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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번째 삶 Jan 02. 2020

새해 첫날, 시댁, 치킨 이야기

나는 왜 화가 났을까

걸어서 오 분 거리에 시댁이 있다. 남편이 쉬는 날이면 계획 없이 불쑥 전화드리고 시댁으로 밥을 먹으러 가기도 한다.

오늘은 새해 첫날이니 남편이 시댁에 가서 밥을 먹잔다.


뭘 먹어야 하나 싶었지만 시장을 들려 가긴 귀찮았다. 집 앞에 있는 정육점을 들러 고기를 사 갈까. 회를 떠가려면 좀 멀리 가야 하는데. 그러다 아이들이 어제부터 치킨을 먹자고 했으니 가는 길에 있는 치킨집에서 치킨을 사 가자고 했다.


집을 나서 걸어가며 남편이 시댁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 내용이 심상찮다. 전화를 끊더니 남편이 갈까 말까 한다.

형님댁 식구가 어머님 댁에 와서 밥을 먹고 방금 치웠단다. 어머님은 오던 말던 맘대로 하라고 하셨단다. 나도 잠시 고민했지만 이왕 집을 나왔고 하니 얼굴 뵈드리러 그냥 시댁으로 갔다.



아뿔싸, 오늘 새해 첫날이구나.

치킨집은 휴무였다.

그럼 배달앱으로 시켜 먹자며 시댁 앞 편의점을 털어 아이들 먹겠다는 걸 사 가지고 시댁으로 들어갔다.


어머님은 형님이 먹을 걸 너무 많이 사 와서 많이 남았다며 우리를 반기셨다. 마침 마트에서 사 온 치킨도 있었다. 우리 아이들이 치킨을 좋아라 하지만 마트 치킨은 별로다. 크게 맛을 가리지는 않지만 유난히 마트 치킨은 취향이 아니다. 그런데도 어머님은 자꾸만 형님이 먹을 걸 많이 사 왔다고 많이 먹으라고 하셨다. 큰 엄마가 니들 먹으라고 치킨이랑 많이 사 왔다고. 건 아닌 것 같은데. 우리가 올 줄 모르셨을 텐데. 형님이 계시면 일부러 더 그러시나 싶다.


사온 양장피도 너무 맛있었는데 조금 남았다며 담아 놓은 그릇을 냉장고에서  꺼낸다. 밥 공기에 한 그릇도 안되게 남아 있었다. 나는 괜찮다고 거절하는데 어머님 금방 말을 바꾼다. 남은 게 아니라 남겨 놓은 거라고, 먹어 보라고. 우리가 전화한 것이 십 분 전인데 우리 네 식구 먹으라 요걸 남겨 놓은 건 아닐 테고. 나는 왜 저러시나 싶어 급 기분이 상하기 시작했다.


닭볶음탕도 누가 봐도 먹다 남은 걸 한 접시도 안 되는데 떠 놓으셨다. 먹던 치킨, 먹던 양장피, 먹던 닭볶음탕, 먹던 돼지고기까지. 식탁은 가득한데 영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그냥 집으로 돌아갈 걸 그랬나.


조카들과 어머님은 양배추 샐러드(그것도 먹던 건지 어디 들어 있던 건지 이미 말라 있었다)에 뿌려준다며 냉장고에서 케첩이니 마요네즈니 찾고 있다. 어머님은 마요네즈는 없고 케첩과 마요네즈 섞어 놓은 것이 있다며 꺼내신다.


나는 순진하게 "그런 소스가 있어요?" 물으며 꺼내신 걸 본다. 다른 소스병에 두 개를 섞어 놓아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허연 것이 아래로 가라앉고 위에는 맑은 물이 찰랑거리고 있었다. 나는 순간 아연해서 그런 거 먹으면 안 돼요! 하고 소리쳤다. 아이들이 주말이면 할머니 댁에 가서 자고 오곤 하는데 혹시라도 내가 없을 때 그걸 먹이실까 봐 걱정되어 나온 말이었다.


그때 조카가 낄낄대며 말했다.

