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발 더 나아가서 생각하고, 두발 뒤로 물러나서 생각합니다. 현재에 있지 못해서 고통스럽고, 내가 사라지는 느낌이 들 때도 있지만, 그래도 감사합니다. 나는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은 시간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니까요.
그냥 그런대로 살아도 괜찮습니다. 오늘은 미래에 더 오래 머물러서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상상하고, 걱정하느라 불안을 많이 느꼈더래도 괜찮습니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먼저 생각했기에 혹 현실에서 그런 일이 생긴다면 미리 대처할 수 있을 테고, 그 일이 정말 큰 일이었다면 화를 피할 수 있을 테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내일은 오늘보다 어리석은 실수를 하지 않을 테니 참 감사한 일입니다.
과거에 너무 오랜 시간 머물러서 자책하고 후회하는 마음에 시달렸대도 괜찮습니다. 과거의 실수를 다시 하지 않기 위함이니 얼마나 바람직합니까? 역지사지의 태도가 바로 이것 아니겠습니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의 역사를 잊은 사람에게도 역시나 미래는 없습니다. 오늘은 나의 역사를 돌아보는 날이었으니, 역사를 공부한 것입니다.
그럼 현재에 오래 머무른 날은 어떨까요? 현재에 오래 머물렀다는 건 그만큼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는 뜻일 테니 만끽하면 됩니다. 그간 역사공부를 열심히 하고, 미래의 준비를 많이 한 보상입니다.
이러나저러나 다 괜찮습니다. 뿌리가 살아있으니 그만입니다. 생각이 많은 채로 살건, 없는 채로 살건 괜찮습니다.
마음이 사무치게 외롭고 고독하거들랑 자연을 살펴봅시다. 요즘처럼 추운 겨울에는 더 좋습니다. 파사삭 말라비틀어진 잎사귀를 간신히 매달고 있는 나무도 살아있습니다. 손으로 만져보면 피부는 까슬까슬 거칠고, 딱딱하고, 군데군데 생채기도 났지만 그 안에 생명력이 느껴집니다. 뿌리만 땅에 잘 내리고 있으면 그만입니다. 아무리 날씨가 춥고, 가물고, 바람이 거세도 뿌리만 잘 내리고 있으면 그만입니다. 우리도 살아있으니 그만입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도 지구에,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생명이 붙어있으니, 뿌리가 살아있으니 그만입니다.
혹시 밖에 나갈 힘이 없어서 자연을 마주할 수 없대도 괜찮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무엇이든 보세요. 제 눈앞에는 대리석 기둥과 스탠드 조명, 생수병이 보입니다. 대리석은 단단하면서 차갑고, 맨들맨들하고, 절단면은 거칠기도, 보송보송하기도 합니다. 노오란 빛을 뿜어내는 전등은 따듯한 느낌을 줍니다. 전등갓에는 먼지가 조금 내려앉아있고, 쇠로 된 기둥은 대리석도 이길 것처럼 아주 냉정한 느낌입니다. 옆에 놓인 생수병은 전등이 뿜어내는 빛을 받아 여러 갈래로 반사시킵니다. 몸이 투명하니 빛과 싸우지 않고, 속을 내어주는 모양입니다. 대리석도, 스탠드도, 물병도 제각기 자기 자리에 있습니다. 당신도 그렇습니다. 당신도 그냥 그 자리에 있습니다. 누워있던, 앉아있던, 서있던 상관없습니다. 사라지지 않고 그 자리에 있으면 그만입니다.
생각이 많은 내가 이해가 되지 않고, 어떨 때에는 피곤하고, 짜증스럽다면 내가 인디언이 된 상상을 해봅시다.
나는 인디언 '생각이 많아 잠못이루네'입니다. 우리 부족 사람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찾을 수 없는 문제를 나에게 가져옵니다. 나에게는 아주 쉬운 일이기 때문이죠. 그저 이야기를 듣고, 생각나는 대로 말해주면 그만입니다. 이것은 신이 주신 나의 특별한 재능입니다. 나는 신에게 감사합니다.
생각이 많은 건 참 감사한 일입니다. 남들보다 세상을 더 꼼꼼히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지요. 남들보다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당신을 스쳐 지나간 사람들을 더 오래 붙잡아 대화하고, 한 순간 일어난 일들을 더 오래 곱씹으니, 당신은 정이 아주 많은 사람일 게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