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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직유 Apr 28. 2021

오지라퍼로 살아간다는 것

나의 강점, 장점, 재능은 무엇인가?

  내가 가진 장점은 뭘까 한참동안 고민하다보니, 내 장점과 강점, 재능을 한 번에 아우를 수 있는 단어가 떠올랐다. 바로 '오지랖'이다. '오지랖'이라는 단어에 부정적인 뉘앙스가 어려있지만, 바라보는 관점을 조금만 달리하면 아주 요긴한 장점이 되어준다.


  나는 타고난 오지라퍼다. 기억이 시작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난 나보다 어린아이를 챙기고, 돌보는 걸 좋아했다. 문제는 제 앞가림도 잘 못 하면서 남을 도와주었다는 점인데, 어쩌겠는가? 그게 바로 오지라퍼의 숙명인 것을. 초등학교 생활기록부에 '자기 일을 마치지 않고 다른 아이들을 도와줌'이라고 쓰일 정도니, 나는 떡잎부터 태가 난 오지라퍼였던 것이다. 특히 소외된 사람과 소심한 사람한테 오지랖이 두 배, 세 배 작용했는데, 이는 아마도 지난날 소외당했던 경험과 내 소심함에 대한 애정 때문이지 싶다. 나의 오지랖이 이 자리에 있기까지는 세 친구들의 도움이 컸는데, 그 친구들을 하나씩 소개해볼까 한다.


  첫 번째로 소개할 녀석은 '책임감'이다. 책임감은 내가 맡은 일을 끝까지 마무리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평판을 얻도록 도와준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내 삶을 무진장 피곤하게 만드는 주범이다. 책임감 버프를 받은 오지라퍼의 하루는 대강 이렇다. 회사에서 맡은 일도 잘 마무리해야 하고, 새로 들어온 후임도 챙겨줘야하고, 업무과중으로 힘들어하는 동료도 챙겨줘야하고, 퇴근 후에는 남자친구 때문에 맘고생 하는 친구 고민 상담도 들어줘야 하고, 타지에 계신 부모님께 안부 전화도 해야 한다. 부모님 뿐인가? 할아버지가 요양병원에 들어가시는 바람에 시골집에 혼자 남은 할머니께도 안부 전화를 드려야 하고, 상사와의 불화로 힘들어하는 룸메이트 하소연도 들어줘야 한다. 누군가 버스에서 미처 내리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한다면, 기사 아저씨한테 빠르게 "문 열어주세요!!"를 외쳐야 직성이 풀리는 몹시 피곤한 삶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피곤한 선택들을 후회하지 않는다. 나의 책임감은 동료에게 힘든 시기를 이겨낼 용기를, 홀로 계신 할머니에겐 미소를, 버스에서 내린 사람에겐 세상의 훈훈함을 안겨 줄 것이기 때문이다.  


 오지랖의 두 번째 친구 '공감 능력'. 어린 시절부터 난 친구가 울면 따라 울고, 웃으면 따라 웃었다. 친구와 콩 한 쪽 나눠 먹는 대신, 웃음과 눈물로 빗어낸 엉덩이 털을 나눠 가지는 정 많은 아이가 바로 나였다. 친구의 상황을 머릿속에 그리며 친구 일을 내 일처럼 느끼고, 반응했다. 공감 능력은 '역지사지'의 능력이기도 해서 관계 갈등을 해결하는 데에 큰 도움을 주었는데, 내가 직면한 문제가 아니더라도,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듣고 상대가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상상함으로써 대부분의 오해를 풀 수 있던 것 같다. 그저 들어주고 공감해주었을 뿐인데, 친구들과 동료들은 나를 '고민 상담 맛집'이라 부르며 고민이 생길 때마다 찾아주었다. 참 고마운 일이다. 공감 능력은 광고 업무에서도 요긴하게 쓰였는데, 특정 타겟 소비자들의 삶을 조사하고, 깊이 공감함으로써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이해가 가지 않는 상사와 동료를 이해하는데에도, 팀원 간에 큰 마찰 없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이대로 입소문이 잘 난다면 언젠가 동네 맛집에서 전국구 맛집으로 레벨업 할 수 있지 않을까?


  세 번째 친구는 바로 '통찰력'인데, 통찰력은 조금 거창하고 '눈치'가 적당한 것 같다. 나는 타인의 비언어적 표현을 보고 감정을 알아차리는 눈치의 달인이다. 이 능력은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기분파 어머니의 조기교육 덕일 수도 있고, 학창시절 사이가 좋지 않았던 친구들과 지낸 경험 덕일 수도 있겠다. 이 능력은 사회생활에서 빛을 발했는데, 상사의 기분을 빠르게 파악하고 처신함으로써 위기를 피하고 기회를 잡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부하직원의 작은 실수에도 크게 화를 내고, 부하직원들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피해 의식을 지닌 부장님이 계셨다. 동료들은 그녀와 대면하는 걸 어려워하고, 힘들어했지만 나는 크게 힘들지 않았다. 빠른 눈치로 그녀가 원하는 답들을 찾아 건네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쉴 새 없이 자랑하는 그녀의 능력을 인정하고,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요'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간단한 방법이었다. 그저 그녀가 이리저리 돌리고 꼬아서 요구하는 바를 채워주면, 그녀는 금세 성난 치와와에서 순한 리트리버로 변신했다.


 개인주의 사회로 변해가는 주위 모습을 보면 왠지 씁쓸하다. 나 같은 오지라퍼가 개인의 영역을 침범하는 불청객이 되어 설 자리를 점점 잃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합법적으로 오지랖을 이어나갈 방법을 찾았다. 상담사가 되어 사람들의 말을 듣고, 그들의 원하는 바를 대신 알아 차려주고, 그들의 감정에 공감해주고,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책임지고 안내하는 것. 그게 나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면서, 세상과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 타협책이다. 세상 그 누구도,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말자. 오지랖을 타고 난 이상, 관심이 부담스러운 누군가에겐 미움받고, 관심이 필요한 누군가에겐 도움을 줄 운명 또한 타고난 것이다. 미움받지 않으려 애쓰기보다는, 도움이 필요한 이를 놓치지 않도록 더 주의깊게 주변을 살피고, 선한 오지랖을 펼쳐보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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