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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번째 삶 Jan 06. 2020

너를 만나서 반갑지 않다고

비 오는 월요일.

E의 중학교 졸업식이다.

실 복도는 좁고 사람은 많을 테니 식이 끝날 때쯤 가겠다고 E에게 말해 두었다.

졸업식에 갈 준비를 하는데 사람들에 부대낄 생각만 해도 부담스럽고 피곤해진다.


E는 초등학교 친구들이 많이 가는 중학교에 배정되었다. 따라서 초등학교에서 알던 학부모들이 많이 있었다. 그들이 모두 불편했던 것은 아니지만 이전의 관계가 계속 이어져서 어디서든 자주 만나게 되는 것이 껄끄러웠다. E가 중학교에 다니는 동안 불편하지만 마주치는 얼굴들과 거북한 인사를 유지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그리고 이제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니 자연스레 부류들이 정해지고 무리 지어져 다른 학부모를 만날 일이 아주 적어졌다. 오늘 졸업식을 마치면 그들을 만날 일은 이제 없을 것이다.




피곤한 몸으로 집에 돌아와 내내 마음이 불편하다. 말하지 않아도 내 복잡한 마음이 E에게 드러나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몇 번의 입학과 졸업을 지나는 동안 나는 어떤 모습의 엄마가 되어야 할지 매번 혼란스러웠다.


E는 사진을 함께 찍고 싶어 하는 친구도 별로 없고, 선생님과의 관계도 그리 끈끈하지 않다. 내 학창 시절을 생각하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지만, 나는 그런 것이 못내 아쉽다. 그래서 더 사진 찍을 친구 없느냐고 묻곤 하는데 E는 특별히 아쉬워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리고 나를 아는 사람들. 그들과 만나게 되면 나는 그때부터 뻣뻣한 마네킹이 되는 것 같다. 어색하고 불편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게다가 오늘 주인공은 E인데, 왜 이렇게까지 나는 그들을 신경 쓰고 있는 걸까. 이제 안 보면 그만인데. 일부러 늦게 도착했고 E만 보고 사진 찍고 했지만 결국 몇 사람과 마주쳤다. 함께 사진 찍자고 나를 찾고 있다고 했다. 나는 얼른 도망치고 싶었다.


무엇이 나를 움츠러들게 하는 걸까. 아마도 나는 스스로 그들과 우리를, 구분 짓고 있었나 보다. 서로 어울리기 힘든 부류라 생각했고 그것이 다행스러웠다. 어느 순간 E도 그걸 아는 것 같아 미안해졌다. 어쩌면 나와 똑같이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웃음 지어야 하는 불편함을.


붐비는 인파 속에서 마주치면 꼭 반갑게 웃어야 할까. 예전에 알았다는 이유로. 그들은 내가 정말 반가울까. 언제까지 가면을 쓰고 있어야 할까. 나는 너를 만나서 별로 반갑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은 올까. 그러나 다시, 이제 굳이 만날 일은 없다는 걸 떠올리자 마음이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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