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만추9항]저마다의 깊이가 있음을 존중한다.

겉으로 가벼워 보일지라도, 저마다의 숙성 과정의 깊이에 경배를 든다.

by 구자

[게. 만. 추]

세상 게.으르고 만.사 귀찮아하는 삶을 추.구하고 존중받을 권리-

{게.만.추 9항}

겉으로 슴슴하고 가벼워 보일지라도 사람마다, 저마다의 깊이가 있음을 존중한다.

평양냉면을 먹을 때에는 그를 추대하며, 그 숙성 과정의 깊이에 경배를 든다.




평양냉면파들의 부심

평양냉면을 좋아합니다... 만
초고수는 아니고요. 중수- 정도 됩니다.


평양냉면을 좋아하는 이들은 평양냉면 맛을 즐길 줄 안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냉면은 슴슴해야 제 맛이지, 이 맛에 먹는 거지."라고 한 마디씩 얹으며, 식초도, 겨자도 섞지 않고, 국물 색조차 밍밍한 그것을 후루룩- 먹는 뿌듯한 표정. 그런 자신을 즐긴다.



평양냉면은 밍밍하고 슴슴하다. 그 맛을 좋아한다.

사실 처음 평양냉면을 '내돈내산' 하던 날, 앞사람과 한 잎 먹자마자 눈을 마주치며 무언의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이거 맛이 왜 이래? 싱거운 거 맞지???' 그러다 '다른 냉면집은 괜찮을 거야, 이거 맛있는 거라며? 비싼 거잖아!!! 다른 집으로 가보자.'라는 생각에 한 번, 두 번, 평양냉면을 시도해보았고, 평양냉면의 고유의 맛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초고수 정도까지는 아니고, 중수- 정도쯤에서 적당히 간이 베인 맛 정도를 즐겨 먹는다.)



평양냉면은 비싸다.

한 그릇에 기본 10,000원~13,000원, 2만 원 대의 냉면도 간혹 있다. 한 그릇의 냉면 가격 치고는 (물가가 아무리 올랐다지만) 비싸다. 자장면보다 건더기가 눈에 띄게 많은 것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햄버거보다 육즙과 소스가 쥬욱- 입 안 가득 퍼지는 것도 아니면서, 가벼운 국물에 면, 고명 정도의 한 그릇이 만원이 넘는다는 것은 보통의 음식 가격에 대한 '비례성의 원칙(음식의 양과- 소스의 양은 음식의 가격에 비례해야 한다.)'에 어긋난 것 아닌가-라고 말한다면, 평양냉면을 온전히 다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평양냉면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피, 땀, 눈물을 한 번쯤 생각해봤다면 고개를 끄덕일 가격. 오히려 저렴한 편에 해당한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더 비싸면 비쌌지, 이보다 가격이 더 내려갈 수는 없을 만큼의 많은 공정이 필요하다.


평양냉면이 내 앞에 한 그릇으로 담겨 나오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이해하고 나면, 평양냉면의 가격과, 슴슴한 맛에서 뿜어져 나오는 이 녀석의 깊이를 새삼 다시 음미해보게 된다. 결코 탄생 과정이 쉽지 않았던 냉면 한 그릇-은 인생의 의미까지를 겸허하게 생각해보게 한다.



미안해, 넌 대충 쉽게 만들어진 줄 알았어. 평양냉면-

미처 몰라봤다. 별거 아닌 줄 알았다. 고기 기름 하나 떠 있지 않은 밍숭한 국물. 그래서 아무것도 모를 때에는 그 녀석의 가격에 어이없어했다. 이 때문에 평양냉면을 가혹하게 비평하고, 그 녀석의 가치를 날카롭게 지적한 각계각층의 평론가들도 많다.

한우, 닭, 돼지들의 갖가지 부위를 모아 핏물을 제거한 후, 잡내를 제거할 갖가지 야채들을 함께 넣고 오랜 시간- 뽀얀 육수를 우려내는 것이 평양냉면을 만드는 첫 시작이다. 육수가 만들어지면 기름 한 방울 뜨지 않도록 육수를 식히는 과정이 남아있으며, 메밀을 갈아 면을 만드는 공정은 별개다. 얼핏 여기까지만 엿보더라도 평양냉면 한 그릇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전 과정을 대충이라도 알게 되면 '미안해. 넌 대충 쉽게 만들어진 줄 알았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겉모습이 지닌 밍숭함만 보고 섣불리, 대충 만들어졌기 때문에 가격이 저렴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평양냉면, 너를 미처 몰라봤구나.

어쩌면 나는 평양냉면의 맛보다, 평양냉면 한 그릇이 내 앞에 놓이기까지의 '시간의 기다림을 견뎌낸 모든 것들'을 좋아하고 사랑하는지도 모르겠다. 음식이 지닌 스토리에 빠져 이 맛을 맛있다고 착각하며 먹다 보니 이제는 익숙해지고, 더 좋아진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게.만.추 8항}

평양냉면을 먹을 때에는 그를 추대하며, 제조 과정의 깊이에 경배를 든다.


-겉으로 슴슴하고 가벼워 보일지라도 사람마다, 저마다의 깊이가 있음을 존중한다.


평양냉면의 요리 과정을 대충이라도 알고 난 후, 냉면을 먹을 때에는 조금 천천히 먹는다. 집에서 쉽게 끓여진 라면과 어찌 같을 수 있으랴. 후루룩- 면치기 하는 즐거움보다 냉면, 그 녀석을 추대하며, 제조 과정의 깊이에 경배를 들으며, 원재료의 본래 맛을 하나하나 느껴보려 노력하고 음미한다.


나이가 들수록 겉모습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것을 보류하게 되었다.

젊은 시절에는 좋아하는 것에 빠지는 시간이 짧았고, 좋아함의 여부를 빠르게 판단했다면 이제는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이 아닌, 저마다의 깊이를 보려 한다. 그 깊이를 모두 알게 되기 전까지는 함부로 결론을 내지 않는다. 겉으로 슴슴하고 가벼운 맛을 지닌 냉면조차도 수 십 시간의 깊이가 담겨져 있을터.


겉모습이 다소 가벼워 보일지라도, 혹은 게을러보일지라도, 저마다의 깊이가 있음을 존중하며, 그들이 모두 존중받는 사회가 되기를 소망해본다. 다소 덜 깊어도, 덜 익었어도 저마다의 삶에서의 숙성도가 다를 테니 나의 헛된 잣대로 그들을 함부로 평가하지 않겠노라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