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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직유 May 14. 2022

나의 영혼을 살찌우는 사치

작지만 확실한 사치

창조성을 갈망하면서도 내면의 굶주린 배를 채워주지 않고있는, 그래서 더욱더 궁핍해지는 사람들에게 작지만 확실한 사치는 큰 효과가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확실한' 사치여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은 팽창 속에서, 충분한 공급에 대한 확신 속에서 탄생하기 때문에 우리를 비옥하게 하는 풍부한 감성을 한껏 불어넣어 주어야 한다.  

- 아티스트웨이 p.197에서 - 


내가 일상을 영위할 수 있도록 나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행복을 채워주는 것들은 무엇일까? 나의 영혼을 살찌우는 사치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어두운 방, 침대 옆 협탁에 놓인 스탠드가 은은하게 노란빛을 내고 있다. 스탠드 옆에는 커다란 아로마 오일과 마사지 분홍색 괄사, 라벤더 스프레이가 놓여있다. 그녀는 꽃무늬가 그려진 빈티지한 이불 속으로 한발 한발 스르륵 들어갔다. 전기장판의 따뜻함이 몸에 전율을 일으켰다. 이불 속은 따끈따끈한데다 피부에 느껴지는 이불의 감촉이 부드러워 금세 몸이 노곤해졌다. 이불에서는 라벤더 향이 은은하게 베어 나왔고, 그녀는 향기를 맡으며 옅게 미소 지었다. '스탠드 불을 꺼야하는데'라고 생각하던 그녀는 따스한 노란 빛을 받으며 그렇게 스르르 잠이 들었다.


나는 향기에 민감하다. 아마도 코가 나의 영혼과 연결되는 가장 예민한 통로가 아닐까 생각한다. 잔뜩 흥분한 상태였다가도 좋은 향기를 맡으면 금세 차분해진다. 고기 냄새, 피자 냄새, 라면 냄새도 좋아하지만, 음식 냄새는 나를 더 흥분시키기때문에, 마음에 진정을 가져다주는 향을 더 좋아한다. 책상에는 편백나무 디퓨저와 은은하게 향이 베어나오는 녹나무 염주가 놓여있다. 인위적인 향은 선호하지 않아서 향수는 없다. 대신 아로마 스프레이와 롤온, 오일이 있다. 칙칙 자기 전, 침대에 두 번만 뿌려주어도 보다 편안하고 향긋하게 잠을 청할 수 있다. 유난히 하루가 길게 느껴진 날, 마음이 우중충한 날, 정신이 오락가락 산만한 날 효과가 좋다. 내성이 생겨서 뿌리는 양이 점점 늘어나는 것 같지만.


앞으로 그런 향기들을 더 많이 찾았으면 좋겠다. 기쁠 때 맡으면 기분이 더 좋아지는 향기라든지, 의지가 부족해질 때 맡으면 심지가 굳어지는 향기, 짜증이 가라앉는 향기, 사랑이 샘솟는 향기 같은 것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감정은 극대화시키고, 좋아하지 않는 감정은 잘 다스릴 수 있는 그런 향기 컬렉션을 모으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향기를 위한 사치를 계속해야 할 것 같다.




햇살이 따뜻한 봄날, 그녀는 운전대를 잡고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 차량 스피커에서는 리듬감 있는 팝송이 흘러나오고 있다. 몸을 들썩들썩 움직이며 흥얼거리던 그녀는 줄줄이 선 차들 뒤에 섰다. 스타벅스 드라이브 스루였다. 앞서 주문하는 차들을 바라보며 들떠있던 그녀는 자신의 차례가 되자 숨도 쉬지 않고 "쿨라임 피지오 그란데사이즈 하나요"라고 말한다. 초보 운전자들에게는 난코스인 좁은 길목도 그녀에게는 익숙하다. 핸들을 부드럽게 돌려 코너를 지나 음료 픽업하는 곳으로 간다. 음료를 받은 그녀는 열린 창문 사이로 햇살과 바람을 맞으며 음료를 한 모금 빨아들인다. "아 이 맛이지~!" 그녀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감탄을 연발한다.


