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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직유 May 08. 2021

동해의 시간은 느리게 흘러간다

동해 시차 적응기

치열하고 정신없던 스물여덟 여름, 아버지가 쓰러지셨다. 아버지 병간호를 위해 고단했던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강원도 동해 본가로 내려왔다.


    반년 동안은 아버지의 병간호에 전력을 쏟았다.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던 삶에서 내가 쏙 빠졌지만, 이상함을 느낄 새도 없이 바빴고, 그저 아버지가 살아계심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반년이 지난 후부터 조금씩 공허해지기 시작했다. '나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 '나 지금 이러고 있어도 되나?' 함께 일했던 동료들과는 접점이 사라지니 연락이 뜸해졌고,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과도 점점 멀어졌다. 여전히 바쁘게 지내고 있는 친구들과 연락하고 나면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 커졌고, 괜스레 내 처지가 가여워져 자기 연민에 빠졌다. 외딴섬에 떨어진 기분이었다.


     서울살이는 치열했고, 정신없이 바빴다. 침대에 누워 유튜브 볼 여유는 있지만, 나를 돌아볼 마음의 여유는 없는 너덜너덜 지치고 재미없는 삶이었다. 회사와 집을 오가며 단조롭게 사는 나를 보고 누군가는 인생 좀 즐기며 살라고 하고, 도대체 무슨 재미로 사냐 물었지만, 그냥 어쩌다 보니 그렇게 살게 되었다고 말할 수밖에. 그런 나에게 동해살이는 휴식 같기도, 유배 같기도 했다. 출퇴근 시간 지옥철에서 붐비는 사람들 사이에 낑겼던 생각을 하면, 사람 없고 한적한 동해는 천국이었고, 마음 통하는 친구 하나 없어 외로움에 몸부림칠 때면 동해 산골은 유배지였다. 불안감을 동력 삼아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바쁘게 살았던 나에겐, 해야 할 것 없이 멍하니 시간을 흘려보내는 동해의 삶이 낯설었다. 느리게 흘러가는 동해의 시간에 적응하기엔 내가 살아온 세상과의 시차가 너무 컸다.


    우리 집은 빌딩 숲이 아닌 진짜 숲 속에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귓가에 새소리가 들리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들이 파도소리를 낸다. 서울에 있는 친구들은 내가 안빈낙도의 삶을 산다며 부러워했지만, 시차 부적응으로 두 가지 시간대에 공존하는 삶은 피곤할 따름이었다. 돈도 써 본 사람이 쓸 줄 아는 것처럼 시간도, 여유도 누려본 사람이 제대로 누리나 보다.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 같은 여유로움 속에 있는 기분이었다. 망망대해 한복판에서 방향을 잃고 헤매듯 시간의 바다 위에서 표류하고 있는 듯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나는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남들은 다 차곡차곡 커리어를 쌓고 있는데, 나 이러고 있어도 되나?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달려가야 하는 게 아닐까? 나 지금 도태되고 있나?

    

    나에 대해 명료하게 설명할 수 없다는 게 견딜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나 스스로에게 지금 흘려보내고 있는 이 시간의 당위성을 납득시켜야만 했다. 그렇게 평소 관심 있었던 심리학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30년 가까이 함께 살았지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나'를 이해하기 위해서. 무언가를 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만족할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해서. 대책 없이 끌리는 대로 쫓아가다 보니, 어느새 심리학 학점은행제 강의를 듣고 있었다.


    나는 아직도 시차에 적응하지 못했다. 여유를 즐기지도, 공부에 집중하지도, 어느 것 하나 온전히 해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내가 내 상태를 알고 있다는 점이다. 상태를 알고 관심을 가지다 보면, 언젠가 시차에 적응한 나를 마주하게 되지 않을까? 5월 22일이면 내가 동해에 온 지 일 년이 된다. 2주 뒤 오늘은 조금 더 동해스러울까? 미래를 떠올리며 불안해하고, 잘하려 애쓰기보다는, 지금 내 곁에 흐르는 시간 속에 온전히 깨어있고 싶다.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동해의 시간에 가까워져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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