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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자 Sep 04. 2022

그 병원 돌팔이 아니야?

힘들면 좀 쉬어. 차라리 오진이었으면 좋겠다고 수없이 생각했다.

퐉- 

쫙-

찌릿. 


뇌의 혈관이 팍 터지는 느낌이 이런 것일까? 하는 생각이 스칠 만큼의 충격이 스쳐 지나갔다. 순간. 말 그대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뒷목을 잡았다. 평소 같았으면 ‘두통쯤이야.’ 대충 참아보다가 너무 심하면 두통약 하나 먹고 버텼을 것이다. 그날은 생전 처음 느껴보는 이상한, 목 뒤에서의 찌릿함이 터졌고, 이윽고 통증이 목을 타고 올라와 머리 전체를 지배하며 머리 전체에서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순간 정말 이상했어요. 뇌의 혈관 어딘가 터진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 이후부터 머리가 깨질 것 같이 아파요.


그 길로 바로 병원으로 가, 진료실에서 내가 의사인냥 혈관이 터진 것 같다느니.. 스스로 혈관 터짐이라는 진단까지 내렸다. 하도 호소를 하니 의사 선생님은 병원에서 할 수 있는 검사는 모두 하도록 했다. 검진 결과 상으로는 정상. 


이렇게 아픈데 정상이라고요??


의사 선생님은 내 눈을 바라보며 심각한 표정으로 내 증상에 대해 더 자세히 말해줄 것을 요구했다. 


목구멍이 쪼그라든 것처럼 숨 쉬기가 힘들어요. 지금도 숨이 조금밖에 안 쉬어지고요. 평소에도 자주 숨의 반에 반도 다 못 쉬는 느낌이라 자주 심호흡을 하고요, 그러다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되면 갑자기 숨이 가빠지면서
과호흡 증상이 와요. 그런 상황이 오면 혀가 쪼여서 혀 전체가 너무 아파요.
몸에 산소도 모자란 느낌이에요.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할 만큼 힘들어서
쓰러진 적도 있어요. 쓰러지면 제가 이상한 사람이 된 걸 아는데도
스스로 제어가 불가능해져요.
신기한 건 10~20분쯤은 119가 생각날 정도로 힘들다가 식은땀이 쫙- 나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 괜찮아져요.


내 몸의 신기한 변화에 대해 약간은 무용담 늘어놓듯, 두통이 진행되어 아픈 뒷목을 잡은 채로 의사 선생님께 주절거렸다. 병원에 가기 한 두 달 전쯤부터인가, 기이한 현상이 몸에 가끔씩 찾아오는 것이 이번 뒷목 사건과 연관이 있을까 싶어서였다.


의사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듣더니 별다른 미동도 없이, 


공황장애 증상 같은데요?


라는 첫마디를 꺼냈다.


네? 제가요? 이.. 이.. 게요?? 공황장애가 뭐.. 이렇게 쉽게 알 수 있는 거예요??
아니 뭐… 공황..? 그게 뭔데요?? 

지금 생각해도 당황스러웠던 그 순간. 그저 물리적으로 몸의 어딘가가 고장 난 거겠지 싶어 뭐라도 몸에 조치를 취해주려고 병원에 간 거구만. 마음의 병이라니.


그.. 그럼 뭘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물리적인 치료나 약쯤을 받고 와야겠다고 갔던 터라 그다음부터는 뇌의 사고 흐름이 정지되었다. 의사 선생님은 우선 약을 먹어보고 경과를 지켜보며, 추후의 치료 방향을 정해보자고 하셨다.

그렇게 진료실을 나왔다. 


나 공황장애래. 말이 돼? 내가 왜? 공황이 뭔진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근데 그 병원 돌팔이 아니야?



병원을 다녀온 후, 주변 지인들에게 하소연을 했다. 나에 대해 자세히 알지도 모르면서 초면에 약을 이만큼이나 줬다고, 이 많은 약을 먹어도 되나 모르겠다는 말을 늘어놓았다. 심지어 그 병원 이상한 거 아니냐고, 의사 선생님까지 의심을 해버렸다. (의사 선생님, 못 믿어서 죄송합니다.) 




