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병원 돌팔이 아니야?

힘들면 좀 쉬어. 차라리 오진이었으면 좋겠다고 수없이 생각했다.

by 구자

퐉-

쫙-

찌릿.


뇌의 혈관이 팍 터지는 느낌이 이런 것일까? 하는 생각이 스칠 만큼의 충격이 스쳐 지나갔다. 순간. 말 그대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뒷목을 잡았다. 평소 같았으면 ‘두통쯤이야.’ 대충 참아보다가 너무 심하면 두통약 하나 먹고 버텼을 것이다. 그날은 생전 처음 느껴보는 이상한, 목 뒤에서의 찌릿함이 터졌고, 이윽고 통증이 목을 타고 올라와 머리 전체를 지배하며 머리 전체에서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순간 정말 이상했어요. 뇌의 혈관 어딘가 터진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 이후부터 머리가 깨질 것 같이 아파요.


그 길로 바로 병원으로 가, 진료실에서 내가 의사인냥 혈관이 터진 것 같다느니.. 스스로 혈관 터짐이라는 진단까지 내렸다. 하도 호소를 하니 의사 선생님은 병원에서 할 수 있는 검사는 모두 하도록 했다. 검진 결과 상으로는 정상.


이렇게 아픈데 정상이라고요??


의사 선생님은 내 눈을 바라보며 심각한 표정으로 내 증상에 대해 더 자세히 말해줄 것을 요구했다.


목구멍이 쪼그라든 것처럼 숨 쉬기가 힘들어요. 지금도 숨이 조금밖에 안 쉬어지고요. 평소에도 자주 숨의 반에 반도 다 못 쉬는 느낌이라 자주 심호흡을 하고요, 그러다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되면 갑자기 숨이 가빠지면서
과호흡 증상이 와요. 그런 상황이 오면 혀가 쪼여서 혀 전체가 너무 아파요.
몸에 산소도 모자란 느낌이에요.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할 만큼 힘들어서
쓰러진 적도 있어요. 쓰러지면 제가 이상한 사람이 된 걸 아는데도
스스로 제어가 불가능해져요.
신기한 건 10~20분쯤은 119가 생각날 정도로 힘들다가 식은땀이 쫙- 나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 괜찮아져요.


내 몸의 신기한 변화에 대해 약간은 무용담 늘어놓듯, 두통이 진행되어 아픈 뒷목을 잡은 채로 의사 선생님께 주절거렸다. 병원에 가기 한 두 달 전쯤부터인가, 기이한 현상이 몸에 가끔씩 찾아오는 것이 이번 뒷목 사건과 연관이 있을까 싶어서였다.


의사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듣더니 별다른 미동도 없이,


공황장애 증상 같은데요?


라는 첫마디를 꺼냈다.


네? 제가요? 이.. 이.. 게요?? 공황장애가 뭐.. 이렇게 쉽게 알 수 있는 거예요??
아니 뭐… 공황..? 그게 뭔데요??

지금 생각해도 당황스러웠던 그 순간. 그저 물리적으로 몸의 어딘가가 고장 난 거겠지 싶어 뭐라도 몸에 조치를 취해주려고 병원에 간 거구만. 마음의 병이라니.


그.. 그럼 뭘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물리적인 치료나 약쯤을 받고 와야겠다고 갔던 터라 그다음부터는 뇌의 사고 흐름이 정지되었다. 의사 선생님은 우선 약을 먹어보고 경과를 지켜보며, 추후의 치료 방향을 정해보자고 하셨다.

그렇게 진료실을 나왔다.


나 공황장애래. 말이 돼? 내가 왜? 공황이 뭔진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근데 그 병원 돌팔이 아니야?



병원을 다녀온 후, 주변 지인들에게 하소연을 했다. 나에 대해 자세히 알지도 모르면서 초면에 약을 이만큼이나 줬다고, 이 많은 약을 먹어도 되나 모르겠다는 말을 늘어놓았다. 심지어 그 병원 이상한 거 아니냐고, 의사 선생님까지 의심을 해버렸다. (의사 선생님, 못 믿어서 죄송합니다.)




