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명 : 산골에서 농사를 경험하시오.
연상(남), 연하(여) 커플인 우리는 결혼 17년 차에, 다시 인생의 지도를 펼쳐야 했다.
누가 그랬다. 인생은 정말 마흔부터 시작된다고.
나는 마흔을 심하게 앓았다. 직장을 내려놓고, 나를 다시 배우는 시간에 집중했다. 그렇게 작은 파도들을 넘고 있었다. 남편도 비슷했다. 오래 걸어온 군인의 길이 더는 자신의 길이 아니라는 걸, 조용히 알아차렸다.
우리는 거창한 결정을 한 게 아니었다.
하루하루 작은 파도를 넘었다. 불안이라는 물결이 오면 서로를 붙잡고, 잠잠해지면 다시 숨을 골랐다.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었다. 우리에게는 ‘다른 시작’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변화가 필요했다.
새로움이 필요했다.
그래서 귀촌을 선택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정말로.
복잡함보다는 단순함이, 바쁨보다는 여유로움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산골로 터전을 옮겼다.
그리고 그곳에서야 알았다. 삶은 더 크게 달라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답게 우리답게 숨 쉬기 위해 바뀌기도 한다는 걸.
지금 생각해도, 우리의 선택은 참 잘한 일 같다.
그렇게 우리는 산골 풍경 이쁜 마을을 찾았고, 허름한 대문을 열면 자연이 펼쳐지는 작고 시골스런 그런 집에 살림을 풀었다.
귀촌한 첫해 작은 꿈이 있었다.
작은 밭 하나 얻어서 상추도 심고, 오이도, 가지도, 콩도, 배추도 내가 좋아하는 채소를 키워 자급자족하는 게 꿈이었고, 정말 진짜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는 오일장에 가서 모종을 신나게 구매하였다. 그리고 동네 어르신이 심어 먹으라며 주신 작은 밭 (지금생각하면 작지 않았다)에 신나게 심었다. 참!! 수박도 심었던 것 같다.
봄에 심은 상추는 금방자라 우리 집 식탁에 올라와 나에게 고기를 먹을 이유를 만들어 주었고, 오이는 아삭하니 정말 시원한 맛을 선물해 주었다.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내가 심은 거지만 꼭 누가 공짜로 나에게 주는 것 같았다. 이런 개꿀~~~
어느새 성큼 여름이 다가왔고, 봄 하고는 다른 여름만의 성격을 보이던 중이었다. 나는 퇴근하고 밭에 가서 상추 좀 뜯어올까? 하는 생각에 무작정 밭으로 갔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나? 누가 내 상추를 다 가져갔다. 황당한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고, 남편에게 전화해 얼른 밭으로 오라고 했다. 내 전화를 받고 당황한 남편은 서둘러 나타났고, 나를 한번, 밭을 한번, 또 나를 한번 번갈아 보고는 박장대소를 하였다. 왜? 웃는 거지? 난 정말 심각한데 넌 왜 웃냐고 소리치니까 그제야 길게자란 풀을 손으로 휘저어 옆으로 치워내지 소중한 상추가 나타났다. 그야말로 멘털붕괴 었다. 왜? 풀이 이런 짓을 한 거지? 내가 여전히 어이없는 표정으로 멍하니 있으니 남편이 먼저 나서서 풀을 뽑아 정리를 시작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풀과 전쟁을 벌이고 난 후에야 소중한 상추와, 오이, 가지를 얻을 수 있었다.
아니 풀이 이렇게 방해하는데 남들은 어떻게 밭농사를 하는 거지? 농약으로 풀을 죽이는 건가? 난 약을 쓰고 싶지 않은데 어떻게 하지? 이런저런 고민을 남편에게 내놓자 남편은 아주 심플하게 대답한다. 그냥 뽑아 그러면 되잖아. 맞네 그러면 되겠네. 난 아주 단단히 맘을 먹었다. 풀 너는 이제 끝이야. 내가 막 아주 막 뽑아 주겠어. 이렇게 혼자 풀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작전을 세웠다.
며칠 후 장마라는 용병이 나타났다. 맞다 우리 편은 아니다.
한참을 비가 내리던 어느 날 오랜만에 해님이 반짝 나타나 상추를 뜯으러 갔다. 오 마이 갓! 어떻게 내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지? 너무한 거 아니야? 풀아 풀아 너 도대체 정체가 뭐야? 목숨이 도대체 몇 개인 거야?
분명 아니 진짜 분명 난 그 위치에 자라던 풀을 뽑았었고, 잘 치웠다고 생각했는데 거짓말처럼 다시 풀이 자라났고, 또다시 상추를 덮어 버리고 말았다.
이번엔 상추만 문제가 된 것이 아니다. 밭 전체가 풀에 뒤 덮여있었고, 우리가 심었던 작물들은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불과 며칠인 것 같은데 귀신처럼 무섭게 자란 풀들은 위풍당당하게 그 몸매를 뽐내고 있었다. 전투력이 상실되고 말았다. “작전은 무슨 작전 개뿔~~ 때려쳐!!!”
다시 작전을 세워야 했다. 풀은 건드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보물 찾기로 작전을 바꾸었다. 풀 속에 감춰져 있는 내 귀한 작물들을 찾아내기로 했다. 긴 장마로 엉망이 된 밭에 군화대신 장화를 신고, 총 대신 가위, 낫, 바구니를 들고 다시 밭을 찾았다. 이번에야 말로 둘 중 하나는 지쳐야 끝나는 전쟁을 시작하였다. 가장 귀했던 작물은 단 호박과, 수박이었다. 애플 수박을 심은 것도 아닌데 어찌 저찌 익어있던 작은 수박은 2개를 찾았고, 단호박은 6개 오이와 가지도 겨우 몇 개, 그리고 상추들 이렇게 바구니를 채우고 나서야 이 작전은 마무리되었다. 콩도 작고 소중한 알들을(실제로는 100알 이상) 조금 얻을 수 있었다.
이렇게 우리의 첫 수확의 부푼 꿈은 풀이라는 현실 앞에 무릎을 꿇고야 말았다. 맞다 작전실패다. 차라리 총을 들고 사격을 하고, 전투화를 신고 행군을 하는 게 더 쉬운 것 같다. 풀은 정말이지 무시무시하다.
이 사건 이후 나는 농부들을 존경하는 마음이 생겼고, 누가 농사지은 작물을 나눠주시면 정말 큰소리고 “감사합니다.”하며 받는다. 얼마나 큰 노력 끝에 얻는 수확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자연은 정말 위대하다.
인간은 그저 자연 앞에 겸손해야 한다.