1년이 지났을쯤, 그때 생각이 나서 공황장애 체크리스트를 찾아본 적이 있다. 당시 상황들을 떠올리며 각 문항에 체크를 했더니 10문항이면 10문항. 모든 항목이 내 이야기였다. 설마, 했는데 빼박- 공황장애가 맞았다. 


공황장애가 뭔지 잘 모르고 살아왔다. 나와는 상관없을 줄 알았다. 연예인들이 많이 걸렸다는고만 들어왔던 병명. 방송 활동이 어려울 정도라고 하니 감기와는 다른 정신적인 부분에 영향을 미치는 질병이구나.. 정도로만 생각해오던 병명이었는데. 그 공황이 나에게 찾아올 줄은 몰랐다. 


그날 병원 진료 이후로도 나는 몇 번의 공황발작을 더 겪어야 했다. 발작의 횟수가 거듭되며  예고편처럼 몸과 생각의 미세한 변화를 통해 약간의 전조 증상까지를 감지할 수 있게 되었다. 서글펐다. 공황의 예고편이 몸으로 느껴진다니. 예고편이 시작되면 본능적으로 ‘아, 시작되겠다.’라는 느낌이 왔다. 


‘나 공황이 올 것 같아. 도와줘.’라고 옆에 있던 이에게 미리 도움을 청하는 나름의 능숙함도 장착하게 되었다.


초기에는 전조 증상이 느껴지면 누가 볼까 봐 겁이나 사람이 없는 곳으로 얼른 몸을 피해 이동했다. 화장실이나 인적 드문 벤치로 재빨리 뛰어가 곧 찾아올 공황을 겸허히 맞이했다. 심호흡이라도 크게 하며, 나를 다스리려 했다. 그러다 뜻대로 내가 다스려지지 않는 경우에는 테이블에 엎드리거나 몸을 웅크려 최대한 얼굴을 가렸다. (사실 상황이 심각했을 때의 내 자세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이 사라진 건지, 기억할만한 정신은 없었다.) 그다음의 과호흡은 언제 올까, 사람이 많은 공간에서 갑자기 시작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얹어져서 출근이 두려워졌다. 몸도 마음도 아파서 속상했지만 더 속상한 것은 나의 공황발작을 누구에게라도 들키기 싫어하는 나 자신이었다. 내가 왜. 


지금에서야 나에 대한 공부를 해보겠다며 이리저리 검색을 하다가 공황발작이라는 단어를 알게 된 것이지만 그 당시에는 화장실 바닥에 혼자 쓰러져 호흡을 힘겨워하던 순간에도 공황발작이라는 단어조차 알지 못하고 살아왔다. 공황장애는 나와는 거리가 먼 단어라고 생각해오고 살던 나였다. 누구보다 긍정적이고 마인드 컨트롤을 잘한다고 자부하던 나였는데 갑자기 내가 왜. 평소에 스트레스를 받아도 잘 극복할 줄 안다고 생각해왔는데 대체 왜. 


스스로를 단순하고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자부해왔는데, 이렇게 한순간에 무너져버리다니. 내가 뭘 잘못한 걸까. 뭐가 문제였을까. 내가 공황장애라고? 온갖 자괴감으로 눈물 뚝뚝 흘리는 날들을 보내야만 했다. 의사 선생님이 차라리 돌팔이- 오진이었으면 좋겠다고 수없이 생각했다. 



<반창고 문장> 여러분의 마음에 문장으로 반창고를 붙여드립니다.


힘들면 좀 쉬어. 괜찮아. 


돌이켜 생각해보면 공황 발작에 대한 두려움을 숨기느라 더 마음이 움츠러들고 어찌할 바를 모르던 순간, ‘힘들면 좀 쉬어. 괜찮아.’라는 단순한 한 마디가 참 고마웠다.   


먼저 두려워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고, 습관적으로 두려움에 휩싸일 때마다‘이건 진짜가 아니야. 내가 스스로 만든 감정이야.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거야.’ 끊임없이 이런 사고를 되풀이하면, 우리가 마주하는 두려움에 대한 항체를 만들 수 있습니다. -오래된 질문 p.60-
이전 02화 꽤나 완벽쟁이라고합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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