"저런 거보다 편의점에서 사 온 게 더 안 좋아요. 편의점에서 사 온 거는 다 먹이면서 저런 건 안돼요?" 한다.

나는 나도 모르게 아니, 저렇게 소스를 섞어 놓으면 상하니까, 하고 변명을 하다가 '내가 왜 그러고 있지?' 하는 마음에 입을 다물었다.


어머님은 내가 소리친 것에 민망하셨는지 아님 제발 그런 것 좀 하지 마시라고 해도 자꾸만 해서 미안하셨는지 버리려고 했다고 얼버무리시며 소스통을 쓰레기통에 넣으셨다.


괜히 조카들에게 부아가 났다. 지들은 할머니가 좀만 맘에 안 들면 따박따박 할머니를 타박하면서. 우리 애들은 싫다 소리도 안 하고 주는 대로 받아먹는데. 혹시나 그런 거 먹고 탈 날까 봐 그런 건데. 어디 니들 결혼해서 아기 낳고도 그런 거 먹이나 두고 보자 하는 꼬인 맘뽀도 들었다.


어머님은 우리가 먹는 옆에서 형님이 많이 사 왔다고 연신 생색을 내신다. 이 거지가 된 기분 뭐지. 우리가 먹을 게 없어서 온 건 아닌데. 조금 시간이 지나서야 우리 아이들도 아주 불편하게 먹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던한 성격인 큰 아이는 말없이 먹었지만 날 닮아서 예민한 작은 아이는 조금 먹다가 아까 편의점에서 사 온 삼각김밥을 챙겨 방으로 들어간다. 그제야 아이들도 불편했구나, 깨달았다. 아무 생각 없이 먹으라고 한 내가 미안했다.


그냥 집으로 돌아가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치킨 시켜 먹을 걸. 새해 첫날부터 시부모님과 밥 먹으려 좋은 마음으로 나왔다가 기분만 상했다. 생각 같아선 설날 될 때까지 안 가고 싶지만 어머님 아버님 생신이 설 전에 모두 있다. 불편한 마음으로 설날까지 몇 번을 더 봐야 하다니. 괜한 화로 인해 다른 데까지 불똥이 튀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 화가 났던 내 모습을 떠올렸다.

나는 무엇 때문에 화가 났을까?

매번 형님이 보다 낫다는 식(큰 애가 먹을 걸 아주 많이 사 왔다)으로 말씀하시는 어머님 때문에?

편의점 음식 먹이며 소스 먹으면 안 된다는 나를 비웃던 조카들 때문에?

살짝 마음이 흔들렸지만 그냥 가자고 한 남편 때문에?

아이들 마음도 모르고 먹다 남은 걸 그냥 먹으라고 한 나 때문에?


어제 신비한 죄책감 이야기를 읽었다.

내가 엄마, 아내, 며느리로 살며 죄책감을 느끼는 부분은 어디일까 생각해 보았다.

그 연장선상에서  나는 왜 화가 났는지 가만히 들여다본다.

내가 죄책감 느끼고 있는 부분을 누군가 정곡으로 찔렀을 때 나는 화가 났다.


시댁에 갈 때 뭔가를 많이 사가야 한다는 기준에,

아이들에게 편의점 음식을 먹이면 안 된다는 기준에,

남편이 시댁에 가고 싶을 때 반대하지 말자는 기준에,

마지막으로 좋은 엄마는 아이들 마음을 모두 헤아려야 한다는 기준에 못 미칠 때 생기는 죄책감이다.

착한 엄마, 착한 아내, 착한 며느리 콤플렉스인가.


생각해보니 모두 다 내가 나에게 덧씌운 죄책감이었다.

누구도 나에게 그걸 강요하지 않았다. 다만 내가 세운 기준일 뿐. 내가 안하면 그만인데. 그런데도 나는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생각에 갇혀 나를 괴롭히고 '그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화를 내고 있었다.




오늘 나는 화가 난 내 모습이 보였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화를 내는 내 모습을 발견했음에. 그 순간 화가 난 내 모습을 보았고 멈출 수 있었다. 화 난 내 감정 속으로 빠져들지 않았다.

그렇게 나를 본다. 내일은 또 어떤 나를 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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