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톡으로부터 슬그머니 달아나기

카프카,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원숭이 페터처럼

by 세번째 삶

메신저 단톡을 안 읽은 지 한 달이 되었다. 새해 전후로 여기저기 들려오는 인사들이 딱히 듣기 싫었다기보다 의미 없는 형식 차리기에 지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에 동참하며 뭐라고 한마디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는 나도 싫고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인사를 다른 이들 눈치 보느라 하는 것도 싫었고.


그럼 모든 단톡에서 나가버릴까. 하지만 말없이 나와버리면 또 누군가는 내게 의문을 품을 것이고 따로 해명을 해야 할 일도 있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이 번거롭고 귀찮았다. 그래서 나는 조용히 단톡의 유령으로 남기로 했다. 단톡 멤버지만 톡을 읽지 않는 멤버. 단톡으로부터 나를 격리시켰다.


단톡 대부분은 알림이 꺼져 있어 소리나 진동이 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폰 화면 맨 위에 새로 온 대화 알림의 하얀 표시는 지울 수 없었다. 빨간 동그라미 안의 숫자도 처음엔 신경 쓰였다. 하지만 그 안에서 오가는 말들이 전혀 궁금하지 않았으므로 무시해버렸다. 무시하려고 노력했고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좀 더 흐르자 뭔가 바쁜 듯 계속 새로 톡 알림 표시가 와도 궁금하지 않았다. 특별히 빠르게 나의 답이 필요하다면 내게 닿을 다른 방법이 얼마든지 있을 테니.


처음에 이런 실험(?)을 계획하면서 다짐한 것은 단톡을 보지 않아 생긴 불이익이 있다면 절대 후회하지 말 것, 누구를 탓하지 말 것. 정기적인 모임이라면 이미 정해진 일정대로 가면 되는 것이고. 혹시라도 변경 사항이 있어 단톡으로 알렸다면 그에 대한 일정 부분 책임은 단톡을 보지 않은 내게도 있으니 약속에 대해 여유를 가질 것.


한동안 어느 모임에서 연락책을 맡은 적이 있다. 당시 모임 멤버 중에는 톡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톡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확고하여 톡을 아예 안 쓴다고 했다. 스마트폰을 안 쓴다고 했던가. 그 마음이야 충분히 이해하지만 모임을 공지하는 입장에서는 민폐가 분명했다. 단톡에 한 번 공지하면 될 일을 문자로 따로 보내야 하니 일이 늘어나는 것이다. 매번 하다가도 자기는 뭐 특별하다고 이런 대우를 해야 하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거꾸로 민폐를 끼치는 입장일 수도 있어 나는 따로 연락해주길 바라지 않을뿐더러 그에 대한 어떤 불이익도 감수하고자 했다.


내가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었다면 당연히 민폐였을 것이다. 나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불편을 겪었을 것이다. 조직의 일원으로 속해 있는 단톡이라면 나갈 수도 없고 참여하지 않을 수도 없는 감옥 같을 것이다. 다행히 내가 속한 단톡은 대부분 일로 엮인 것이 아니라서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는 않는다. 가끔 왜 노란 숫자가 없어지지 않는지 궁금해하는 단톡 멤버가 있다 해도 그게 불편할 일은 아니리라. 아직까지 내게 묻는 사람들도 없었고.


단톡이 불편한 것은 내가 잘 모르는 이들이 함께 들어와 있기 때문이고 잘 아는 사람들이라 해도 개인적으로 따로 해야 할 이야기를 단톡에 올리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고 밤늦은 시간에 꼭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 아닌데도 단톡을 울리는 시도 때도 없는 사람들 때문이다. 게다가 뭐라 반응해야 할지 나를 망설이게 하는 단톡이라면 더더욱 멀리하고 싶다.


우선은 불쑥불쑥 내 일상의 흐름을 깨뜨리는 방해가 사라졌다. 나와 전혀 상관없고 내가 알 필요도 없는 정보들 때문에 집중이 흐트러질 때 느끼는 분노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단톡의 대부분은 내가 몰라도 되는 것들이었다. 왜 굳이 단톡에 올리는지 알 수 없는 말들, 그것들로부터의 해방은 생각보다 후련하고 시원했다. 알고 싶지 않은 것에 귀를 닫는 권리의 실현이라니. 잘 모르는 사람의 시시콜콜 에 내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된 것이 가장 좋았다.


처음엔 여러 개의 단톡에서 사라질 용기가 없어 사라지지 못했다. 혼자만의 착각이었을지 모르지만 후폭풍을 피하고 싶었다. 한 달이 지나고 보니 유령으로 살 만하다. 이백 개 넘는 톡이 아직 열리지 않고 있지만 불편함이나 불안함은 없다. 하지만 이렇게 시간이 좀 더 흐른 뒤엔 정말로 단톡에서 사라질 날을 기대해 본다.




카프카 작품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에서 원숭이 페터는 '슬그머니 달아나라'는 독일어 표현대로 자신도 그렇게 했다고 말한다. 한 달간 단톡을 멀리하는 동안에는 떠올리지 못했고 이 글을 쓰는 동안 원숭이 페터가 떠올랐다. 나도 어쩌면 페터처럼 단톡에서 슬그머니 달아난 것일지도 모른다. 거기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자유란 선택될 수 없다는 것을 언제나 전제로 한다면, 저에게 다른 길은 없었습니다.


인간에게 사로잡힌 원숭이 페터는 인간의 행동을 훈련받아 인간처럼 살아간다. 그를 훈련시킴으로써 자유를 주었다고 생각하는 학술원에서 그에게 보고서를 요구한다. 페터는 자신은 인간이 되는 것이 자유라고 생각한 적이 없으며 자유를 원한 것도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특별한 탈출구인 '인간 되기'를 선택하여 슬그머니 달아난 것이라고.


언제든 어느 모임이든 긴급하고 중요한 단톡은 다시 열릴 것이다. 하지만 충분히 의미 있고 내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톡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나는 또다시 슬그머니 달아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