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고, 버림받고, 매달렸다.
치열한 서울살이를 접고 동해살이를 시작한 나에게 동해의 삶은 너무나도 무료했다. 관성에 따라, 원래의 삶이 정답에 가깝다고 생각했던 나는 무언가에 미치고 싶었고, 그렇게 나는 요가에 빠지게 되었다. 쉬는 법을 모르는 어른에게 주어진 여유는 끝없는 생각과 번뇌만 가져다줄 뿐이었기 때문이다.
명분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여유롭고 한가로운 동해 생활에서 유일한 낙은 먹는 것이었기에 7킬로 가까이 몸무게가 불었기 때문이다. 요가가 아니더라도 다이어트가 시급했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할 때에는 또래 집단 속에 있어서였는지 365일 다이어트 중이었는데, 또래가 없고 또 직장 생활을 하지 않는 동해의 나는 365일 벌크업 중이었다. 사실 지금도 여전히 벌크업 중이다. 근육량과 체지방량이 모두 함께 증가하니 벌크업이 2배다.
요가로 하루를 시작하고, 요가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나날을 보냈다. 근력이 붙을수록, 어려운 아사나에 성공할수록 더 욕심이 생겼고, 몸이 탄탄해지니 자신감도 커졌다. 자연스레 나는 요가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차리지 못한 채, 요가를 '잘'하기 위한 수련을 반복했다. 나의 정체성에 요가를 집어넣고, 요가가 없는 삶은 더 이상 내 삶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때 즈음, 몸이 고함을 질렀다. 집에서 혼자 유튜브를 보며 특정 아사나 수련을 했는데, 적적한 근육의 수축과 이완 없이 무작정 아사나를 따라 하다가 몸을 망가뜨린 것이다. 물론 의사 선생님은 나의 척추측만증과 골반경사가 아주 오래전부터 만들어진 거라고 했지만, 그 아사나로 인해 통증이 시작된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게 일 년이 넘게 요가를 쉬었다. 운동량이 많다가 급감하니 요가를 시작하기 전보다 몸이 더 무거워졌다. 근육이 빠진 자리를 지방이 빠르게 채웠다. 정신적, 심리적 혼란에 비하면 신체적인 변화는 그래도 감당할 만했다. 정처 없이 방황하던 20대의 끝자락에 겨우 무언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고 매달리던 차였는데, 뻥 차인 기분이었다. 공고히 만들고 있던 정체성의 뿌리가 흔들리면서 방황의 소용돌이 속으로 내던져졌다.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치료뿐이었기에, 도수치료, 주사치료, 신경파 치료, 재활운동 등 온갖 치료에 매진하면서 심리적인 방황을 오래 했다. 치료를 시작한 지 일 년쯤 지났을까? 일상생활에 무리가 없는 정도로 몸이 회복되자 나는 여러 요가 선생님들을 찾아다녔다. 다시 요가를 해도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만나는 이들 모두 요가를 해도 괜찮다고 말했다. 하지만 늘 수련을 하고 난 다음 날이면 몸이 고함을 질렀고 나는 또 후회와 자책에 빠졌다. 욕심 때문에 내 몸을 학대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요가 수련을 함께 하며 도반이 된 친구가 한 요가원을 알려주었다. 물리치료사 경력을 가진 요가 선생님이 운영하는 요가원이었다.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첫 수업을 들었고, 확신을 느꼈다. '내가 지금까지 한 요가 수련은 몸을 아프게 하는 수련이었구나. 정신의 수련은 되었을지 몰라도 내 몸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은 특정 아사나에서 정확히 어떤 근육에 힘이 들어가야 하고, 또 어떤 근육은 이완되어야 하는지 알려주셨고, 그 아사나를 통해 어떤 근력이 길러지는지, 그 근력이 부족하면 어떤 증상이 있는지까지 상세하게 설명해 주셨다.
오늘 다섯 번째 수련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나의 통증을 알아봐 주는 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한데, 더 나은 몸을 만드는 것까지 도와주고 있다. 감사함으로 충만해지는 밤이다.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적어보자면, 다섯 번의 수련 동안 배운 것은 아래와 같다.
- 나의 팔자걸음은 내전근이 약하고 외전근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 나는 척추를 과신전하는 버릇이 있다.
- 척추 기립근이 많이 타이트하다.
- 림프절이 많이 뭉쳐있어 혈액순환이 잘 안 된다.
- 명치 뒤 등이 많이 뭉쳐있어서 소화가 잘 안 된다.
고작 다섯 번의 수업 동안 나는 내 몸을 입만큼이나 많이 배웠다. 30년 동안 모르고 살았는데, 5일 만에 말이다. 내가 다친 것도 어찌 보면 내 몸을 알아가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그 과정이 없었다면 나에게는 멈춤이라는 것이 없었을 것이고, 동해에서도 서울의 삶을 따라 쉬지 않고 달렸을 게 분명하다. 요가로 인해 나는 비로소 쉼을 얻었고, 지금부터 천천히 내 몸을 공부해 보려 한다. 삶에 영원한 멈춤은 없다. 오직 쉼이 있을 뿐이다. 적절하게 쉬어간다면 80살이 되어서도 요가를 할 수 있겠지.
오늘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요가원에서 하루 한 시간 요가하는 것만으로는 몸을 바꿀 수가 없다고. 생활 습관을 바꾸고, 평상시에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그래서 나는 집에서 혼자 내전근을 키우려면 어떤 아사나를 해야 하는지 여쭤보았다. 선생님은 한 동작으로 특정 근육을 키운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요가 블록을 활용한 체어 포즈를 알려주셨다.
벽에 등을 대고 다리를 직각으로 만든 다음, 다리 사이에 블록을 끼워 넣는다. 블록은 세로로 긴 직사각형 면이 앞으로 가게 끼운다. 바닥에는 닿지 않고, 복사뼈가 닿는 높이로 세팅한다. 포인트는 두 가지다. 무릎이 아닌 복사뼈를 모으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과 벽과 등 사이에 공간이 생기지 않도록 꼬리뼈를 말아 아래 복부에 힘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두 가지 포인트를 모두 신경 썼을 때, 허벅지 사이 내전근이 단단해지는 걸 확인할 수 있다. 한 세트에 다섯 호흡을 유지하고 한 호흡 쉰다. 지금은 3세트만 해도 허벅지가 불타는 듯하다. 매일 꾸준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걸음걸이도 고쳐지겠지.
앞으로 나의 요가 일지를 꾸준히 기록해보려 한다. 잊어버렸을 때 다시 꺼내어 볼 수 있는 복습노트의 용도이자, 언젠가 요가를 먼저 시작한 선배로서 내가 배운 것을 알려주는 날이 올 거라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