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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직유 May 28. 2021

펜션집 딸로 산다는 것

강원도 동해에 살아요. 미술관과 펜션을 운영합니다.

    6년 전, 부모님이 연고가 없는 낯선 강원도 땅으로 터를 옮기셨다. 남은 여생을 자연 속에서, 그림 그리며 여유롭게 살겠다는 아버지의 노후 계획이었다. 그렇게 부모님은 강원도 동해 무릉계곡으로 떠나셨다.


"동해? 동해 어디? 동해시? 동해시가 있어?"

"무릉계곡? 무릉도원 같은 느낌이다!"

여름의 무릉계곡

     서울에서 나고 자라 같은 자리만 빙빙 돌며 살아온 서울 촌년에게 동해는 너무 낯선 곳이었다. '동해시'가 있는 줄도 몰랐는데, 그곳에 살게 되다니 어안이 벙벙했다. 심지어는 차로 20분을 달려야 시내를 갈 수 있는 산골에서의 삶은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그림이었다.


    우리가 자리 잡은 터전은 동해 관광지 '무릉계곡' 안에 위치한 오래된 모텔이었다.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성한 곳이 없는 숲 속 건물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동해를 힐링예술의 도시로 만들겠는 원대한 포부를 품고, 리모델링 공사 대장정을 떠셨다.


   첫 해는 리모델링 공사로 일 년이 훌쩍 지나갔다. 일 년간 화가 아버지 손에는 붓 대신 드릴과 망치가 들렸다. 끝이 보이지 않는 대대적인 공사였다. 밤낮없이 계속되는 공사로 과로가 오는 건 아닐까 아버지 건강이 걱정되었지만, 우리는 모두 알고 있었다. 아버지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걸.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일 년간 나랑 오빠는 서울과 동해를 오가며 일을 도와드렸고, 부모님은 공사판 속 어수선한 방 한 칸에서 지내며 건물을 단장하셨다.


     아버지는 본인이 원하신 일이었기에 그러려니 했지만, 그 꿈에 발맞춰 따라주시는 어머니가 대단했다. 과연 나는 미래의 내 남편에게 저렇게 맞춰가며 살 수 있을까? 내가 계획하지 않은, 변수로 가득한 삶을 살아낼 수 있을까? 나에겐 자신 없는 삶이었지만, 어머니는 곁에서 묵묵히 해내셨다.



   어렵사리 공사를 마치고 오픈한 펜션 일은 정말 고됐다. 예약을 받고 응대하는 것부터, 객실을 관리하고, 몰아닥치는 손님들의 컴플레인에 대응하는 것까지 쉬운 일이 하나도 없었다. 손님들이 몰아닥치는 휴가철에 객실 서른 개의 펜션을 운영하는 일은 보통이 아니었다. 그것도 관련 경력이 전무한 화가와 전업주부, 대학생 두 명이서 감당해야 했으니 오합지졸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가장 큰 복병은 따로 있었다. 가족들 사이에서 생겨나는 갈등이 주범이었다. 푹푹 찌는 더위와 몰아닥치는 손님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일더미에 우리 가족은 점점 지쳐갔고,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 대신 누가누가 더 고생했는지 겨루고 원망하는 마음이 자리 잡았다. 제대로 마주 앉아 이야기할 여유가 없었기에, 마음속 응어리는 점점 커다랗게 부풀었고, 제때 풀리지 않은 감정들은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서로를 할퀴었다.


    '왜 내가 남들이 묵은 방을 청소해야 하는 거지?'

    '친구들은 여행 다니고, 놀러 다니는데 나는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이건 내가 선택한 일이 아닌데, 왜 이러고 살아야 해?'

    '왜 아빠는 펜션을 하겠다고 해서 우리 온 식구를 힘들게 하는 걸까?'


    하루 종일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고도 수고했다는 말이 아닌 '왜 이건 하지 않았냐'는 꾸지람을 들을 때면 다 던져놓고 서울로 올라가버리고만 싶었다. 당일 예약 취소 불가하다는 말에 폭언을 쏟아내며 신고하겠다는 손님, 예약 당일에 오지 않아 노쇼처리했더니 별점 테러하는 손님, 몰상식한 태도로 갑질 하는 손님을 마주할 때는 인생에 회의감까지 들었다. 왜 이러고 살아야 하나, 전생에 업보가 많은가 하는 생각들이 꼬리를 이었다.


    올해로 펜션을 운영한 지 6년 차에 접어들었다. 오빠랑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 초년생이 되어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는 부모님 두 분이 펜션을 운영해오셨다. 나랑 오빠는 주말에 내려가 일을 도왔고, 성수기에는 휴가를 내고 내려갔다. 남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을 떠날 때, 우린 파병 나가는 군인의 마음으로 본가에 내려갔다.

    

    누군가는 공기 좋은 산속에 집이 있어서 집 갈 때마다 여행하는 기분이겠다고 부러워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집에 가면 늘 일이 산더미처럼 기다리고 있었고, 호락호락하지 않은 상사 두 분이 계셨다. 이번 생은 일복이 터진 삶인가 보다, 언제쯤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을까 했다. 스스로의 인생을 가여워하며 불행감에 잔뜩 취해있었다.


    동해 무릉계곡에 터를 잡은 지 5년이 된 작년 여름, 나는 서울살이를 접고 본격적으로 동해살이를 시작했다. 밤낮없이 건물 보수와 그림 작업을 병행하던 아버지가 쓰러지셨기 때문이다.


21.05.26 무릉계곡의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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