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순이+개복치+뚝딱이 완전체의 연애
오늘의 글감은 '내가 좋아하고 또 하고 싶은데 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글을 쓸지 말지에 대해 정말 오래 고민했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하고 싶다고 느끼면서 하지 못하는 것에는 심리적인 걸림돌이 있기 때문이다. 열등감이라든지, 자격지심이라든지, 두려움 같은 것 말이다. 나에게는 '연애'가 그렇다. 그래서 오늘은 '내가 왜 연애를 못 하는지'에 대해 고찰해 보려 한다.
나는 정말 순도 99%의 마음으로 연애가 하고 싶다. 1%를 뺀 이유는 몹시 연애가 하고 싶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액션을 취하지 않기 때문이다. 진정성에 의심이 간다. 연애를 하고 싶어 하면서 왜 나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 걸까? 참 이상한 일이다.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서 멋진 일이 벌어지길 바란다. 그 이유에 대해 고민해보자.
꼭꼭 숨어라! 집순이 보일라
나의 연애를 방해하는 가장 큰 장애물은 내가 집순이라는 사실이다. 집 밖을 잘 나가질 않으니 누군가를 만날 수가 없다. 나를 세상에 드러내야 짝꿍을 만나던지, 짝꿍에게 발견되던지 할 텐데.. 어쩌자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타인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만, 친해지기 전까지는 마음을 잘 열지 못한다. 그래서 어느 정도 강제성이 있어야 타인과 알아갈 수 있는 편이었다. 대학생활 할때에는 어쩔 수 없이 함께 과제를 하면서, 직장생활 할 때에는 함께 일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하고 알아갔다. 하지만 동해에서 펜션을 하며 지내는 지금은 이성을 만나고 알아갈 만한 기회가 없을뿐더러, 첫인상에서 생긴 편견을 깨고, 좋은 점을 발견할만한 시간이 없다.
또 나는 혼자 보내는 시간을 너무 좋아한다. 좋아한다는 말로는 표현이 되지 않을 정도로 혼자하는 일들을 사랑한다. 요가, 독서, 글쓰기, 명상, 영화보기, 그림그리기 등 해야할 일들과 하고 싶은 일들을 살펴보면 대체로 혼자하는 것들이다. 혼자 보내는 시간을 좋아하고, 소중히 여기다 보니 자연스레 타인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내 주위 관계들은 서서히 소멸되었고, 나와 같은 성향의 집순이 친구들만 왕창 남았다. 그 와중에 연애가 하고 싶어졌다니 비극이다. 나와 성향이 잘 맞는 짝꿍은 그의 집에 박혀있을테니.
개복치's 미션임파서블 (*개복치 : 예민하고 쉽게 상처받는 유리멘탈)
나는 타인을 아주 많이 의식한다. 의식하고 싶지 않고, 무뎌지고 싶지만 바꾸려 노력해도 바꿀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십수년간 수없이 노력했지만, 단념하고 이런 나의 성격을 받아들였다. 외모지상주의에서 비롯된 외모 컴플렉스도 한몫을 한다. 타인이 나의 큰 코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꽉 끼는 치마를 입었는데 튀어나온 아랫배 어떡하지? 시스루 블라우스 너무 야한 거 아니야? 타인을 만나기도 전에 타인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상상하는 것만으로 이미 지친다. 실제로 만나면 오죽하겠나. 대화할 때 상대의 표정에 일일이 반응하고, 내뱉었던 말들을 도로 담을 수 없음에 땅을 친다. 나에게 친하지 않은 누군가를 만나는 일은 에너지 소모가 극심한 퀘스트다.
다행히 마음이 잘 맞는 사람을 만나서, 이런 나의 예민한 성격에 거슬리지 않았더라도, 그다음에 더 큰 관문이 있다. 연애할 때는 타인의 시선을 더 많이 의식하기 때문이다. 특히 같은 학교 친구나 직장 동료일 경우, 미션임파서블을 방불케 한다. 호감 가는 상대와 함께 산책 하다 동료를 만나서 주차된 차 뒤에 숨은 적도 있다. 그냥 산책하던 중이라고 말해도 될 텐데, 숨는 걸 들키는 바람에 소문만 무성해졌다. 다시 생각해도 수치스러울 따름이다. 알아가는 단계에서도 이렇게 감정 소모가 극심한데, 연애는 실로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감정 소모가 너무 심하다 보니 혼자 있는 쪽을 자꾸만 선택하게 되는 것 같다.
연애를 할 수 있는 조건이 있다면, 상대는 나와 아무런 접점이 없어서 내 지인들과 몰라야 하고, 타인을 많이 의식하는 나의 성격을 이해해줄 수 있어야 하며, 혹여나 밖에서 내가 아는 누군가를 마주쳤을 때 나와 함께 숨어주거나, 아니면 뚝딱거리는 나를 잘 케어해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나와 성향이 잘 맞는 사람이라면 뚝딱이2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만나기 어렵다. 비극2다.
뚝딱이의 비극 (*뚝딱이 : 긴장을 많이해 부자연스럽게 행동하는 사람)
연애가 어려운 또 하나의 이유는 나의 완벽주의 성향 때문이다. 타인에게 완벽하고 정돈된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데, 호감 가는 사람 앞에 서면 어김없이 뚝딱이가 되기때문에 그런 상황을 피하는 경향이 있다. 호감이 가는 상대와 잘되는 것보다, 나의 솔직한 모습을 감추는 게 더 중요한 것이다. 왠지 내 솔찍한 뚝딱이를 다 드러내면 세상이 멸망할 것만 같다. 결단을 내려야 한다. 연습에 연습을 더해 뚝딱이를 감추고 능숙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연기하던지, 능숙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이기 위해 연기하는 걸 관두고 나의 솔직한 뚝딱이를 보여주던지 말이다. 후자를 택해야 할 것이다. 전자로 연애한다면, 분명 ‘나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내가 연기한 가짜 나를 좋아하는 게 분명해...’하며 좌절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내가 생각해도 염병천병이다.
뚝딱이의 고백은 여기까지다. 애석하게도 글 한편으로 해결책까지 찾지는 못했지만, 원인을 알았으니 해결방법을 찾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다. 매번 외로움과 적적함, 또는 친구의 연애사를 들으며 부러움을 느낄때마다 '나도 연애하고싶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연애의 과정에서 파생되는 피곤함과 스트레스를 연상하고는 마음을 접는다. 이와 같은 반복의 고리를 끊어내고 무언가를 해야하는 시기가 온 듯 하다. 동해에서의 삶은 서울에서의 삶보다 덜 치열하고, 심적으로는 보다 더 여유로우니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