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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번째 삶 Dec 25. 2019

크리스마스 선물

"똑똑"

저녁을 먹고 있을 때 누가 문을 두드렸다. 동네 언니가 문 앞에 서 있었다.


"웬일이야, 전화도 없이"


놀란 눈으로 문을 여는데 언니가 불쑥 선물 봉투를 내밀었다.


"크리스마스 선물!"


아, 오늘이 크리스마스이브였지.


"수제 초콜릿이래. 저기서 팔더라."


선물을 던져 놓고 언니는 가버렸다.




언니는 큰 아이 초등학교 같은 반 학부모로 만났다.

알게 된 지 9년째, 내년이면 10년이 된다.

허둥지둥 좌충우돌 초보 학부모인 나에 비해 언니는 둘째 아이라서 여유가 있었다.


좋은 일, 나쁜 일, 이상한 일, 정말 다사다난한 시간들이었다.

그럭저럭 시간이 흘러 나도 점차 느긋한 학부모가 되었고 아이들은 훌쩍 자랐다. 그 안에 5년 동안 나는 내 아이와 언니의 아이를 함께 공부시켰다. 그 탓인지 언니는 늘 나에게 미안하고 고맙다고 한다. 부담스럽다고 그만 하라고 해도 늘 그런 식이다.


언니와 사이가 좋을 때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내 성격이 까칠하네 예민하네 할 때면 지금 나를 약 올리는 건가 뾰족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10년 가까이 지나는 동안 어느 정도 그런 감각들이 무뎌졌다. 듣기 싫은 말을 흘려들을 줄 알게 되었고 나도 가끔은 언니를 답답해하기도 하고 때론 무시하기도 하며 관계가 이어졌다.





언니는 건장한 체격에 씩씩한 성격인 데다 말술이었다. 어느 모임이고 빠지지 않던 언니가 어느 날 쓰러져 병원에 실려갔다고 했다. 나는 아이의 입을 통해 알게 되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알리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들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퇴원했지만 그 뒤로 언니는 자주 병원 신세를 졌다. 처음엔 병문안도 갔지만 나중엔 그조차 번거로울 정도였다.


언니가 병원에 입퇴원을 반복할 무렵이었다. 퇴원한 지 며칠 되었다면서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지금 삼선 짜장면이 너무 먹고 싶은데 돈이 없어. 전화번호도 모르겠고. 요즘은 휴대폰으로 피자 주문도 척척하던데. 너는 그런 거 할 수 있지? 난 아직 삼선 짜장면 못 먹어봤어. 애들만 시켜줘 봤지. 오늘은 삼선 짜장면이 너무 먹고 싶네."


나는 왠지 모르게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나도 아직 배달앱 같은 걸 사용하지 않을 때였지만 내가 배달시켜주마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가게 때문에 자리를 뜰 수 없어 배달앱을 깔고 검색을 하고 야단법석을 떨고도 안되어 잠깐 달려 나가 주소를 일러주고 음식을 배달시켰다. 주문했다고 언니에게 전화했더니 언니는 "나 그 집은 싫은데." 한다. 하지만 이미 주문했고 값도 치렀으니. 그 후에 언니에게 잘 받아서 먹었다는 전화는 없었다. 나도 굳이 전화해서 먹었는지 확인은 하지 않았다. 그 집에서 주문받고 배달을 안 하지는 않았으리라 믿었다.

그날 저녁 나는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다.


"왜 갑자기 그게 먹고 싶었을까? 내가 주문을 안 해줘서 언니가 오늘 삼선 짜장면을 못 먹으면 내가 오래 후회할 거 같더라고."


나는 죽음을 떠올렸던 걸까. 말하고 나니 정말로 그런 일이 일어날까 봐 걱정스럽고 무서웠다. 당시 언니의 상태그만큼 안 좋았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언니와 다시 통화하게 되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했지만 언니는 끝내 짜장면 얘기는 하지 않았다. 무슨 생색내는 것 같아 나도 말하지 않았다. 언니는 그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전혀 낌새도 보이지 않았다. 남에게 그런 일을 부탁할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정말 그날 언니는 이상했던 걸까. 언니 말투나 행동 모두 이상했던 걸 언니는 모르는 것일까.





아이들이 함께 공부하고 있으니 집안일을 모르고 싶어도 조금은 알게 된다. 올 겨울에도 언니는 병원에 한 달간 입원했다. 어렵고 안 좋은 일들이 있었다. 모른 척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게 언니가 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 저녁, 언니는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수제 초콜릿을 불쑥 내밀었다. 평생 그런 것은 살 줄도 모르는 사람처럼 억세고 무뚝뚝한 언니인데. 갑자기 무슨 일일까 불안하기까지 하다.



언니가 놓고 간 상자의 리본을 풀고 뚜껑을 열었다.

장미 모양, 입술 모양, 하트 모양,......

무심하고 싶었지만 어떤 모양을 집을지 잠깐 망설였다. 장미 모양 초콜릿을 하나 꺼내어 입에 넣었다. 하나 먹어보니 강한 단맛이 나를 끌어당겼다. 다시 하트 하나를 입에 넣었다. 난 이런 거 안 좋아하는데, 중얼거리며.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뭔가를 챙겨줄 때 나는 내가 잘나서 그런 것인 줄 알았다. 아이들을 통해 새로운 사람들과 알게 되고 시간이 이만큼 흐르는 동안 나는 그게 아니었다는 걸 알 만큼 현명해졌다. 내가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그 사람들이 좋은 사람이었다는 걸, 내가 복이 많아서라기보다는 그들이 복 있는, 복 주는 사람들이었다는 걸.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불쑥 내민 언니도 참 복 있는 사람이었구나, 새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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