1년이 지났을쯤, 그때 생각이 나서 공황장애 체크리스트를 찾아본 적이 있다. 당시 상황들을 떠올리며 각 문항에 체크를 했더니 10문항이면 10문항. 모든 항목이 내 이야기였다. 설마, 했는데 빼박- 공황장애가 맞았다.


공황장애가 뭔지 잘 모르고 살아왔다. 나와는 상관없을 줄 알았다. 연예인들이 많이 걸렸다는고만 들어왔던 병명. 방송 활동이 어려울 정도라고 하니 감기와는 다른 정신적인 부분에 영향을 미치는 질병이구나.. 정도로만 생각해오던 병명이었는데. 그 공황이 나에게 찾아올 줄은 몰랐다.


그날 병원 진료 이후로도 나는 몇 번의 공황발작을 더 겪어야 했다. 발작의 횟수가 거듭되며 예고편처럼 몸과 생각의 미세한 변화를 통해 약간의 전조 증상까지를 감지할 수 있게 되었다. 서글펐다. 공황의 예고편이 몸으로 느껴진다니. 예고편이 시작되면 본능적으로 ‘아, 시작되겠다.’라는 느낌이 왔다.


‘나 공황이 올 것 같아. 도와줘.’라고 옆에 있던 이에게 미리 도움을 청하는 나름의 능숙함도 장착하게 되었다.


초기에는 전조 증상이 느껴지면 누가 볼까 봐 겁이나 사람이 없는 곳으로 얼른 몸을 피해 이동했다. 화장실이나 인적 드문 벤치로 재빨리 뛰어가 곧 찾아올 공황을 겸허히 맞이했다. 심호흡이라도 크게 하며, 나를 다스리려 했다. 그러다 뜻대로 내가 다스려지지 않는 경우에는 테이블에 엎드리거나 몸을 웅크려 최대한 얼굴을 가렸다. (사실 상황이 심각했을 때의 내 자세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이 사라진 건지, 기억할만한 정신은 없었다.) 그다음의 과호흡은 언제 올까, 사람이 많은 공간에서 갑자기 시작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얹어져서 출근이 두려워졌다. 몸도 마음도 아파서 속상했지만 더 속상한 것은 나의 공황발작을 누구에게라도 들키기 싫어하는 나 자신이었다. 내가 왜.


지금에서야 나에 대한 공부를 해보겠다며 이리저리 검색을 하다가 공황발작이라는 단어를 알게 된 것이지만 그 당시에는 화장실 바닥에 혼자 쓰러져 호흡을 힘겨워하던 순간에도 공황발작이라는 단어조차 알지 못하고 살아왔다. 공황장애는 나와는 거리가 먼 단어라고 생각해오고 살던 나였다. 누구보다 긍정적이고 마인드 컨트롤을 잘한다고 자부하던 나였는데 갑자기 내가 왜. 평소에 스트레스를 받아도 잘 극복할 줄 안다고 생각해왔는데 대체 왜.


스스로를 단순하고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자부해왔는데, 이렇게 한순간에 무너져버리다니. 내가 뭘 잘못한 걸까. 뭐가 문제였을까. 내가 공황장애라고? 온갖 자괴감으로 눈물 뚝뚝 흘리는 날들을 보내야만 했다. 의사 선생님이 차라리 돌팔이- 오진이었으면 좋겠다고 수없이 생각했다.



<반창고 문장> 여러분의 마음에 문장으로 반창고를 붙여드립니다.


힘들면 좀 쉬어. 괜찮아.


돌이켜 생각해보면 공황 발작에 대한 두려움을 숨기느라 더 마음이 움츠러들고 어찌할 바를 모르던 순간, ‘힘들면 좀 쉬어. 괜찮아.’라는 단순한 한 마디가 참 고마웠다.

화면 캡처 2022-09-04 182850.jpg


먼저 두려워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고, 습관적으로 두려움에 휩싸일 때마다‘이건 진짜가 아니야. 내가 스스로 만든 감정이야.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거야.’ 끊임없이 이런 사고를 되풀이하면, 우리가 마주하는 두려움에 대한 항체를 만들 수 있습니다. -오래된 질문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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