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미러와 나

그 잊히기 힘든 굉음을 지나

잔뜩 지푸린 우거지상 같은 하늘.

침침하고 음습한 회색빛이 온 세상을 덮고 있었다.

이게 우박인가 싶게,
눈과 비와 우박이 섞여 우두두둑 쏟아진다.


쬐끄만한 나라인데도 서울의 포근한 날과는 달리

이곳은 빙판길까지 있구나.
강원도 가는 길은 생각보다 음산하고 다채로웠다.


언젠가 겪었던 스콜처럼,
반대편 차선에서 예고도 없이
바께스로 물을 퍼붓듯 차 전면에 가득하다.

심장이 순간적으로 떨어져 나갈 것처럼
빠르고 강하게 내려꽂혔다.


내 마음이 심난하면
이런 모습일까.
잠시 상상해본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숙소는
차들이 엉켜 아수라장이었다.
직원의 수신호를 따라
평소 대지 않는 자리에 차를 세웠다.


정차 후 문을 여는 순간,
평생 한 번도 듣지 않아도 될 것 같은 굉음이
오른쪽 귀를 날카롭게 찢고 지나갔다.

“콰아앙… 꽈과강…”


상대편 차를 본다.
순간적으로 모든 게 멀쩡해 보였다.

“다행이네요, 차가 멀쩡하네요.”

“멀쩡하긴 뭐가 멀쩡해요. 이거 보세요.”

그제야 보였다.


내가 문을 여는 순간, 빠르게 달려오던 차의
좌측 백미러가
대역죄인이 쥐구멍에 숨듯
묘하게 접혀있었다.


양쪽 차에 모두 사람이 여럿 타고 있었다.

차주는 서른 후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였고,
그의 아버지로 보이는 인자한 얼굴의 노인이
어떻게든 접힌 사이드미러를 펴보려 애쓰고 있었다.


집에는 가야 할 텐데.
마음이 자꾸만 무거워졌다.


서른 중반쯤 되어 보이는 여자가
팔짱을 낀 채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죄송해요, 저도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에휴… 새 차인데…”
“차에 애들이 타고 있어요.”
“그쪽이 잘못한 거 아닌가요?”
“이거 다 박살났네.”

비난은 모양만 바꿔가며
툭, 툭, 던져졌다.


숙소 앞은 사람과 차들로 뒤엉켜 있었다.

수신호를 하던 직원은 평소 세우지 않는 자리로 차를 안내했고,

아무 의심 없이 차를 멈췄다.

그리고 무심코 문을 열었다.

그 순간, 뒤에서 달려오던 차의 사이드미러가 접혔다.


보험회사 직원을 불렀고

숙소 담당 직원을 불러 컴플레인을 하기도 하고

이제 더는 내가 할 수 있는게 없어 보여

실내로 들어갔다.


이 사고는 대체 누구의 책임인가?

당장은 수신호를 아무렇게나 한 숙소 직원이 원망스러웠다.

그 상황을 상대방에게 말하고 싶은 마음에 다시 나갔다


억울한 마음에 말했다.

“저희도 직원 수신호 때문에 본의 아니게 사고가 난 것 같아요.”

“어쨌든 그쪽이 잘못하신 거잖아요.”

‘본의는 아니었다’는 말은
끝내 꺼내보지도 못한 채 부서졌다.


그 사이
사이드미러는 할아버지의 지극 정성으로 이미 펴졌고,
보험회사 직원은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그때 내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만 나를 비난하던 여자의 얼굴,
차분하게 사고를 꼼꼼하게 살피는 보험회사 직원의 모습,
이런 일로 보험사까지 불렀냐는 숙소 직원의 의아한 표정이
장면처럼 이어졌다.


모든 상황이 정리되고 나서야
조용히 생각해보았다.


무심코 문을 연 그 순간,
뒤에서 달려오던 차에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은
어쩌면 나였을지도 모른다.


사고가 난 이후에 벌어졌던

모든 상황들을 반추해보니

그날의 우중충한 날씨보다 더 우중충한 마음이 들었다.


돈으로 해결될 사이드미러는

금세 제자리를 찾을거다.


그러나 내 마음 한쪽은

아직도 접힌 채 남아있다.


그날의 회색 하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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