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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모 Feb 03. 2022

[에세이] 나의 침묵

당신의 비밀을 지켜 드릴게요


미용실에서 머리를 감고 있을 때였다. "친구들 비밀 이야기 많이 들으시죠?" 눈을 감고 있던 나는 아마도 눈을 번쩍 떴던가? "네??" 미용사의 말에 의하면 나에게서, 타인의 비밀을 들었을 때 입을 무겁게 해 비밀을 지키는 분위기가 난다고 한다. 그녀의 자세한 설명에 나는 잠시 당황했지만, "어떻게 아셨어요?"라고 대답했던 것 같다.


"이런 이야기까지 할 줄은 몰랐는데..." "이건 아무한테도 말해본 적 없는데..." "이상하게 자꾸 이야기하게 되네요." 내가 자주 듣는 말들이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일 때도 있고, 몇 번 얼굴을 익힌 아직은 낯선 타인일 때도 있고, 직장 동료일 때도 있다. 때로는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냐? 내가 감정의 쓰레기통인가?' 싶어서 억울한 마음이 들 정도로 내면 깊은 이야기를 털어놓는... 각양각색의 사람들.


그 중 한 사람의 설명은 이러했다. 내가 마치 심리상담가처럼, 치유의 기능이 있는 것 같다고. 무슨 이야기를 꺼내놓든지 가만히 듣다가 수긍해내는 날 보면, 자신의 오랜 치부, 자신의 오랜 비밀을 인정받고 치유받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그들 중 누군가는... 처음 만난 날 나에게 비밀을 털어놓아서인지, 그날을 끝으로 나와의 관계를 단절해버리는 사람도 있어 황당하기도 했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는 좋은 능력인 건가? 좀 헷갈리기도 하고, 나의 이런 면을 앞으로 어떻게 받아들일지 조금 고민이 되기도 한다. 어찌되었든 내가 할 수 있는 그들을 향한 예의는 '침묵'뿐이겠지만. 


아, 쓰다 보니 이유를 스스로 조금은 알겠다. 그러고 보니 나는 그들의 비밀을 누군가에게 전달한 적이 거의 없었다. (기억 못하는 사례도 있을지 몰라 '거의'라고 표현하자.) 그냥 그게 그 사람을 향한 예의이기도 하고... 그 순간 나에게만 털어놓은 그 진심을 떠벌리는 사람이고 싶지 않아서? 또는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서?인 것 같다. 


무튼, 나의 침묵을 눈치 채고 나에게 비밀을 털어놓는 사람들을 앞으로 어떻게 생각하고 대해야 하는 걸까? 사실 나에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아직 잘 모르겠다. 모든 것은 장단점이 있지만, 나를 믿는다고 생각해야 할까, 아니면 나를 함부로 대한다고 생각해야 할까... 


반대로 내가 누군가에게 속 깊은 이야기를 털어놓았을 때를 떠올리면, 나는 그 사람이 내 말을 '이해'해줄 수 있는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렇게 이야기하니까 좀 차갑게 느껴지긴 하다만... 내가 판단하기에, 내가 느낀 조금은 복합적이고 복잡한 이야기를 이 사람은 '공감'은 아니더라도 '이해'는 하겠지?... 라는 생각. 


뭐, 어찌되었든 간에 앞으로는 나에게 비밀을 털어놓는 사람들에게 물어봐야겠다. 나에게 비밀을 털어놓는 다양한 이유에 대해서. 그게 내가 가진 다양한 모습을 찾는 방법이 될 수도 있겠다 싶다. 그들이 들려주는 그 이유마저 나는 또 굳게 침묵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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