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엄마니까

나도 중생이다

“그래도 엄마니까.”
이 한마디가 나를 얼마나 심하게 채찍질해왔는지 모른다.
제대로 엄마와 선을 긋는 용기조차 허락하지 않았던 말.
지금 생각하면, 참 원망스러운 한마디다.


‘엄마’라고 하면
왠지 모르게 가슴이 뭉클하고 저려온다고들 한다.
그건 도대체 누가 만든 이미지일까.
왜 나는 그 이미지에 갇혀
끊임없는 죄책감 속에서 살아야 했을까.


어제 들은 법륜스님의 강의가 자꾸 머릿속을 맴돈다.

“인간은 중생, 보살, 부처 세 등급으로 나뉜다.
여자는 원래 중생이다.
하지만 똥오줌 못 가리는 아기를 돌볼 땐 부처가 되었다가,
아이가 자라면 다시 중생으로 돌아간다.”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엄마도 밥을 지을 땐 부처님이셨다가,
대부분은 다시 중생으로 돌아오신다.


오늘 아침,
엄마는 정성스럽게 밥상을 차려두셨다.
그럴 땐 정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이럴 때, 엄마는 분명 부처다.


하지만,
간병인 문제로 마음이 지쳐 예민해 있을 때,
그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내면
엄마는 남도 하지 않을 내 탓을 먼저 한다.

“힘들다”고 말하는 나에게
“이렇게 했어야지”라고 되돌아올 때면
나는 그 자리에서 무너진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내가 왜 무너졌는지를 설명해보려 하면,
엄마는 무섭게 대꾸한다.

“넌 예민해. 넌 특이해.
별것도 아닌 걸로 왜 그렇게 유난을 떨어?”

더 큰 상처가 덮쳐온다.


그렇게,
밥상을 차려둔 부처 엄마는
우렁각시처럼 사라지고,
내 곁엔 중생 엄마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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