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천국과 지옥

연기 수업을 듣다가

깨물어 주고 싶을 정도로 복실복실하고 통통한 묵직함


너의 수없이 돋아난 뾰족뾰족한 아픔을 보듬어

안아주겠다는 굳은 의지가 보이는

복실복실하고 부드럽게 덥힌 하얗고 노란 털들


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빵빵한 발가락들


든든함과 귀여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몽글몽글한 완벽한 쉐이프


내 인생 몇 안되는 감동적인 순간중에 하나였다.


연기수업과제인 동물 관찰을 위해 찾아간 시간

무언가를 오래 관찰하기도 처음이었지만,

맹수로만 알고 있던 표범의 발의 생김새를 '보았던' 그날

나는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느꼈다.


그때의 하얀 눈내림,

망연자실 바라보며 마냥 좋아했던 나

그 순간 하나하나를 연기로 펼치는 경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충만한 행복감이었다.


정신없이 나의 행복감에 취해 연기를 마치고

각자의 연기에 대해 feedbak해주는 시간

한사람의 표정이 유난히 어둡고 불쾌해보인다.


지난 수업때 처음 만나게 된 같은 반 학우

지난번 나를 보고 미인이라 극찬하며

자연스런 내면 연기를

끄집어 내는 송강호급 연기라 치켜세우며

나를 천국에 데려다 놨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이번 표범발 연기를 보고 쏟아내는 혹평은

지난번 호평만큼이나 강렬했다.

결국

"너의 연기는 오만하다" 라는 말로

제대로 나를 지옥에 떨어뜨려놨다.


천국의 짜릿함은 너무 짧았고

이어진 지옥의 불구덩이는 아직도 나를 화마에 집어넣고

통닭구이하듯이 돌리고 있는 중이다.


요즘 푹 빠진 책

'독이 되는 부모'에 나온

반응하지 말고 대응하라라는 말을 보며

천국과 지옥을 오갔던 그 상황에서

나는 대체 상대방에게 어떤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반추의 통닭구이에서 탈출하기 위해 나름

반응만하다 끝난 나에게 대응의 훈련을 위해 잠시 시나리오를 짜본다.


그때 그 사람: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은총의 연기는 관객에 대한 예의가 없군요.

은총: (화들짝 놀래며; 마음속으로만!!) 제 연기를 그렇게 보셨군요.

흥미있는 해석이네요.

그때 그 사람: 은총의 이번 연기는 오만했어요. 실망스럽습니다.

은총: 아.. 그렇게 느끼셨군요.

전 이번 연기에 진심을 다했고 저의 행복한 순간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었어요. 전 충분히 만족합니다.


결국 칭찬도, 비난도 어쩌면 지나가는 바람처럼 스쳐가는 것일지 모른다.

잡을 수 없는걸 움켜쥐고 잡고 있었던 나를 내려놓고,

이제는 구이용 통닭이 아닌 은총 자신으로 나의 시간을 채울까 한다.










작가의 이전글십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