침이나 단무지 무침 정도는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말 하기엔 내 솜씨나 바지런함이 턱없이 모자란다. 그래서 모든 반찬이, 내게는 맛있다. 내가 차린 것이 아니라 누가 차려주는 밥상이니 특히 더 그럴 것이다. 그중에 내 손이 가장 많이 간 것은 고사리 나물. 제삿상에 올리려고 무친 고사리 나물이 아니라 말린 고사리를 다시 물에 불려 들깻가루와 들기름으로 볶아 낸 나물은 엄마가 해주실 때 이후로 별로 먹어 본 기억이 없는 것 같다. 맛있고 정성스런 음식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젓가락이 접시들 위로 바삐 움직였다.


청국장 한 스푼 된장찌개 밥집



곧이어 청국장 냄새가 구수한 된장찌개가 나왔다. 청국장만 끓이면 향과 맛이 진해 사람들에게 호불호가 강하다. 아이들도 진한 청국장의 향을 별로 안 좋아한다. 어느 날 아이가 청국장을 끓여 달라고 했다. 어디서 듣고 왔는지 갑자기 먹고 싶다면서. 나는 왠지 미심쩍었지만 다음 날 아침 청국장을 끓여 주었다. 아이는 예상대로 냄새가 너무 심하다고 두 번은 안 먹겠다고 했다. 청국장을 한 스푼 넣어(진짜로 한 스푼 넣었을까 물어볼 수는 없었지만) 된장찌개와 함께 끓여 내니 적당히 구수한 맛이다. 된장찌개처럼 깍둑 썰은 두부와 호박에 청국장 콩이 그대로 들어 있는 된장찌개이면서도 청국장인 것이다. 청국장의 강한 냄새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좋아할 것 같다. 맛있다 소리를 연신 해대며 밥 한 공기를 깨끗하게 비워냈다. 남편은 공깃밥 하나를 더 할까 말까 한다. 묻지 않아도 처음의 의심은 사라진 듯했다. 부른 배를 쓰다듬으며 따뜻한 둥굴레차 한 잔으로 마무리하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오늘 맛 본 밥집의 힘으로 이제 집에서 아이들에게 청국장 한 스푼 넣은 된장찌개를 끓여 줘도 좋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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