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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번째 삶 Dec 23. 2019

숙제하듯 기억을 찾는다

내 최초의 기억

어린 시절의 기억이 그리 많지 않다. 누가 물어오면 난감해지는 이유다. 더구나 곰곰이 생각해봐도 좋은 기억은 없다. 기억나는 상황은 내가 싫어했거나 수치스러웠거나 속상했던 일뿐이다. 내 어린 시절은 온통 회색빛이었나. 기억의 호주머니 구석 먼지까지 털어보아도 좋았던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다.




어느 날 오빠가 옛날이야기를 꺼냈다. 할머니가 나를 보며 '들창코'라고 놀렸던 일을. 비가 오면 빗물이 코로 다 들어가겠다고 했다. 내가 '할머니도 들창코!'라고 대꾸했지만 아무도 웃지 않았고 나는 할머니의 노여움을 다. 할머니는 우리 집에서 절대적 독재자였고 누구도 할머니의 말에 대꾸하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게다가 우리 가족은 할머니 집 문간방에 살고 있었으니 누구라고 내 편을 들 수 있었겠는가.


할머니는 오빠를 편애했다. 할머니는 담배를 피웠는데 하모니 알사탕 캔을 담배 잿 떨이로 사용했다. 할머니는 그 사탕 캔을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게 감춰두고 가끔 하나를 꺼내어 오빠만 줬다. 할머니는 가끔 빨아먹던 사탕도 입에서 꺼내어 오빠에게 줬다. 지금 생각하면 끔찍하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그 사탕도 맛있어 보였다. 그런 할머니가 내게 만날 하는 소리는 '들창코'였다. 내 코는 할머니와, 그리고 내가 보기엔 아빠까지도 똑같이 생겼다. 그러면서 나만 놀려대니 어린 마음에 화가 나 할머니에게 같은 말로 돌려주었는데 내게 돌아온 건 온 가족의 차가운 시선과 욕설이었다. 동생이 태어나기 전이니까 일곱 살이 안되었을 것이다. 그것이 내 최초의 기억이다.


오빠는 웃기는 얘기라며 끄집어냈지만 내게는 상처로 남은 기억이었다. 나는 어느 부분이 웃긴 얘기라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도 내 코가 들창코라는데 변함이 없으니 웃긴다는 걸까. 할머니도 그렇다는 내 말에 싸늘한 분위기가 되어 아무도 웃지 않았다는 게 웃긴다는 걸까. 나는 전혀 웃기지 않았다. 들창코가 뭔지도 모를 때 들은 이야기인데도 지금까지 내게는 콤플렉스로 남았다. 누가 코 얘기만 하면 나는 내 코 생각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내 코가 들창코인 것 같아서. 그것을 들킬 것 같아서. 그게 내 잘못인 것 같아서.


그 후로 몇몇 기억이 있지만 무엇도 행복한 기억은 아니었다. 두 살 위인 오빠와 여섯 살 아래 여동생 사이에서 나는 가족의 사랑 같은 걸 느낄 여력이 없었다. 내 몫 챙기기에 바빴고 그저 욕이나 먹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엄마는 동생이 태어나기 전 오빠와 나에게 늘 똑같은 옷차림과 똑같은 머리를 해서 둘이 쌍둥이냐 소리 듣는 걸 즐겼다. 조금 자란 뒤에는 오빠가 입던 옷만 물려 입었다. 여동생이 태어난 뒤 나이차가 많아 내 옷을 물려 입을 수 없던 동생은 새로 산 공주옷만 입었다. 나는 그게 부러워 투정도 부려 지만 늘 같은 말만 돌아왔다. 넌 오빠 입던 거 있잖아.




다시 최초의 기억. 나는 숙제처럼 옛 기억을 속속들이 뒤집어 본다. 뭔가 다른 게 없을까 이것저것 끄집어낸다. 아직도 상처로 남아 내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일들 뿐. 어린 시절 정말로 환하게 웃었던 기억 같은 것이 있기나 한 걸까. 정말로 기뻤던 적은 있는 걸까. 행복하고 좋았던 기억은 내 깊은 무의식 속에 꽁꽁 숨겨져 있는 걸까.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상처가 된다는 것이 삶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줬을 것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 기억에 사로잡혀 나는 그런 사람이라는 낙인을 찍는다. 안 좋은 기억만을 떠올리는 내가 안쓰럽고 딱해서 어디 숨어있을지도 모르는 좋은 기억을 찾아 헤맨다. 내 어린 시절을 따라서. 그러나 숙제처럼 꼼꼼히 뒤져보아도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나의 가정을 꾸리고 새로운 가족이 생긴 뒤로 소소한 기쁨들이 있다. 남편에게 받은 사랑이나 아이들과 함께한 소중한 시간들. 그런데도 나는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원가족으로부터 받은 상처고통받는다. 이제는 좋은 기억만 남기고 다. 오래된 상처는 떠나보내고 싶다.

시간이 흘러도 치유되지 않는 상처들을 토닥여 줄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 뿐이라는데, 쉽지 않았다. 어딘가 혼자 외로워하고 있을 내면의 아이를 찾아 위로하라는데, 난 아직 시도조차 못했다. 아직도 마주하기 어렵다.

다만 걱정스러운 것은 이 상처가 아이들에게 대물림되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내 상처를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물려줬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어쩌면 이미 아이들의 기억 속에 남겨졌을지 모른다 생각하면 한없이 미안해진다.


넌지시 아이들에게 어릴 적 기억 중에 무엇이 생각나는지 물었다. 큰 아이는 외할머니댁에서 먹었던 항생제가 아주 썼다는 기억이라 하고 작은 아이는 유치원에서 선생님과 있었던 일이란다. 나와 안 좋은 기억은 아닌 것 같아 가슴을 쓸어내린다. 다행이다. 안 좋은 일이 왜 없겠냐만 그것이 아이들의 삶에 오랫동안 상처로 파고들지 않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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