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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엎드려 잠자는 ㅇㅇ 이가 시험 범위를 물었다.

모든 관계의 시작은 관심과 꾸준함이라는 사소하고 당연한 사실을 잊지 않기

by 구자

내 수업 시간의 80프로 이상을 엎드려 자는 것으로 시작하는 ㅇㅇ이. 그런데 그 녀석이 어째 밉지가 않다. 밉기는. 오히려


오늘은 무슨 일로 피곤할까,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어디가 아플까?


하고 더 걱정이 되어 아이를 깨우면서 수업을 시작한다.


우리 ㅇㅇ이, 일어나자. 수업해야지.
어디 아파? 같이 책 보자.

며 아이에게 한 마디라도 더 건네고, 작은 관심이지만 꾸준히 아이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덕분에 그 아이의 이름은 빨리 외웠다.


어느덧 학기 말 시험을 앞둔 시기. 아이에게는 졸업 고사다. 그런데 쉬는 시간에 옆 반에 있던 나에게 그 아이가 찾아왔다.


샘, 시험 범위가 어디예요?


바로 전 수업시간에 두 번이나 다 알려줬짜나! 칠판에도 써놨고, 이알리미 어플로 공지도 나갔는데 핸드폰 확인도 안 하지??


라고 대답할 수도 있었으나


오구 오규~ 시험 범위가 궁금했어?
아이코 예뻐라. 샘이 직접 표시해줄게.
같이 교실로 가자. 책 꺼내봐.


라며 아이를 앞세워 수업이 끝난 교실로 다시 들어갔다. 아이 책을 꺼내어 직접 펜으로 시험 범위를 한 장 한 장마다 표시를 해주었다.


요즘 아이들, 단순히 6,7,9단원이 시험 범위라고만 알려주면 꼭 '그게 몇 쪽인데요?'라고 되묻는다. (목차를 보라고!!)


시험 범위가 몇 단원인지는 알아도 몇 쪽인지 몰라서 시험공부를 하려다 다시 책을 덮는 아이도 있다. 그러니 세심하게, 페이지까지 하나하나 알려줘야 안심이 된다.


샘이 이렇게까지 책에 시험 범위 알려주는 사람, 너밖에 없어.
샘도 이렇게 해주는 거 처음이야.
그러니까 ㅇㅇ이 꼭 공부해봐. 알았지?
잘 보진 않아도 되는데, 열심히는 해보자.
그래서 원하는 고등학교에 지원해보자.
샘이 꼭 기억할게. 우리 ㅇㅇ이,
샘이 많이 관심 가지고 응원하는 거 알지?
한 번 시작하면 잘하겠구먼. 화이띵!!!


유난히 마음이 쓰이는 학생들이 있다. 모든 아이들이 소중하고, 모두에게 관심을 쏟지만 한 번씩 더 말을 건네었던 아이들이 교사의 관심에 응답이라도 해주듯,

이렇게 어느 날 문득 먼저 다가와 시험 범위를 물으며, 안 하던 공부를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줄 때는 그 아이의 눈빛의 여운이 참 오래 남는다.


대부분의 수업시간마다 엎드려 있던 아이였지만, 늘 귀로는 내 이야기를 듣고 있었고, 끄덕끄덕 엎드린 채로 대답도 했던 아이다. 아이의 행동이 아니라 내면의 마음을 더 크게 바라보니 어느 순간 아이의 표정이 바뀌는 것을 분명 읽었다.


다짐해본다.

모든 관계의 시작은 관심과 꾸준함이라는 것을 잊지 않겠다고. 사소하고 당연한 사실이지만 자주 잃고 산다. 사소함을 기억하며, 때로는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당연하지 않은 것들을 당연하게 적절히 잘 정리하는 삶을 살겠노라. 마음을 다잡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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