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에세이

[에세이] 나의 침묵

당신의 비밀을 지켜 드릴게요

by 좋아서 하는 작가


미용실에서 머리를 감고 있을 때였다. "친구들 비밀 이야기 많이 들으시죠?" 눈을 감고 있던 나는 아마도 눈을 번쩍 떴던가? "네??" 미용사의 말에 의하면 나에게서, 타인의 비밀을 들었을 때 입을 무겁게 해 비밀을 지키는 분위기가 난다고 한다. 그녀의 자세한 설명에 나는 잠시 당황했지만, "어떻게 아셨어요?"라고 대답했던 것 같다.


"이런 이야기까지 할 줄은 몰랐는데..." "이건 아무한테도 말해본 적 없는데..." "이상하게 자꾸 이야기하게 되네요." 내가 자주 듣는 말들이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일 때도 있고, 몇 번 얼굴을 익힌 아직은 낯선 타인일 때도 있고, 직장 동료일 때도 있다. 때로는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냐? 내가 감정의 쓰레기통인가?' 싶어서 억울한 마음이 들 정도로 내면 깊은 이야기를 털어놓는... 각양각색의 사람들.


그 중 한 사람의 설명은 이러했다. 내가 마치 심리상담가처럼, 치유의 기능이 있는 것 같다고. 무슨 이야기를 꺼내놓든지 가만히 듣다가 수긍해내는 날 보면, 자신의 오랜 치부, 자신의 오랜 비밀을 인정받고 치유받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그들 중 누군가는... 처음 만난 날 나에게 비밀을 털어놓아서인지, 그날을 끝으로 나와의 관계를 단절해버리는 사람도 있어 황당하기도 했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는 좋은 능력인 건가? 좀 헷갈리기도 하고, 나의 이런 면을 앞으로 어떻게 받아들일지 조금 고민이 되기도 한다. 어찌되었든 내가 할 수 있는 그들을 향한 예의는 '침묵'뿐이겠지만.


아, 쓰다 보니 이유를 스스로 조금은 알겠다. 그러고 보니 나는 그들의 비밀을 누군가에게 전달한 적이 거의 없었다. (기억 못하는 사례도 있을지 몰라 '거의'라고 표현하자.) 그냥 그게 그 사람을 향한 예의이기도 하고... 그 순간 나에게만 털어놓은 그 진심을 떠벌리는 사람이고 싶지 않아서? 또는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서?인 것 같다.


무튼, 나의 침묵을 눈치 채고 나에게 비밀을 털어놓는 사람들을 앞으로 어떻게 생각하고 대해야 하는 걸까? 사실 나에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아직 잘 모르겠다. 모든 것은 장단점이 있지만, 나를 믿는다고 생각해야 할까, 아니면 나를 함부로 대한다고 생각해야 할까...


반대로 내가 누군가에게 속 깊은 이야기를 털어놓았을 때를 떠올리면, 나는 그 사람이 내 말을 '이해'해줄 수 있는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렇게 이야기하니까 좀 차갑게 느껴지긴 하다만... 내가 판단하기에, 내가 느낀 조금은 복합적이고 복잡한 이야기를 이 사람은 '공감'은 아니더라도 '이해'는 하겠지?... 라는 생각.


뭐, 어찌되었든 간에 앞으로는 나에게 비밀을 털어놓는 사람들에게 물어봐야겠다. 나에게 비밀을 털어놓는 다양한 이유에 대해서. 그게 내가 가진 다양한 모습을 찾는 방법이 될 수도 있겠다 싶다. 그들이 들려주는 그 이유마저 나는 또 굳게 침묵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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