스타벅스의 '쿨라임 피지오'와 삼척 카페얼에서 마시는 '얼라떼'는 내 영혼을 살찌운다. 물론 뱃살도 찌우지만 말이다. 쿨라임 피지오는 이제 내 주위에서는 꽤 유명하다. 늘 내가 주변 친구들에게 ‘나의 행복 치트키’라고 소개했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산골 동네에서는 스타벅스까지 차로 30분이 넘게 걸리기 때문에, 쿨라임 피지오는 시내에 볼일이 있을 때만 먹을 수 있는 귀한 음료다. 아마도 그래서 더 맛있고 소중하게 느껴졌을테다. 쿨라임피지오를 마시며 운전하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단, 누군가와 함께는 안된다. 혼자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흥얼거리며 마시는 쿨라임피지오가 정석이다. 한 모금 들이키는 순간 근심걱정이 녹아내리고, 지금 이 순간 이 우주에 나와 쿨라임피지오 둘만 있는 기분이 든다. 나의 행복을 가장 손쉽게 챙길 수 있는 치트키 같은 친구다.  


음료에 들어간 라임과 탄산의 청량한 맛이 나를 흥분되게 만든다. 음료를 마시고 나면 뭔가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는데, 알고 보니 카페인이 60mg이나 들어가 있었다. 실제로 각성효과가 있었던것이다. 이 쿨라임 피지오도 행복 치트키로 일 년 넘게 애용했더니 유효기간이 다 되가나보다. 전에는 스타벅스 간판만 봐도 떨리던 가슴이 이제는 시큰둥해졌기 때문이다. 요즘 부상는 새로운 치트키는 삼척 카페얼의 '얼라떼'이다. 이 친구도 한 모금 들이키면 "아 이 맛이지"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쿨라임 피지오와 얼라떼 모두 당이 높은 음료인 거로 보아, 나의 행복 치트키는 어쩌면 '당'일지도 모르겠다.



햇살이 내리쬐는 따스한 오전, 그녀는 행복한 표정으로 펜션 건물 옆 바베큐장 벤치에 앉아있다. 그녀의 옆에는 세 마리의 강아지들이 있는데, 실컷 놀다가 지쳤는지 각자 자기 자리를 잡고 앉아 휴식하고 있다. 한 마리는 그녀의 엉덩이 옆에 나란히 앉아있고, 한 마리는 그녀의 발을 엉덩이로 깔고 앉아있으며, 또 한 마리는 그늘진 곳에 자리 잡고 드러누워 있다. 그녀는 강아지들을 한 마리씩 훑어보고는 미소를 짓는다. 몸을 뒤로 기대 테이블에 양팔을 대고, 고개를 젖혀 하늘을 바라본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 벚나무 나뭇잎들이 레이어드 되어있다. 살랑이는 바람결에 몸을 맡기고 흔들리는 나뭇잎을 바라보며 그녀는 눈을 감고 미소를 짓는다. 


우리 집에는 강아지 세 마리가 있다. 몸집은 크지만 가장 애살스러운 풍산개 송이와 소아마비로 뒷다리를 절지만 가장 활발하게 뛰어다니는 산이, 제일 작고 하얘서 아버지의 총애를 받는 새침데기 월이가 우리 식구들이다. 같은 성별이어서 그런지 풍산개 송이가 깐족거리는 월이 목덜미를 콱 물어버리는 바람에 (무는 시늉만 해서 다치지는 않았다) 위에 쓴 글처럼 나 혼자서 저 셋과 함께 노는 일은 거의 없다. 다 같이 놀기 위해서는 아빠를 대동해야 한다. 


나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느끼게 해주는 아이들이야말로 나의 영혼을 살찌우는 가장 확실한 존재들이다. 아이들과 산책을 하면 늘 마음이 충만해진다. 내가 누군가에게 이토록 절대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하지만, 나의 존재감을 느끼고, 마음이 감사함으로 가득 차는 경험을 하곤 한다. 나는 환상적인 자연환경 속에 살면서도, 일에 치여 오늘 날씨가 어떤지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곤 한다. 참 안타깝고 어리석은 일이다. 아이들은 그런 나를 밖으로 끄집어내 주고 주위를 둘러보게 해준다. 물론 아이들 목줄을 잡고, 똥을 치우고, 사람들한테 돌진하는 아이들을 케어하다 보면 주변 경치보다는 아이들에게 더 오래 시선이 머물긴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주 아티스트 데이트로 아이들 없이 홀로 산책해보려 한다. 




내 영혼을 살찌우는 것들은 많을수록 좋겠다. 이번에는 세 가지를 찾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언젠가는 나의 기분에 따라, 나의 상황에 따라 자판기 누르듯 행복을 만들고 싶다. 일상에서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것들이면 더 좋겠다. 오늘부터는 나의 또 다른 사치를 찾기 위해 나의 주위를 더 주의 깊게 둘러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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