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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번째 삶 Dec 21. 2019

생 홍두깨 쌀국수

밥집 이야기

쌀국수의 고수 냄새를 싫어한다. 조금만 진해도 눈살 찌푸려지면서 이 한 그릇을 어떻게 다 먹을지 걱정이 앞선다.


오늘도 내 밥친구는 남편이다. 오늘은 또 뭘 먹을까 둘러보는데 작은 쌀 국숫집이 보인다. 자주 지나다니는 작은 도서관 바로 밑에 있고 맛이 꽤 괜찮다는 얘기도 벌써 몇 년 전에 들었다. 그런데 선뜻 발을 들여놓기 어려운 건 바로 고수 냄새 때문이다.


아이들과 자주 가는 쌀 국숫집이 있다. 그곳은 쌀국수를 먹기 위해서라기보단 아이들이 좋아하는 볶음밥을 먹기 위해 자주 들른다. 거기다 크림 새우 샐러드. 쌀 국숫집이긴 하지만 퓨전이 가미되어선지 고수 냄새도 거의 안 난다. 그 집 쌀국수에 익숙해진 우리 입맛은 쌀국수에서 나는 고수 냄새를 크게 걱정하지 않게 되었다.


작은 쌀 국숫집은 오늘이 처음이다. 입구에 들어서자 오른쪽에 가게를 거의 꽉 채운 2인용 테이블 다섯 개. 거기에 왼쪽 벽을 향하는 바 테이블에 다섯 개의 자리가 있다. 우리가 들어갔을 땐 한가운데 테이블에 세 명의 손님이 월남쌈을 테이블 가득 펼쳐 놓고 먹고 있었고 바 테이블에는 혼자 온 손님이 식사 중이었다. 남편과 내가 제일 끝 테이블에 앉았다. 따뜻한 재스민 차를 내준다.


뭘 먹을까 메뉴판을 보는데 다섯 명의 손님이 들어오고, 연이어 또 다른 손님 세 명이 들어왔다. 나는 들어가며 작은데 꽤 한적하네, 생각했는데 우리가 굿 타이밍에 들어간 것이었다. 조금만 늦었으면 자리가 없어 그냥 나갈 뻔했다.


메뉴판에는 제일 먼저 쌀국수 종류가 있었고 그다음은 팟타이, 그리고 볶음밥이 있었다. 남편은 어느 집이든 가장 먼저 쓰여 있는 메뉴가 그 집의 대표 메뉴라면서 주로 그걸로 선택한다. 이 집의 가장 첫 번째 메뉴는 '생 홍두깨 쌀국수'. 아래 작은 글씨로 설명이 쓰여 있지만 뭐라고 쓰여있는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그걸로 골랐다. 나는 일찍 집에서 나가느라 아침도 제대로 못 먹어서 밥을 먹어야겠다며 파인애플 새우 볶음밥을 골랐다.




주문을 받은 주방에서는 남자 주방장이 요리를 시작했다. 작은 식당에 작은 주방.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주방은 얼핏 봐도 주방장 혼자 운신할 만큼의 크기였다. 혼자서 바삐 끓이고 볶고 하여 음식이 나왔다.


생 홍두깨 쌀국수



테이블에 내려놓은 접시를 보며  테이블에 들릴세라 남편이 소곤댔다.

"생고기가 올려져 있어! 고기가 날 거야!"

나도 적잖이 당황했지만 얼른 눈으로 메뉴판을 훑었다. 그 아래 설명이 보였다.

생고기가 올라가며 샤부샤부식으로 즐길 수 있는 쌀국수

나도 덩달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생고기를 샤부샤부로 먹으래!"


남편이 국수 위에 올려진 생고기(메뉴 이름에 의하면 홍두깨살)를 열심히 국물에 담근다. 빨리 넣어야 익는다고, 이렇게 해서 언제 익느냐고. 평소에 소고기는 덜 익혀야 부드럽다고 대충 익혀 먹는 사람이, 날고기인 육회도 잘 먹는 사람이 고기를 익혀야 한다며 열심히 국물에 고기를 담그는 모습이 어찌나 우습던지.


그렇게 담가 놓은 고기의 색이 변하자 남편이 국물을 한 숟갈 떠먹었다.

'앗! 이게 무슨 냄새야?'

이번엔 남편이 소리 없이 눈으로 나에게 물었다.

나도 한 숟갈 국물을 떠먹어보았다.

"고수 냄샌가 본데?"

진짜 쌀국수를 먹어 본 지 너무 오래되었나. 잊고 있었다. 우리가 고수 냄새를 싫어한다는 걸. 어쩌냐. 그냥 먹어야지.


숙주와 그 아래 숨겨져 있던 국수까지 젓가락을 그릇 바닥으로 깊게 넣어 한 젓가락 크게 덜어 앞 접시에 담았다. 한 번 두 번 먹어보니 냄새가 나지 않는다. 신기한 경험이다. 다른 때는 화장품 냄새같이 고약한 냄새 때문에 한 젓가락 먹으면 먹기 싫었다. 그런데 여기는 괜찮네? 중간중간 파인애플 볶음밥과 함께 먹으니 진한 향이 더 이상 거슬리지 않는다. 남편과 둘이서 연신 희한하게 맛있다며 두 그릇을 다 국물까지 비웠다. 역시 사람들이 공간이 좁아도 많이 찾는 이유가 있는 건가.


식당을 나와 소화시킬 겸 걸었다. 남편이 너무 많이 먹었단다. 양이 꽤 되는 걸 모르고 다 먹어버렸다고. 그러더니 한 마디 덧붙인다.


"근데 트림하니까 아까 그 냄새가 진하게 올라와."


그러니까. 먹을 땐 괜찮았는데. 쌀 국숫집의 마법이네. 이러다 며칠 후에 또 생각나는 거 아니겠지?

다음엔 우리도 월남쌈 먹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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