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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모 Feb 03. 2022

[에세이] 광장과 밀실

ENTJ와 INTJ 사이


유행한 지 한참된 MBTI에 대해 최근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누군가 나에게 MBTI 유형에 대해 물으면, "글쎄 알파벳이 기억이 안 나네? 무슨 리더형이었는데."라고 무심코 대답하고 말았었는데, 이제야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나의 유형이 MBTI 연봉 상위권에 든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였다. (어쩔 수 없이 어떤 의미로의 어른이 된 나)



나의 MBTI 결과는 ENTJ(대담한 통솔자)다. '어쩐지... 내 맘대로 안 되는 게 있으면 그렇게 화가 나더라... 그래서 명상을 시작했는데... 앞으로 명상을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 그런데 사실, 누군가 나를 보고 과연 ENTJ라고 생각할까 싶다. 나는 다소 조용하고 내성적으로 보이는 타입 같기도 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주변 사람들이 나의 의외의 모습에 놀라기도 하고, 그들에게 MBTI 결과를 공유하면, "네가...?"라는 반응이 돌아오기도 했다. 하지만 고3 때 반장으로 뽑혀 반을 이끌었던 기억이라든지, 직장에서 최초의 행보를 선보인다든지, "추진력을 보고 알아봤다."는 사람도 간혹 있었으니... 뭐,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히 이야기하진 못하겠다.


그래서 흐뭇한 마음으로(연봉) 오랜만에 ENTJ 유형의 장단점을 훑어 보았다. '음, 그래. 맞아. 완전 나야. 어허... 이 사람. 단점도 있지만 마침내 성공할 상이로세.' 하면서 순간, '어? 근데 나 그 사이 변한 거 아닐까?' 싶었다. 몽테뉴에 의하면 인간은 죽을 때까지 변화하는 존재가 아니던가? 그래서, 다시 한번 검사를 시작했다. 결과는 근소한 차이로 INTJ였다.


몇 년 전, 처음으로 검사를 했을 때, E(외향) I(내향)의 퍼센티지가 51대 49였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그게 미세하게 역전이 되어서, I(내향) = 51 E(외향) = 49로 INTJ가 된 것이다. '독립적이고 우아한 전략가'인 인티제는 여자로서는 전체 중에 0.8%밖에 없는, 아주 희귀한 종류의 사람이었다. 문과였지만 수학을 가장 좋아했던 나는 모든 일을 할 때 계획을 치밀하게 세우고 그대로 이행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런 유형의 여자사람이 이렇게도 드물다니. 충격이었다. 어쩌면 나와 인간관계를 맺는 사람들이 다소 당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속을 다 보여주고 다니거나, 저 INTJ예요!! 가끔은 ENTJ고요!! 라고 설명해야 하는 걸까?)


한편으로는 나라는 사람을 조금은 이해하게 된 것 같아 마음이 편안해지기도 했다. '어쩐지 나는 어떨 땐 외향적이고 어떨 땐 내향적이었어. 인간은 광장과 밀실을 오가는 존재라는 글을 보고 절실히 공감한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군.' 싶었다. (어?? 그런데... 다른 성향들은? 시간이 지나서 바뀌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한데, 결과를 보면 그렇게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 같기도 하다.)


MBTI 결과에 흥미를 가지게 되면서 당분간은 이래저래 살펴볼 마음이긴 한데, 또 다른 마음으로는 각 성향이 99%가 나오지 않는 이상, 그만큼 반대의 성향도 가지고 있다는 거니까 결국 인간은 모든 면을 함께 공유하며 살아가는 존재가 아닌가 싶다. 어떤 부분이 어떤 환경에 의해 얼만큼 부각되어 있느냐의 차이일뿐.


아무쪼록 앞으로 나의 내면을 부지런히 들여다 보고 보완하기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선 일단, 내면에 고인 감정을 줄여야 한다. 다양한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속으로 삭히는 나. 그렇게 꾹꾹 눌러 담다가 폭발할 때면 불쑥 꺼내보이는 강렬한 문장과 마음들... 제때에 잘 다룰 수 있는 어른이 되기를 꿈꾼다. 나이로는 이미 훌쩍, 어른이지만 마음의 나이는 따로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매사에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버릇을 가지거나, 무뎌지거나, 최선을 다해서 그때그때 유하게 표현해 보자. 아직은 그게 너무너무 어렵지만.


아, 그리고 한가지 더. 앞으로 자유롭게 그리고 죄책감없이 광장과 밀실을 오갈 것. 나는 그래도 되는, E와 I 사이에 머무르는 유형의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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