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짧고 삼시 세 끼는 자주 온다. 방학 동안에는 더욱. 혼자는 힘에 부쳐 가족들에게 돌아가며 한 끼를 책임지자고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몇 개 안 되는 음식으로 돌려막기 하다 보니 매일 똑같은 메뉴를 먹는 기분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늦은 아침을 먹고 어중간한 시간에 저녁을 먹고 나면 한밤중의 출출함을 참지 못하고 야식을 먹는 패턴이라 세 번 중 한 번은 건너뛰거나 라면 같은 간편식이다. 그런데도 숨이 차고 설거지는 쌓인다.
처음엔 뭐 대단한 음식을 한다기보다 가족들이 밥을 안치고 상을 차리고 설거지만 도와줘도 한결 수월할 것이란 생각이었다. 가족들은 흔쾌히 동의했다. 그리고 나도 생각지 못한 좋은 방향으로 일이 흘렀다. 뭐든 유튜브로 배우는 아이들에게서 거꾸로 내가 음식을 배우게 되었다는 것. 거기에 다른 부수적인 소득도 있었다.
첫 번째 음식은 두부 무침이라나.
두부를 깍둑썰기 해서 끓는 물에 살짝 데쳐 건진다. 간장, 설탕, 조미료를 넣고 다진 파와 다진 마늘을 넣은 양념을 건져 낸 두부에 올려 슬슬 섞어주면 끝.
아이가 하는 것이 못 미더워 결국 내가 내내 옆에 서서 도와주었지만 덕분에 색다른 맛을 알았다. 간장 양념은 묵을 먹을 때의 양념간장보다 약간 묽었다. 따뜻한 두부에 무쳐 먹을 생각은 못 해봤다. 언젠가 TV 프로그램 '맛있는 녀석들'에서 본 두부 나물과 비슷하지 않을까. 이런 거라면 나도 나중에 해 줄 수 있겠네. 아이에게 하나 배웠다.
설 연휴를 지나는 동안은 남은 설음식을 먹느라 몇 끼째 같은 반찬이다. 갈비, 잡채, 전, 나물, 탕국까지. 갈비를 끓이고 있는 반찬으로 상을 차리는 것은 남편이 맡았다. 아이는 오늘도 같은 걸 먹어야 하느냐고 묻더니 자신이 스팸을 활용한 반찬을 해보겠단다. 오케이!
그리하여 두 번째 음식은 스(팸)테이크라고.
스팸은 으깨고 양파는 다진 뒤 밀가루와 달걀을 넣어 주물러 준 뒤 기름에 전처럼 부쳐내면 끝.
유튜브에서 봤다면서 내게 설명을 하며 일회용 장갑을 끼고 열심히 주물러 프라이팬에 부치더니 아이가 도움을 청한다.
- 엄마! 스테이크가 안 뒤집어져요!
나는 스테이크가 프라이팬에 붙어버렸다는 말인 줄 알고 숟가락 말고 뒤집개로 뒤집으라고 했다. 그런데도 안된단다.
무슨 일인가 가봤더니 모양이 다 부서져서 둥근 형태는 사라지고 스팸 볶음이 되어 버렸다. 반죽에 접착제 역할을 하는 밀가루가 너무 적어 재료들이 뭉쳐지지 않은 것이다.
- 유튜브엔 밀가루 양이 안 나왔어?
- 몰라요. 안 가르쳐 주던데요?
레시피에서 중요한 것은 각 재료의 양인데. 스팸 두 캔에 양파 반쪽, 달걀 하나. 거기에 밀가루를 얼마나 넣어야 할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나도 매번 음식을 감으로 하다 보니 할 때마다 맛이 다르건만. 밀가루를 대충 넣고 빡빡해 보이길래 달걀 하나를 더 넣으라고 했다. 섞어보니 이번엔 너무 질척. 다시 밀가루를 더. 그리고 손으로 주물러 프라이팬에 올려주고 잠시 후에 뒤집으라고 했다.
- 엄마! 스테이크가 너무 잘 뒤집혀요! 잘 뒤집히는 게 이렇게 행복할 수가!
아이의 감격한 목소리가 들렸다. 자신이 한 요리가 맛있다며 밥을 두 공기나 먹었다. 저녁 식사 내내 아이는 뿌듯하고 기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아이는 작은 요리 경험으로 쉬워 보이지만 여러 과정을 거쳐는 어려움과 그것들을 완수함으로써 얻는 성공의 기쁨을 모두 가졌다.
어릴 때는 억지로 시켜도 대부분은 엄마의 손을 거쳐야 하는 것이라 무언가를 얻기는 힘들었다. 엄마의 욕심일 뿐. 이제는 혼자 힘으로 하는 비율이 늘었고 아이가 주도적으로 하는 것이니 더 바람직한 일일 테다.
내 일을 좀 덜어보려고 했는데 뜻하지 않은 소득을 얻은 것 같아 엄마로서도 뿌듯해지는 저녁. 엄마의 남몰래 기쁜 마음을 아이는 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