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다이어리를 꺼냈다. 작년 다이어리를 반 밖에 쓰지 못해서 그냥 이어서 쓸까, 고민하다가 그냥 새로운 것을 쓰기로 했다. 남은 부분이 아깝지만 새로운 해, 그것도 2020년이니까. 핑계 삼아 새로운 다이어리에 새로운 시작.
몇 년 간은 두꺼운 다이어리가 남는 게 싫어서 얇은 수첩에 일정만 기록했다. 그랬더니 일상이 쉽게 잊혔다. 그때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았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병원 다녀와서 결과가 어땠는지조차 잘 생각이 안 났다. 사라지는 아쉬움에 작년에 야심 차게 일기를 적어 보겠노라고 두꺼운 다이어리를 샀다.
하지만 역시나. 일기 못 쓰는 버릇은 여전했다. 가끔 속에 쌓인 것들을 어디에고 쏟아내야 할 것 같은 날을 제외하면 일기를 쓰지 않는다. 다시 다이어리 반절이 하얗게 비어있는 채로 한 해가 끝났다. 더구나 연말에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이런저런 일에 대한 단상을 브런치에 적었더니 더 일기를 쓰지 않게 되었다.
처음에 블로그에 내 속을 다 쏟아 놓았다면 이제는 블로그가 오히려 나를 옭아매고 있는 것 같아 솔직한 심정 같은 것은 쓰기 어렵다. 이제는 소통이나 정보의 장 같다고 할까.
하지만 브런치는 그런 면에서 아직은 조금 자유롭다. 정말로 사소하고 별것 아닌 일이나 글도 들어와서 읽고 공감해주시는 분들께 감사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2020> 매거진으로 매일 일상이나 메모를 일기 대신해서 쓰고 있으니 일기를 따로 쓸 일이 올해는 더욱 없을 것 같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다시 얇은 다이어리로 돌아갈까 하는데 작년에 사둔 다이어리 생각이 났다. 작년에 다이어리를 1+1으로 두 권 샀더랬다. 해마다 새 다이어리를 고르는 일이 설레고 즐거운 행사였는데. 작년엔 왠지 시큰둥 해졌다. 이제 소녀 감성을 어느 정도 벗어났는지 감흥도 적어서 실용적인 다이어리로 한 번에 두 권을 샀던 것이다.
새로운 걸 사려면 사러 나가야 하고 그러면 이전에 사놓은 걸 묵혀야 하고. 번거로운 일도 줄이고 쓰레기도 줄이는 쪽으로 결정한다. 대신 다이어리에 스쳐가는 생각들을 잡아두는 것으로.
작년의 내가 결정한 다이어리를 따르면서 마음은 새로 먹는다.
올해 다이어리의 첫 장에는 이렇게 적었다.
2020 나를 들여다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