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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자 Sep 04. 2022

꽤나 완벽쟁이라고합디다.

나는 덜 되었다. 나의 덜 된 인생을 기꺼이 예찬한다.

대충 해.
너무 그렇게 열심히 하려고 하지 마.
너무 완벽하게 하려고 하는 거 아니야? 그러니 아프지.


나는 완벽쟁이란다. 

완벽이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완벽의 정도가 어디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가 보다. 그저 열심히 살아온 것뿐이고, 가능한 주어진 능력 범위 안에서 내 몫을 해 내려,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인생을 만들고자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 어느 날 그 최선이 뾰족한 화살로 마음에 내리 꽂힌다. 게다가 예상 못한 무게감은 더 늘어나기도 한다. 인생에 최선을 다할수록 어깨에 얹어지는 짐의 무게도 물에 젖은 솜마냥 한없이  삶을 조금씩 짓누른다.


A : 잠깐만, 이리 좀 와봐바. 이게 뭐야아??

B : 네? 왜요?

A : 이것 좀 봐봐. 김밥 10줄인데 100만 원에 구매하겠다고 결재 올린 거야?

B : 네??? 제가요? 어머. 죄송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던 신규 시절, 해맑은 표정으로 김밥 10줄을 100만 원에 사겠다는 결재를 올렸다. 다행히 최종 결재 직전 발견된 100만 원짜리 문서는 반려, 재작성되는 해프닝으로 마무리되었다. 주변의 모든 분들이 그럴 수 있다며 허허 웃으셨지만, 스스로 느꼈던 그 순간의  화끈거림이란. 


물론 지금 돌아보면 별 거 아닐 수도 있는, 아주 큰 일은 아닌, 단순 실수였다. 더 큰일이 아니었던 것이 다행이었겠지만 사회로 첫 발을 내딛은 후 얼마 되지 않아 느꼈던 그때의 화끈 거림은 오늘날 나의 완벽한 불안증에 기인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후로 숫자 울렁증인 나는 더더욱 문서 결재 직전까지 금액, 날짜 등 모든 숫자를 보고 보고 또 살펴본다. 직장인으로 당연한 절차겠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실수는 하고 산다.) 




성인으로서의 행동에 대한 책임감, 직장인으로서의 최소한의 직업 정신, 오랫동안 갈망해왔던 꿈에 대한 책무성. 그 무엇이 되었든 열심히 사는 것이 정답이라 생각하며 모두들 오늘을 산다. 누구나 그렇듯 별다른 것을 바라지 않고, 그저 책임에 대한 열정을 더 보탰을 뿐인데. 


덜 된 나의 성숙도를 테스트하려는지,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잠을 쪼개어 행했던 일들은 때로 뾰족한 화살받이를 감내해야 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내 삶 중 평범하지 않았던 부분들은 스스로 깎아내야 했거나, 애써 숨겨야만 그 비난들을 피해 갈 수 있었다. 혹은 때로 더 많은 일들을 감내하는 경우도 종종, 아니 자주 생겼다. 


그 상처의 고비들로 힘들어할 때마다 스스로를 일으켜 세울 수 있는 큰 힘은 자신이 ‘덜 된 자아’라는 것을 인정할 줄 아는 판단력이다.


완벽주의자들의 특징이 

1. 일을 수행하기 위해 모든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다.

2. 자신 및 타인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갖고 있다.

3. 완벽하게 해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시작하지 않으려 한다. 

4. 자기에 대한 평가가 박하다.

라고 한다.


하지만 스스로를 점검해보면 나는 1~4번 중 그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20대 이전에는 설사 그랬을지라도 현재는 게으르고 나태한 것을 좋아하고, 스스로에 대한 기준 따위 없이 사는 부류에 더 가깝다. 워킹맘으로 하루하루 근근이 버티며, 발등에 떨어진 과업들(아침부터 등원, 등교시키기, 출근 이후의 업무들, 퇴근 이후 아이들이 잠들기 전후의 살림 육아..)을 도장깨기 하듯 해내고는 저녁에 아이 재우면서 그 옆에서 스르륵 곯아떨어져 자는 미생일 뿐. 


다만 워킹맘으로 살다 보니 주어진 시간 안에서 효율적으로 일해야만 했고, 나의 나태함으로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겠다는 신념을 지켜왔다. 그런 모습이 완벽한 모습으로 포장되어 보였을까.


나를 조금이라도 깊게 아는 지인들은 나의 완벽주의설에 콧방귀를 뀌고 ‘풉- 네가? 사람들이 너의 실체를 아직 모르는구나. 넌 이렇게 허술하고 게으른데...’라고 웃을 것이 뻔하다. 


나는 완벽하지 않지만 적어도 나를, 내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할 줄은 안다.




그 말은 곧 지금의 상처 역시, 우리의 인생을 온전히 깨부술만한 큰 데미지를 주지는 못 한다는 것. 나는 괜찮을 것이고, 괜찮다. 조금 아프지만 곧 일어날 수 있다. 덜 다친 것에 불과할 테니. 아직 덜 성숙했지만 이 정도 상처는 툭툭 털고 일어날 만큼의 에너지는 내 안에 있으리라. 그렇게 다독이며 나를 일으켜 세운다. 


그래서 오늘도 선택한다. 덜 된 인생을 살기로. 덜 성숙된 만큼, 덜 다쳤다고 다독이며 더 많이 위안받을 수 있는 하루. 


그 길의 끝에 피식- 웃었다면 그만이다. 



우리의 참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능력보다 우리가 하는 선택들이란다.

It is our choices, Harry, that show what we truly are, far more than our abilities.

-J.K 롤링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



<반창고 문장> 여러분의 마음에 문장으로 반창고를 붙여드립니다.


나는 덜 되었다. 덜 성숙했고, 덜 부서졌다. 

나의 덜 된 인생을 기꺼이 예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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