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7. 작성된 글입니다
어딘가 모르게 램프 요정 ‘지니’를 닮은 누군가가 나타나 “이번 여름휴가에 당신은 한 가지 기능만 구현하는 ‘하나의 물건’만 가져갈 수 있습니다.”라고 한다면? 필자는 우선 “고맙습니다. 휴가라니!”라고 깍듯이 인사한 뒤, 서슴없이 음악 기기를 집어들 것이다. 음악은 어딘가에서 훌쩍 떠나온 나를 다시 한 번, 심지어 우주라도 떠나게 해주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 여름휴가에 앞서 확실하게, 망설임 없이 집어 든 다섯 개의 곡을 소개한다. 이 음악은 반드시 이 순간이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이 음악들을 들으며 끊임없이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그때 마음속에 안착하는 낯선 풍경들... 그 속에 담긴, 바람에 흔들리는 모든 것들은 귓가를 맴도는 음악에 맞추어 수줍게 춤추기 시작한다.
찰랑찰랑한 기타리프, 자유분방한 멜로디, 거친 듯 무심한 보컬. 그러니까 이들의 음악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청량하다!’
멋진 수염을 좋아하는 다섯 남자 이스턴사이드킥(Eastern Side Kick). 그들의 대표 곡 <다소 낮음>이 재생되는 순간, 우리는 좌우로 움직이게 되는데(그것이 팔이 되었든, 고개가 되었든, 몸이 되었든) 그 동작은 분명 노래가 끝날 때까지 결코 멈출 수 없는 춤이 되어 버린다. 적당히 지각하고 혼도 나고 싸우기도 하는...... 효율성이 다소 낮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다소 낮음>.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 왠지 고속도로가 떠올랐다. 아마도 시원하게 뚫려 있는 거친 아스팔트, 그곳을 달릴 때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대략 그쯤의 이미지가 음악과 닮아 있어서 그런 듯하다. 그래서 여름휴가를 떠나는 당신이 고속도로를 달리는 순간! 이 노래를 추천한다. 후렴구에서 무한정 반복될 듯한 ‘누가?’를 목이 터져라 외치는 것은 옵션 사항이다.
“먹고 살기 힘드시죠? 저도 그래요.” 음악이 시작되면 잔잔한 파도 소리와 눈치 없이 해맑은 우쿨렐레 사운드, 천연덕스러운 나레이션이 흘러 나온다. 이제 당신은 눈앞에 펼쳐진 낭만적인 바다를 바라보며 자연스럽게 맥주 한 모금을 마신다.
한국 인디 록 1세대 밴드 코코어(Cocore). 그들의 5집 「Relax」(2009)의 타이틀곡이자, 첫 번째 수록곡인 ‘유체이탈’은 휴식에 앞서 모든 것ㅡ영혼마저ㅡ을 내려놓으라 말한다. 베이시스트 김재권의 낮고 담담한 나레이션과 보컬/기타리스트 이우성의 흐느적거리는 목소리가 오가며 진행되는 유체이탈은 기존에 코코어가 선보였던 아찔한, 때로는 먹먹한 사운드와 대비되는 몽환적인 분위기의 곡이다. 이번 여름, 해변에서 눈을 감은 채 실제 파도소리와 섞여 버린 ‘유체이탈’을 들어보자. 나른한 우쿨렐레 사운드가 안내하는 또 다른 해변으로 우리의 영혼이 다다르는 순간…… 코코어는 조심스레 그리고 흔들림 없이 묻을 것이다. “갈까요? 오나요? 마셔요.”
담담하고 단정하다. '시와'의 음악은 그런 느낌이다. 그래서 나는 이 곡을 오랫동안 반복해서 들을 수 있다. 어쿠스틱 기타와 잔잔한 건반 사운드, 그리고 차분한 그녀의 목소리로 이어지는 ‘랄랄라’.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 또박또박 들려오는 가사를 따라 천천히 그려지던 어떤 풍경을 보았다. 그리고 그 풍경은 한 장의 사진처럼 마음에 남아, 다시 음악을 듣는 순간 마치 실제로 마주했던 것처럼 떠오른다. 음악 치료에 대한 공부를 하던 중 만든 자작곡을, 라이브 클럽 오디션에서 선보이며 음악을 시작한 시와. 그래서인지 그녀의 음악은 치유의 힘을 지니고 있다. 어쩌면 이 노래는 봄과 더욱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 때보다도 진정한 휴식을 느끼고 싶다면, 조금은 후텁지근한 여름 바람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처음 그들의 음악을 들었을 때 ‘이건 뭐지?’하고 되뇌었다. 마치 멈출 듯 말 듯, 단숨에 읽게 되는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를 듣고 ‘뭐라고?’ 라고 반문했던 것처럼. 그리고 이내 옛 남자와 여자가 스텔라(자동차)를 탄다는 나름 확실하지만 뭔가 석연치 않은 그들의 팀 명과 음악을 알아가는 순간, 그래 이건 뭔가 치명적이라고 느끼게 된다.
2007년 1집 「우리는 깨끗하다」로 데뷔한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이하 ‘구남’)는 건강하고 긴 삶을 지향하고 실천하는 ‘조웅’ 과 ‘임병학’으로 구성된 듀오다. 로큰롤, 블루스, 댄스, 뽕짝 등을 융합시켜 ‘구남‘화 시킨 그들의 모든 음악에는 구수한 장단이 녹아 있어서 덩실덩실까지는 아니더라도, 분명 느릿느릿 움직이게 된다. 이들이 선사하는 아리송한 카타르시스는 오직 이들만이 줄 수 있는데, 독창적인 사운드도 그렇지만 나름의 철학이 담긴 가사는 그들의 매력을 증폭시킨다. 1집의 타이틀곡인 <도시생활>은 도시에서만 살기에는 아까운 우리의 젊음을 노래하고 있다. 그들의 가사처럼 우리는 “시커먼 공기도 마실 만큼 마셨고, 가지가지 사람 구경도 해봤고...” 이제 익숙한 듯 낯선 농촌으로 훌쩍 떠날 차례를 앞두고 있다.
그는 바람이 많이 부는 제주도에 산다. 그의 집 담벼락에는 부추가 자라고, 마당에는 땔감이, 작은 방 안에는 기타 한 대가 걸려 있다. 1993년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입상하며 데뷔한 ‘윤영배’. 이후 그는 장필순, 조동익, 이한철 등의 앨범에 작곡으로 참여하며 조용히 음악 활동을 이어간다. 그러던 그가 자신의 목소리로 세상과 마주한 것은 17년 만에 일이었다. 그렇게 아주 느리게 진행된 윤영배의 첫 EP 「바람의 소리」(2010). 그곳에 담겨 있는 곡 ‘이발사’에는 오랜 시간 쌓아온 숨을 조금씩 뱉어내는 윤영배의 목소리와 제주도의 느린 바람이 담겨있다. ('이발사'는 스스로와 친구들의 머리를 깎아주기도 하는 그의 별명이다.) 모든 노래가 각자의 풍경을 품고 있듯이, 이 곡 또한 자전거 페달을 밟고 유유히 산책하는 모습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이번 여름 당신이 어느 작은 동네를 자전거로 산책한다면 이 곡을 추천한다. 당신은 이 음악과 함께 자유로운 바람을 온전히 맞으며 어느 곳이든 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