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살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나에게는 내가 노인이 되었을 때, 이런 모습이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인간상이 있다. 바로 나의 외할머니다. 할머니는 신심이 강한 분이셔서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보아온 할머니의 모습 중 8할은 기도하는 모습이었다. 할머니는 늘 기도를 하셨고, 어린 나와 오빠를 부처님이라며 존칭 하셨다. 우리 각자 안에 부처님이 있다고 믿으셨기에 단 한 번도 함부로 대하지 않으셨다. 할머니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감사합니다", "큰 일꾼 되세요"였는데, 과연 내가 큰 일꾼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할머니의 감사와 사랑을 듬뿍 받아 그 덕에 건강하게 잘 자란 건 확실하다.
할머니는 현재 백세 가량 되셨고, 꽤 오랜 세월 치매를 앓고 계신다. 치매 초기에는 내가 누군지 설명해드리면 알아보는 정도였지만 이젠 그마저도 어려운 상황이다. 그동안 내가 매체들을 통해서 접한 치매노인의 모습은 꽤나 슬프고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모습이었지만 우리 할머니의 모습은 좀 다르다. 신심이 강한 할머니는 평생을 기도하고, 감사하며 사셨다. 머리맡에 원불교 교전을 두고,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한 모두 시간 동안 성실히 기도하고 공부하셨다. 오랜 세월 몸에 베인 습관은 치매가 오고 나서도 여전했다. 치매가 진행된 이후에도 할머니는 여전히 눈을 뜨면 공부를 하신다. 같은 구절을 여러 번 읽으시기는 하지만 끊임없이 중얼거리며 책을 읽으신다. 상대가 누군지 전혀 알아보지 못하더라도 "명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하고 물으며 말끝마다 "감사합니다"를 붙이신다. 아주 점잖은 치매 증상을 가지고 계신다.
할머니는 치매로 인해 아이가 되어서도 여전히 세상을 감사하고, 아름답고, 배울게 많은 곳으로 바라보고 계신다. 나도 그런 노인이 되고 싶다. 내가 의식이 없이 무의식으로만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나와 주변인들에게 파괴와 상처가 아닌 감사와 행복을 가져다주는 삶을 살고 싶다.
내가 할머니의 나이가 된다면,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에게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유나야, 너 그거 아니? 너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존재 자체에서 빛이 나는 그런 사람이란다."
"온 마음을 다해서 감사하렴. 온몸이 부서져라 감사하고 또 감사하렴. 그럼 온 우주가 널 도울 거란다."
"마음은 아낄수록 작아지고, 나눌수록 커지는 거란다.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해보렴. 그럼 너의 삶이 사랑으로 물들게 될 거야."
"우리들의 삶에 마침표는 없어, 우리는 모두 어떠한 과정 중에 있는 거야. 그러니 완성된 모습을 만드려고 애쓸 필요가 없단다. 그저 지치면 쉬어가고, 기운이 나면 다시 나아가는 거야."
"고통도 삶의 일부란다. 행복과 기쁨만을 삶으로 여긴다면, 고통과 슬픔은 너무 서럽지 않겠니? 네가 너의 좋은 모습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사랑하듯 고통과 슬픔도 그렇게 받아들여주렴. 가엽잖니."
여든의 나는 아마도 지금의 나를 꼬옥 껴안아주고 싶을 것이다. 지금의 나 또한 그렇다. 여든이 된 노인의 나에게, 지혜롭고 단단하며 초연한 모습의 할머니에게 포옥 안기고 싶다. 백발의 그녀는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으며, 바른 자세로 꼿꼿이 서있을 것이다. 분명 여든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 키가 줄어서 더 자그마할테니 자리에 앉아있는 채로, 서있는 그녀에게 머리를 기대어 그녀의 가슴팍에 포옥 안기고 싶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고민들이 사소하게 느껴질 것이며, 마음이 한없이 평온해지는 것을 느낄 것이다. 세상 그 어떤 이보다도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위하는 존재는 바로 여든 살의 나일 테니 말이다. 그녀는 나의 어깨를 그러쥐고 토닥일 것이다. 부드럽지만 단단한 손끝을 가진 그녀는, 손끝에 기운을 담아 나를 위로해줄 것이다. 그러고 그녀는 나에게 말을 건넬 것이다.
"유나야, 우리는 운이 아주 좋아. 키가 작으니 세상은 더 쉽게 우러러볼 수 있고, 땅을 향해서는 더 빠르게 머리를 조아릴 수 있지. 늘 감사하렴. 발을 딛고 있는 땅에, 우리를 감싸고 있는 하늘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여든의 노인을 올려다볼 것이다. 그러고서는 속으로 감사하다고 말할 것이다. 그녀를 만날 수 있었음에, 그녀를 만나 마음 속 원망과 불만을 지우고 감사함을 들여놓을 수 있음에 말이다. 마음의 텃밭을 아무렇게나 내버려 두어 황량한 모습이었는데, 오늘로써 그 텃밭에 새싹 하나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감사를 먹고 자라나는 새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