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하고 싶은 말은 나레이션이 아니라 얼굴을 보고
내가 아는 우리 엄마의 모습은 36살부터 시작한다. 야속하게도 내가 태어났을 당시의 기억은 없다. 엄마에 대한 나의 첫 기억은 아주 큰 거울에 비친 엄마와 나. 커플티를 입고 손을 잡고 교회 계단을 내려가는 모습에서 시작한다. 교회 본당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벽면에 아주 큰 거울이 있었는데, 커플티를 입고 손을 잡고 내려가면서 우리는 친구~ 하면서 엄마와 장난스레 엉덩이를 부비는 모습. 엄마는 나에게 항상 우리는 친구라고 그랬다.
나는 이제야 알았다. 엄마가 "옛날에는 요만해가지고 목욕탕 가면 꼭 엄마 무릎에 앉아서 엄마 뽀뽀! 엄마 뽀뽀! 했었는데.." 하는 엄마의 말이 실은 엄청난 그리움이었고, 36살 그녀에게 아주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는 것을. 엄마의 세상에 나는 우주였으리라.
금명이가 애순에게 나는 엄마처럼 안 살아. 라고 하는 말이 내 마음에 콕 박힌다. 나도 사춘기 시절부터 이십 대 초반까지도 꽤나 차가운 눈으로 엄마를 쳐다봤다. 내가 뱉은 말부터 뱉지 않고 삼킨 말까지 모조리 후회로 남는다. 나는 사실 엄마처럼 안 사는 게 아니라 못 산다. 내가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 하는 것들을 우선으로 두고 포기할 건 포기하면서.. 돈을 준대도 못 한다. 나는 그렇게 컸다. 엄마가 나를 그렇게 하고 싶은 걸 우선으로 할 수 있게 키웠다. 그런데 나는 엄마가 나처럼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지 않는다고 엄마의 인생을 안쓰럽게 봤다.
내가 본 엄마의 첫 모습이 어른이었다고 엄마가 처음부터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아주 바보 같은 실수를 했다. 없는 살림에 쉬지 않고 일을 하는 게 소녀가 어른이 되기 위해, 엄마다운 엄마가 되기 위해 하고 싶지 않아도 그렇게 하는 줄도 모르고. 이 모든 것이 나를 키워내기 위해서인 줄도 모르고.
폭싹 속았수다의 나레이션은 그 시점이 지나고 난 뒤이다. 그 당시는 몰랐다며 후회하는, 이제야 알았다는 말들. 내가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들이 그저 어떤 드라마의 나레이션으로 남지 않길 바란다. 엄마를 사랑한다는 말이 얼굴을 마주 보고 건네면 생생히 살아서 엄마에게 가닿아 그녀를 웃게 하는 말이 되길 바라고, 엄마의 다양한 표정을 사진으로, 영상으로도 많이 볼 수 있길 바란다. 엄마가 키 작아 보인다며 단화를 안 신어서 편하면서도 굽이 있는 신발을 좋아하고 대나무 칫솔을 선호하며 일을 쉬고 있는 지금은 이것저것 안 들고 다녀도 되니 작은 크로스백을 사고 싶어 한다는 이런 것들을 내가 속속히 알고 싶다.
내 나이 스물일곱. 내가 그렇게 소중히 생각하는 나의 20대. 나는 엄마의 20대를 모른다. 20살에 가고 싶은 과와 대학보다는 동생들을 돌보기 위해 집에서 가깝고 취업이 잘 되는 학교를 선택해야 했던, 4년 내내 등록금을 벌어야 해서 알바를 쉬지 않았던, 28살에 첫 애를 낳았던, 차가 없어 애 둘을 데리고 대중교통을 타고 명절에도 왕복 9시간을 고속버스를 타야 했던 34살의 엄마를. 아빠는 해외에서 일해서 연년생 남매를 홀로 키워내던 40살의 엄마를, 50살에 드디어 그토록 꿈꾸던 대학원을 가던 엄마의 마음을 나는 모른다. 우리 엄마와 나는 딱 서른 살이 차이 나는데 그동안 내 나이의 특별한 날들을 세고 챙기다가 엄마의 특별한 날들을 수도 없이 모르고 지나갔다. 나이와 연도에 의미를 붙이기 좋아하는 나에게 특별했던 수많은 날들이 우리 엄마에게도 특별했을 텐데. 나만큼은 엄마의 날들을 특별하다고 생각할 수 있었을 텐데.
평생 나는 내가 이 세상에 없던 시절의 엄마를 볼 수 없지만 지금부터라도 엄마의 인생을 하나하나 찬찬히 살피고 싶다. 적어도 지금부터는 엄마와 나의 인생이 때가 다른 시대극이 아니길 바란다. 그리고 이기적이지만 내 세상에는 엄마가 오래오래 있었으면 좋겠다. 금명이가 미운 4살 새봄이가 힘들다고 하면 달려오는 엄마에게 투정 부릴 수 있는 것처럼 나의 37살에도 당연히 엄마가 내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
하루도 나를 집에 혼자 두고 떠난 적이 없는 엄마에게 나는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 엄마 곁을 자주 떠나는 이기적인 딸이다. 머지않아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을 엄마에게도 보여주고 같이 살 수 있기를 바란다. 다음에는 내가 해외에 나오더라도 엄마와 함께였으면 좋겠다. 올해에는 엄마와 커플룩을 맞추고 사진을 찍고 놀러 가야지. 그녀가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세월 덕에 당신의 우주가 이렇게 잘 자랐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